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민 ‘난 무대 밑으론 못 가’
친박계에서는 김무성 대표와 김문수 위원장에 맞서 유승민-유기준 투톱 카드를 전략적으로 띄우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2월 25일 당시 새누리당 제2차 상임전국위원회에 참석한 유승민 의원(왼쪽)과 김무성 의원.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김무성 : 훤칠한 외모와 호방한 성격, 든든한 집안 배경과 재력까지 갖춘 사람. 그러나 빈곤한 철학에서 나오는 천박한 언변으로 입만 열면 경쟁력이 깎이는 사람.
김문수 : 서민적 이미지와 성실한 품성. 드물게도 진보와 보수를 넘나드는 행보를 보였으나 진보에선 배신자, 보수에선 여전히 미심쩍은 사람.
유승민 : 여권의 기대주, 아직은 실체를 드러내지 않은 여권의 히든카드.’
지난주 최준영 작가의 여야 대선주자 인물평이 정가에 잔잔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여권 내에서 극찬 아닌 극찬을 받은 인물은 3선의 유승민 의원이었다. 친박계 일각에서는 유 의원을 두고 ‘아직 긁지 않은 복권’이라며 “다음 대선을 앞두고 유 의원이 반드시 뜰 것”이라며 추켜세우는 목소리도 심심찮게 들린다.
현재 유 의원 측은 내년 원내대표 출마를 염두에 두고 조금씩 세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이 때문에 유 의원은 김무성 대표 체제와 잇따라 각을 세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김 대표로부터 사무총장 직을 제안 받았으나 거절했고, 김 전 지사와 함께 보수혁신위 활동을 할 것으로 유력하게 거론됐지만 결국 고사했다.
유 의원 측이 김무성 대표의 거듭된 러브콜을 고사한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해석이 가능하다. 여권의 한 핵심 당직자는 “새누리당이 ‘무대(김무성 대장)당’이 되고 있다지만 실권은 여전히 VIP(박근혜 대통령)에게 있다. 내년 원내대표는 차기 총선 공천권을 행사하게 되는 막강한 자리인데, 이 역시 청와대가 낙점하는 사람에게 돌아갈 공산이 크다. 유 의원이 진지하게 원내대표를 생각한다면 김 대표 쪽으로 돌아서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 다른 이유로는 한때 친박계 좌장이던 김무성 대표 밑에서 일한다는 인상을 남기지 않으려는 뜻에서다. 대표 취임 이후 비박계 인사를 폭넓게 중용한 김 대표지만 여전히 친박과 비박 모두에 지분을 행사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종의 상하관계를 거부하는 것이다. 앞서의 당직자는 “지난 7월 전당대회 당시 서청원 최고위원이 친박계 표를 싹쓸이하지 못한 것도 김 대표와 각이 잘 서지 않았던 탓도 있다. 이번에 김무성 대표 쪽에서 김문수 전 지사, 홍준표 경남지사, 유승민 의원 같은 잠룡군을 적극 기용하려는 것은 이들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일찍부터 활동케 하기 위함이라는 평가도 있다”라고 전했다.
김 대표의 부름에 혁신위를 이끌게 된 김문수 위원장에 대한 관심도 집중되는 분위기다. 김 위원장은 혁신위원 인선 과정에서 원희룡·홍준표 두 현직 단체장 영입을 시도했지만 당내 반발에 부딪쳐 시작부터 리더십에 상처를 입었다. 그럼에도 김 위원장의 행보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말이 많다. 김 위원장이 6개월로 한정된 혁신위 활동 과정에서 의회 기득권 내려놓기와 관련해 파격안을 제시하고 차기 총선 공천 문제, 그리고 개헌 이슈 등 현 정권에서 민감한 부분까지도 건드릴 개연성이 높다. 이 같은 우려에 김 위원장 측은 “내가 대표적 친박이다”, “개헌 문제를 본격적으로 주요 의제로 상정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믿기는 힘들어 보인다.
유기준 의원
친박계에서는 무섭게 성장하는 김 대표와 김 위원장에 맞서 새로운 전략을 짜는 중이다. 여의도 근처 오피스텔에 근거지를 마련해 두고 외부 인사를 초청해 공부 모임도 진행하고 있다. 친박계 핵심부도 서서히 활동을 재개하고 있다. 홍문종 의원의 경우 전당대회 패배 이후 외부 활동을 자제해 왔지만 이번 혁신위 구성 과정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개적으로 불만을 토로했다. 윤상현 의원 역시 자서전 집필 등으로 정치적 활동을 자제하고 있지만 외부 인사들을 폭넓게 접촉하면서 향후 대책 모색에 나서고 있다.
사실 지난 7·14 전당대회 전까지만 해도 친박계 진영에서 집중 탐구한 것은 ‘반기문 카드’를 어떻게 실현하는가에 있었다. 하지만 최근 이 카드는 실현 가능성이 없다는 쪽으로 무게 중심이 옮겨진 상태다. 친박계 비공개 공부 모임에 관여하는 한 당직자는 “친박계 의원들이 그동안 의원연수 등을 핑계로 미국으로 건너가 반기문 총장 측과 지속적으로 접촉했던 게 사실이다. 유엔 산하기구 국내 유치 등도 그 일환이었다”며 “그러나 현재 여권 구도에서는 쉽지 않다. 지금 이쪽 분위기가 좋지 않다. 정권 잡은 지 2년도 되지 않아 당 안에서 또 된서리를 맞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지금부터라도 유승민-유기준 투톱 체제를 전략적으로 띄워야하지 않겠느냐는 말이 많다”며 “지금 TK(대구·경북)에서마저 김문수 전 지사가 유승민 의원보다 더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는 실정이다. 김 전 지사 측은 추석 때 대구에서 택시기사를 하며 민심이 차갑다는 걸 깨닫고 반성했다고 한다. 반면 유승민 의원이 뭘 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이 상태로는 김부겸 전 의원에게마저 밀리는 이미지”라고 꼬집었다.
이미 ‘탈박’으로 알려진 유 의원과의 호흡이 잘 맞겠느냐는 물음에 이 당직자는 “이혜훈 전 최고위원이나 유승민 의원이 박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하는 것은 대통령을 직접 노렸다기보다 그 측근들에게 시그널을 보낸 것이다. 당신이 지금 잘못된 보고를 받고 있다는 소리를 하려는 것”이라며 “유 의원은 독자적인 계파를 만들 의지도 능력도 없기 때문에 친박계를 벗어나는 순간 쇄신파 출신의 당 중진 의원으로 인식될 뿐”이라고 평가했다.
친박계 한 재선 의원은 “전당대회 때 친박계가 인기가 없다는 게 새삼 드러나 새로운 구심점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유승민-유기준 두 의원은 실제로 19대 국회 전반기에는 국방위에서, 또 후반기는 외통위에서 같이 호흡을 맞춰 오고 있다. 국방위는 전반기 가장 우수한 상임위로 꼽히지 않았나. 친박계 지지자들은 특성상 박 대통령에게 잘 보이려는 정치인보다 거리를 두고 제 역할을 하는 사람에게 기회를 주는 측면이 많다. 언젠가 전열을 정비해야 할 때가 되면 이 카드를 쓰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