집중력 ‘끝판왕’… 우승한 줄도 몰랐다
에비앙 챔피언십의 드라마틱한 우승으로 국민들에게 감동을 안긴 김효주(19·롯데)의 멘탈 노트에 등장하는 5계명이다. ‘지=지금 행동하라(결단력). 화=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를 같이 하라(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진심으로 대하라). 자=자기만의 색깔을 가져라. 조=조준하고 공략하라. 타=타인을 의식하지 마라’다. 김효주의 멘탈 노트는 2010년부터 틈틈이 손 글씨로 적어 놓은 골프 일기다.
김효주가 9월 14일(현지 시간) 프랑스에서 열린 LPGA 에비앙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뒤 기뻐하는 모습. 연합뉴스
먼저 김효주는 웹을 의식하지 않았다(타). 그녀가 자신의 우상인 박세리, 아니카 소렌스탐과 함께 90년대 후반 트로이카 시대를 구축했다는 사실도, LPGA투어에서 메이저 7승을 포함해 통산 41승을 거둔 전설이란 점도 의식하지 않았다. 오로지 경기에만 집중했다.
에비앙 챔피언십 최종라운드로 돌아가 보자. 김효주는 1타차 선두로 경기를 시작해 경기 중반까지 한때 웹에 4타차 리드를 지켰다. 그러나 파3홀인 14번홀과 16번홀에서 보기를 범하며 웹에게 선두를 내주고 말았다. 여유있게 선두를 달리다 1타차 역전. 상대는 백전노장. 흐름상 승부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17번홀에서 두 번째 샷 때 뒤땅을 치는 결정적인 실수를 범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파 세이브에 성공하며 격차를 그대로 1타차로 유지했다. 그리고 마지막 18번홀에서 승부수를 띄웠다. 18번홀은 내리막 홀이지만 전장이 442야드에 달하는데다 그린 주변에 워터 해저드와 벙커가 자리해 장타와 정확성, 그리고 용기를 필요로 하는 홀이었다. 티샷을 러프로 보낼 경우 레이업을 해야 하고 아이언 샷이 부정확할 경우 연못이나 벙커로 볼이 빠져 더블보기 이상의 재앙을 당할 수 있는 홀이었다.
웹은 4번 아이언으로 세컨드 샷을 했고 그린 중앙을 노렸다. 잘 맞았지만 거리가 길어 그린 오버로 볼은 에지에 멈춰섰다. 반면 과감하게 드라이버로 볼을 페어웨이에 안착시킨 김효주는 3번 우드로 승부수를 띄웠다. 볼은 포물선을 그리며 그린 중앙에 떨어진 뒤 홀을 향해 구르다 5m 지점에 멈춰 섰다. 이것은 결단력과 조준성의 대가라 할 수 있다.
다음은 역사에 남을 만한 명장면. 김효주의 우드샷에 놀랐을까. 웹의 세 번째 칩샷은 홀을 3m나 지나쳤고, 김효주는 연장 승부를 위한 버디 퍼트를 그림같이 성공시켰다. 19세 소녀의 당찬 반격에 당황한 웹은 파 퍼트에 실패하며 마지막 홀의 극적인 역전 드라마가 완성됐다. 경기 후 웹은 “김효주는 퍼팅은 19세 소녀였지만 샷은 성숙했다”고 말했다.
이 대목에서 김효주의 5계명 중 지(결단력)와 조(조준하고 공략하라), 타(타인을 의식하지 마라)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또 다른 승리의 원동력은 무서운 집중력이었다. 김효주는 18번홀에서 버디 퍼트를 성공시킨 후 스코틀랜드 출신 캐디 고든 로완이 우승 사실을 알려줬어도 이를 믿지 않았을 정도로 경기에 집중했다. 그리고 경기 내내 한 번도 스코어보드를 보지 않았을 정도로 몰입했다.
강원도 원주 문막에서 나고 자란 김효주는 6세 때 골프에 입문했다. 특이한 것은 대부분의 골프선수들이 부친의 권유로 골프를 시작한 것과 달리 김효주는 집 근처 골프연습장 주인의 권유로 처음 골프채를 잡았다는 점이다. 놀랍게도 어린 효주는 골프를 접하자마자 빠져 들었고 부친 김창호 씨(56)는 딸을 골프선수로 키울 결심을 하게 된다. 딸이 처음 보낸 미술학원엔 흥미를 보이지 않았으나 골프엔 남다른 재미를 느끼는 것을 눈 여겨 봤기 때문이다. 자신의 운명을 예고하듯 어린 효주는 고사리 손으로 하루 2시간씩 연습 볼을 때리며 장밋빛 미래를 준비했다. 김효주를 골프로 인도한 골프연습장 주인은 멘탈 노트를 적을 것을 권유한 은인이기도 했다.
원주 교동초교에 입학한 김효주는 라운드를 하지 않고 3년간 연습장에서 기본기만 익힐 정도로 골프에 매진했고 이후 전국 대회에 출전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결실은 빨리 찾아왔다. 6학년 때 국가대표 상비군에 발탁되며 안정적인 환경 속에서 기량을 키우게 된다. 엘리트들이 모여 있는 국가대표 육성 시스템에 소속되며 빠른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이때 결정적인 도움을 준 이는 한연희 전 국가대표 감독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김효주를 지도한 한 감독은 김효주에게 일관된 리듬의 스윙을 만들어 줬다.
165㎝의 김효주는 장타력을 갖추고 있지는 않지만 어떠한 상황에서도 일정한 템포의 스윙을 구사하는 능력을 갖고 있다. 이로 인해 크게 무너지지 않고 꾸준한 스코어를 내는 정교한 골프가 가능하다. 지난 해 메이저 3연승의 신화를 쓴 박인비조차 “효주의 샷은 세계 최정상급”이라고 극찬했을 정도다. 이번 에비앙 챔피언십에서도 김효주의 이런 정확도 위주의 골프는 세계적인 강호들을 물리치고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 결정적인 힘이 됐다.
김효주에겐 적이 없다는 점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품성이 착한데다 예의 바르고 처신도 잘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KLPGA투어에서 김효주를 욕하는 선배는 없다. 볼 잘치고 인사 잘하고 마음 씀씀이도 고운 김효주를 헐뜯었다가는 오히려 자신이 욕을 먹을 수도 있는 분위기다.
김효주 관련 기사엔 악플이 없다는 점도 특이한 점이다. 이번 에비앙 챔피언십 우승 때 수많은 기사가 포털 사이트를 도배했지만 눈에 띄는 악플은 없었다. 이런 악플이 없는 스포츠 스타는 대한민국에서 박지성과 이승엽 등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이 역시 김효주의 멘탈 노트중 하나인 화(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를 같이 하라)와 연관이 있다. 모든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기 때문에 미움이 끼어들 틈이 없는 것이다.
김효주의 꿈은 자신의 손으로 유망주를 길러내는 것이다. 자신이 넉넉지 못한 환경에서 주변의 도움으로 성장한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성공의 열매를 후배들과 나누고 싶어 한다. 머지않은 장래에 강원지역의 폐교를 인수해 훈련 캠프로 개조한 뒤 자신의 성공 노하우를 아낌없이 전수할 계획이다. 이는 부친과의 이미 논의가 끝난 상태다. 김효주의 멘탈 노트엔 이런 글귀도 있다. “꿈은 충분하게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잡을 수 있다. 조준되지 않은 꿈은 절대로 달성되지 못한다”, “문(기회)은 밀거나 당길 때 열린다”. 김효주가 나눔을 실천하려는 의지는 이미 멘탈 노트에 예고되어 있었던 셈이다.
이강래 헤럴드스포츠 대표
1. 어드레스 양쪽 어깨가 스탠스 안쪽에 들어가 스윙시 하체의 안정을 꾀했다. 또 양발을 살짝 오픈해 원활한 백스윙의 토대를 만들었으며 왼팔이 곧게 펴져 샤프트와 일직선을 이루었다. 시각적으로도 편안한 어드레스이며 기능적으로도 손색이 없는 자세다. 2. 테이크 어웨이① 중심 축인 머리를 고정한 채 상체를 회전해 클럽 헤드를 낮고 길게 가져 갔다. 이때 오른쪽 하체는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 체구에 비해 거리를 내는 비결이다. 3. 테이크 어웨이② 머리는 어드레스 때의 위치를 그대로 유지했지만 상체는 90도 가까이 회전하고 있다. 오른쪽 하체 또한 어드레스 상태에서 변함이 없다. 몸의 꼬임으로 생기는 힘이 스탠스 안쪽의 오른쪽 허벅지에 모인 것을 볼 수 있다. 4. 백스윙 왼팔이 지면과 수평을 이루는 지점에서 손목의 코킹을 완성했다. 왼쪽 어깨가 90도 이상 회전했지만 오른쪽 하체가 잘 받쳐 주고 있다. 정확한 샷의 토대가 되는 동작이다. 5. 백스윙 톱 왼쪽 어깨가 100도 정도 회전해 등이 보일 정도다. 그러나 골반의 회전은 최소화해 몸의 꼬임을 극대화했다. 김효주가 갖고 있는 유연성이 돋보인다. 또 백스윙 톱까지 오른쪽 하체의 안정을 잘 유지해 탄력적인 백스윙 톱을 만들었다. 6. 트랜지션 백스윙 톱에서 다운스윙으로 이어지는 트랜지션 동작이다. 스윙의 중심 축인 머리를 고정한 채 양팔이 몸 안쪽으로 진입을 시작하면서 왼쪽 골반이 목표방향으로 슬라이딩되는 완벽한 모양새다. 7. 릴리스의 시작 임팩트 전 동작으로 릴리스의 시작 단계다. 왼쪽으로 체중이 넘어가는 것을 왼발이 잘 받쳐주는 인상적인 동작이다. 양손의 코킹을 유지해 클럽을 임팩트 구간으로 잘 리드하고 있다. 8. 임팩트 스윙의 중심축인 머리가 제 자리를 잘 지키고 있어 클럽 헤드가 볼을 강하게 가격한 것을 알 수 있다. 또 왼팔과 샤프트가 일직선을 이루면서 임팩트 후 완벽한 릴리스 동작을 만들었다. 9. 폴로스루 피니시의 전 단계인 폴로스루다. 시선이 볼이 위치했던 지점을 보고 있다. 머리를 구심점으로 클럽 헤드에 강한 원심력이 실려 정확도와 비거리를 동시에 확보한 것을 알 수 있다. 10. 피니시 클럽 헤드가 목표방향을 보는 일자형의 아름다운 피니시다. 백스윙 때 오른쪽으로 이동했던 체중이 왼쪽으로 옮겨 갔지만 왼쪽 발바닥이 지면에 붙어 있어 안정적인 자세를 만들었다. 글·사진=최웅선 헤럴드스포츠 골프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