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한방! 죽어야 사는 남자
▲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수해 때 급류에 휩쓸려 죽은 것처럼 위장한 엽기부부가 경찰에 붙잡혔다. | ||
이들 부부는 남편의 ‘가짜 죽음’을 통해 무려 20억 원의 빚에 시달리던 암울한 과거를 청산하고 마치 로또 당첨자처럼 입이 떡 벌어질 법한 귀족놀음을 즐겨왔던 것으로 드러났다. 신출귀몰한 사기 사건을 수없이 담당했던 검사들의 입에서조차 “한 편의 영화를 본 것 같다”는 말이 나오게 한 이들의 기막힌 사기극 속으로 들어가보자.
박 씨 부부는 만남부터가 영화 같았다. 부인 문 씨는 지난 2000년 12월 수능시험을 마치고 나이트클럽에 놀러갔다가 15세 연상의 유부남 박 씨를 만나게 된다. 둘은 곧 연인사이로 발전했고 아이가 생기면서 박 씨는 당시 부인과 이혼하고 문 씨와 결혼했다.
두 사람의 만남이 어찌됐던 간에 부부는 서로를 끔찍이 위하며 단란한 가정을 꾸려왔다고 한다. 하지만 문제는 돈이었다. 지방에서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던 박 씨는 지속되는 경영난으로 20억 원에 달하는 빚을 지게 되자 기막힌 사기 시나리오를 짜게 된다. 멀쩡히 살아있는 자신이 사망한 것처럼 꾸며 빚을 ‘탕감’받고 거액의 보험금도 타내려는 계획이었다.
부부는 이를 위해 박 씨 명의로 2003년 9월부터 2004년 7월까지 총 21억 원 상당의 재해보장사망 보험상품에 가입했다. 이들은 1개의 보험사에 거액의 보험을 가입할 경우 의심을 살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 보험사 6곳에 총 10개의 보험상품을 1년 가까운 기간 동안 간격을 두어가며 가입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원래 박 씨 부부는 가족 이외의 제3자에게 보험사기를 제의했으나 거절당하고 만다. 이에 이들은 가족들을 끌어들여 각자 역할분담까지 하는 등 완전범죄를 위한 시나리오를 짰다. 박 씨가 사고 위장 8개월 전부터 여동생에게 범행계획을 알리는 한편 매제에게는 도피차량 제공을 요구하는 등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는 게 검찰 관계자의 얘기다. 특히 박 씨는 사망사고를 위장하기 전에 매제의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 등을 입수, 추후 도피생활에도 철저한 대비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그러나 검찰 조사결과 매제는 범행 가담을 거부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위장 사망 프로젝트’를 위해 호시탐탐 때를 기다리던 박 씨 부부에게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태풍 ‘매미’가 들이닥치던 2004년 여름 이들 부부는 태풍에 의한 사망사고를 위장하기로 마음먹는다. ‘디데이’는 ‘매미’가 전라도 지역을 강타했던 2004년 8월 19일. 거센 바람이 휘몰아치고 무서운 기세로 폭우가 쏟아지던 이날 박 씨 부부는 가족들과 함께 지리산 뱀사골로 의미심장한 ‘휴가’를 떠났다. 당시 부인 문 씨는 둘째아이 출산을 불과 5일 앞둔 몸이었지만 인생역전을 향한 간절한 욕망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알리바이를 만들기 위해 목적지에 도착한 이들은 본격적인 사기극을 시작했다. 박 씨가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간 것으로 위장한 것이다. 부인 문 씨는 ‘남편이 급류에 실종됐다’고 경찰에 신고했고 박 씨의 여동생은 ‘오빠가 발을 헛디뎌 급류에 떠내려가는 것을 목격했다’고 거짓진술을 했다. 게다가 남편의 동료까지 불러 피 말리는 수색작업을 펼치는 ‘쇼’를 벌이기도 했다. 실제로 박 씨는 태풍 매미에 의한 피해자로 당시 언론에 보도됐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로부터 6개월 뒤인 2005년 2월 문 씨는 계획대로 남편의 호적지 관할 면사무소에 찾아가 남편에 대한 ‘인정사망’ 절차를 밟는다. 인정사망제도란 사망의 확증은 없으나 사망이 확실시 되는 경우 관공서의 보고에 의해 호적에 사망기재를 해서 사망으로 추정하는 제도를 말한다.
법과대학원까지 나와 법률지식이 해박했던 박 씨는 자신이 인정사망제도에 의해 사망자로 처리되도록 모든 계획을 꾸몄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상상하지도 못했을 ‘완벽한 시나리오’였던 셈이었다.
호적상 ‘죽은 남편’을 대신해 문 씨는 2005년 3월 초부터 그동안 가입한 6개 보험사에 21억 원 상당의 보험금 지급을 청구했다. 그리고 그해 5월 중순 3억 1800만 원을 수령한 것을 시작으로 약 10개월에 걸쳐 3개 보험사로부터 총 7억 2000여만 원을 타내는 데 성공한다. 이들 부부는 편취한 보험금으로 고급 승용차를 끌고 다니는 한편 값나가는 희귀 보석들과 명품의류들을 사들였다. 남편 박 씨는 은신처를 마련해두고 편취한 보험금으로 지역유지 행세를 하며 재벌가 부럽지 않을 풍요로운 생활을 했다. 박 씨는 사기극에 도움을 준 데 대한 사례비조로 자신의 여동생을 포함한 가족에게 수천만 원씩을 건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이들 부부는 가족들과 주기적으로 모임을 가지며 사망 위장 이후 출생한 ‘유복자’와 함께 해수욕장 등지로 여행을 다니는 등 아무런 죄의식 없이 호화생활을 즐겨왔다. 특히 프로테스트 도전을 꿈꿀 만큼 골프광이었던 박 씨는 전라남북도 일대를 버젓이 활보하며 일주일에 2~3번 이상 골프를 치러 다녔던 것으로 밝혀져 검찰이 혀를 내두르게 만들었다.
이들 부부는 남은 14억 원의 보험금을 마저 수령하기 위해 나머지 보험사들을 상대로 보험금 지급청구 소송을 내기에 이른다. 그러나 부부의 과도한 욕심은 결국 보험사들의 의심을 사는 계기가 되고 만다.
보험금 지급 청구 무렵 박 씨가 여러 곳의 보험사를 대상으로 유사한 보험상품에 가입해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보험사들은 뒤늦게 금감원에 잇따라 의문을 제기하고 나섰다. 수상한 낌새를 눈치 채고 올 8월 중순경 내사에 착수한 검찰은 정황상 박 씨가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 박 씨의 행적을 추적하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리고 2개월간의 끈질긴 추적 끝에 10월 29일 정읍 연지동의 한 모텔에서 박 씨 부부를 긴급체포했다. 자칫 완전범죄가 될 뻔한 기막힌 보험사기극이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이들 부부가 검찰에 검거됐을 때 이들의 수중에 남은 돈은 거의 없었다고 한다. 은신처에 있던 물건들을 제외하면 사실상 빈털터리나 다름없었다는 것. 불과 2년 남짓한 기간 동안에 7억이 넘는 돈을 탕진했다는 점만 보더라도 이들 부부가 얼마나 사치스럽게 생활해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검찰에 검거된 뒤에도 이들 부부는 범행을 전면 부인하는 등 ‘부창부수’의 모습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박 씨의 경우 오히려 ‘(나머지 보험금을 다 타내지 못해서) 억울하다’고 하는데 뭐라 할 말이 없었다”는 게 검찰 관계자의 얘기다.
광주=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