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점 민의’에 피박 쓴 통치스타일
그러나 정치인들만 고스톱을 비유의 도구로 사용하는 게 아니다. 국민들은 정치인들을 고스톱 판으로 끌어들인다. 그래서 역대 대통령들을 두고 이른바 ‘노무현 고스톱’, ‘전두환 고스톱’ 등이 탄생했다.
고스톱만큼 전 국민적인 ‘사랑’을 받는 놀이도 드물다. 또 이제는 고스톱이 명절 때나 상갓집에서 즐기는 때와 장소에 국한된 놀이가 아니다. 온라인 게임으로 만들어지면서 어린 아이에서부터 노인들까지 쉽고 편하고 부담 없이 즐기는 게임이 되었다.
또 고스톱은 승자와 패자가 엎치락뒤치락하는 양상으로 갈리는 게임이다. 좋지 않은 패를 들고 시작했지만 상대의 과욕으로 역전(독박)할 수도 있으며 같은 패 세 장을 ‘흔들어’ 대박을 노릴 수도 있다.
전 국민이 참여하고 극적인 요소가 가득한 또 하나의 게임이 바로 ‘정치’다. 고스톱에 여러 정치인들, 특히 역대 대통령들이 자주 등장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기도 하다.
이른바 ‘노무현 고스톱’에는 여러 가지 버전이 있다. 그중 가장 유행했던 방식이 7자(돼지)와 관련된 것이다.
노 대통령은 2002년 대선 때 ‘노사모’ 회원들이 전국에서 모금한 ‘희망의 돼지저금통’ 덕을 톡톡히 봤다. 유세장에서 돼지저금통을 받고 감동한 적도 있었다. 그래서 당선의 일등공신 중 하나는 희망의 돼지저금통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바로 이것을 빗대어 평소에는 그다지 쓸모없던 돼지가 그려진 열끝짜리를 포함 7자(홍싸리) 패 4개를 획득하면 7점으로 승부가 끝나는 게 ‘노무현 고스톱’이다. ‘희망돼지’가 노 대통령에게 복돼지였듯이 ‘노무현 고스톱’에서도 7자가 행운을 가져다주고 있는 셈이다.
또 노무현 대통령이 잘 쓰는 말에서 비롯된 ‘맞고요 고스톱’도 있다. 한 사람이 맞고를 부르면 상대편 두 사람이 “맞고요, 맞습니다”를 외쳐줘야 한다.
‘김영삼 고스톱’에서는 선이 되면 자신의 패를 상대방에게 보여준 뒤 게임을 시작해야 한다. 대신 선이 이기면 점수의 2배를 받게 된다. YS가 평소 “마음을 비웠다”라는 표현을 자주 써온 데서 유래한 룰이다. ‘YS 고스톱’의 또 다른 버전은 4명 이상이 고스톱에 참가할 때 선에게 나머지 세 사람의 패를 볼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패를 본 선은 자신이 원하는 선수에게 ‘죽을 것’을 명령할 수 있다. ‘문민독재’라는 비판을 받았던 김영삼 전 대통령을 풍자한 룰이다.
‘노태우 고스톱’은 6·29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6자(목단)와 2자(매화), 9자(국화) 피를 먹는 사람이 세 패의 수를 합한 17점이 나게 된다. 이와는 다르게, 세 패를 갖게 된 사람이 나머지 두 사람에게 17점에 해당하는 액수를 지불해야 하는 벌칙이 주어지는 방식도 있다. 이는 6·29선언의 실제 주체가 노 전 대통령이 아닐 것이라는 세간의 의심이 반영된 것으로 앞에 방식보다 좀 더 세련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전두환 고스톱’은 ‘싹쓸이 고스톱’이라고 할 수 있다. 고스톱의 ‘싹쓸이’ 룰 자체가 전두환 정권 때 탄생했다는 얘기가 있을 정도다. 80년 5·18 광주항쟁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정권을 차지한 것을 풍자한 방식이다. ‘전두환 고스톱’에서는 ‘싹쓸이’를 했을 때 획득한 피를 한 장씩 뺏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유리한 패를 아무거나 가지고 올 수 있다. 예를 들어 광을 한 장 가진 사람이 ‘싹쓸이’했는데 상대방 두 사람이 광을 가지고 있었다면 이를 가져와 점수가 나게 되는 식이다.
‘최규하 고스톱’에서는 싹쓸이를 하면 피를 한 장씩 받아오는 대신 오히려 상대방에게 피를 한 장씩 줘야 한다. 대통령직에 있었지만 국보위의 전두환 신군부에게 휘둘렸던 일이 반영된 고스톱 룰이다.
정치가 고스톱 판으로 흘러들어온 시작한 것은 박정희 정권 때로 보인다. ‘대통령 고스톱’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박정희 고스톱’에는 3선 개헌에 대한 국민들의 원망이 들어 있다. ‘쓰리 고’를 외친 후 점수를 내지 못하면 ‘독박’을 쓴다. 고스톱에서 ‘독박’이 생긴 게 바로 이때부터라고 한다.
오랫동안 정치 활동을 해왔던 김종필 전 총재도 풍자 대상 중에 하나다. ‘JP 고스톱’은 4명 이상이 게임에 참가할 경우 남은 사람이 광을 파는 대신 기본 점수에 해당하는 금액을 내고 판에 낄 수 있도록 한다. ‘만년 2인자’로 끈질기게 정치생명을 이어간 그를 빗댄 것이다.
과연 새로운 ‘이명박 고스톱’은 어떤 방식으로 펼쳐질까. 그것은 이명박 당선인에 대한 국민들의 평가와 무관하지 않다. 이 당선인이 대통령으로 어떤 활동을 하고 국민들에게 무엇을 주느냐에 따라 다양한 룰이 등장하고 또 사라질 것이다.
류인홍 기자 ledhong@li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