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 입김’ 세져… 재혼 오너들 후계구도 꼬인다 꼬여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과 부인 홍라희 관장. 개정 상속법으로 홍 관장의 역할이 커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후계구도와 관련, 그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배우자에게 상당히 유리한 개정 상속법은 급속히 고령화로 가고 있는 시대 상황을 반영한 측면이 있다. 상속분쟁 전문 법무법인 현명 고정한 대표변호사는 “개정 상속법의 취지는 노후에 홀로 남은 배우자가 안정적인 노후 생활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또 재산형성에 자녀가 기여하는 경우는 거의 없기에 배우자의 공로를 인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전했다.
개정 상속법에 대한 여론은 분분하지만, 무엇보다 재계에서 개정 상속법에 대해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재산이 별로 없는 사람들이야 이 법은 ‘남의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재벌가의 경우 자칫하면 개정 상속법으로 인해 후계 구도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의외의 변수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개정 상속법이 입법화되면 재계에 미치는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이어진다.
역시 주목되는 것은 국내 최대 기업 삼성이다. 최근 이건희 회장이 병세가 완화돼 자택 치료를 검토하는 중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자녀에 대한 자산승계율이 22% 남짓한 삼성의 후계판도는 여전히 최대 관심사다. 한 재계 관계자는 “개정 상속법이 입법화되면 삼성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배우자에게 힘이 실리는 개정 상속법을 볼 때 향후 홍라희 리움미술관장의 역할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라고 전했다. 물론 삼성의 경우 재산분할이 후계구도와 맞물려 진행되고 있어 현실화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물론 상속이 실제로 이렇게 진행될지는 미지수다. 개정 상속법은 배우자의 선취분을 인정해주는 것이 원칙이지만, 재산 형성 과정에 있어 변수가 있으면 선취분을 일정 부분 조절하는 것도 가능하다. 법무법인 현명 고정한 대표변호사는 “재산 형성 과정에서 자녀들이 기여를 많이 했다면 법원에 이를 신청해 선취분을 적절히 조절하는 것도 가능하다”라고 전했다. 또 전체 재산에서 배우자에게 상속분을 주되, 경영에 핵심이 되는 주요 계열사 지분만큼은 후계자에게 물려줄 가능성도 높다. 한 상속분쟁 전문가는 “거대 기업들은 이미 개정 상속법이 통과될 가능성에 대비해놨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개정 상속법에 따라 이전에 계획했던 안정된 후계구도가 훨씬 더 복잡해질 가능성이 높다는 건 또한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다”라고 전했다.
재벌 오너가 ‘재혼’을 했을 경우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 신세계그룹 정용진 부회장, 김택진 엔씨소프트 사장, LG가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 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특히 지난해 11월 재혼한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은 자녀들에 대한 자산승계율이 0%에 불과해 후계구도가 예상 밖으로 짜여질 가능성이 높다. 앞서의 상속분쟁 전문가는 “현재 재혼한 오너들이 왕성하게 경영활동을 하고 있지만 개정 상속법이 통과된다면 언젠가는 짚고 넘어갈 문제가 될 것이다. 심할 경우 재혼한 배우자가 경영에 나설 수도 있고 오너의 성이 뒤바뀔 가능성도 있다”라고 전했다.
한편 홍라희 관장에 이어 재계 회장 부인 중 주식 부자 2위에 등극한 LG그룹 구본무 회장 부인 김영식 여사 역시 LG그룹 주식 4.3%를 보유하고 있는 대주주다. 하지만 LG그룹은 순환출자가 없는 지주사 전환이 완료돼 개정 상속법에도 오너 4세 구광모 부장의 경영권 승계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재계는 보고 있다. 이밖에 롯데, SK, 현대중공업 등 17개 대기업들은 아예 회장 부인들이 지분을 한 주도 보유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 나타나 개정 상속법이 후계구도에 미칠 영향이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지만 분쟁의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법무법인 현명 고정한 대표변호사는 “개정 상속법은 선취분 제도의 취지를 살리기 위한 방편으로 배우자 선취분이 유언에도 우선한다. 결국 이 선취분으로 상속 관련 분쟁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라고 전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 개정안 A to Z ‘선취분’ 유언에 우선…상속세 안내 개정 상속법은 배우자 선취분 50%를 보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유언에도 우선해 찬반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법무부 산하 민법(상속편) 개정 특별분과위원회 관계자는 “선취분이 유언에도 우선하는 이유는 선취분이 배우자가 기여한 배우자의 재산이기에 그만한 권리가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그리고 선취분과 관련해서는 상속세도 물리지 않는다. 결국 배우자 본인의 재산을 받는 것이기에 상속세를 물리기에 적절치 않고, 배우자가 사망할 경우 자녀들이 상속세를 다시 내게 되는 ‘이중 과세’의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다. 한편 선취분은 두 부부가 혼인기간 중 증가한 재산에 한정한다. 또 무조건 50%를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재혼 뒤 재산이 줄었거나 별거 기간이 길었거나 자녀가 재산을 불리는 데 기여를 했다면 자녀들이 직접 법원에 신청해 법원의 중재 하에 선취분을 적절히 조절해 줄 가능성도 있다. [환] |
| 미뤄지는 배경은? 법무부 9개월째 고민중 법무부의 상속법 개정 추진 사실은 지난 1월 알려졌다. 이후 ‘배우자 선취분’에 대한 각계 의견이 급증하자 법무부 산하 민법(상속편) 개정 특별분과위원회는 지난 2월 전체 회의를 열고 개정안 내용을 놓고 막판 조율을 했다. 조율된 개정안은 이후 법무부 손에 맡겨졌다.
결국 개정안은 지난 1월 상황에서 변함없이 법무부 내에서 ‘머물고’ 있는 셈이다. 특별분과위원회도 지난 2월 해체돼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특별분과위원회에서 활동한 한 전문가는 “해체 이후 별다른 소집이나 논의가 없었다”라고 전했다. 이에 대해 재계 일각에서는 “법무부가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게 아니겠느냐”라는 의문스런 시각도 생겨나는 중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권 관계자는 “결국 법무부는 기업에서 벌어질 후폭풍을 신경 쓸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개정안 논의가 이렇게 길게 이어질 수 있겠느냐”라고 귀띔했다. 하지만 법무부 관계자는 “상속법 개정은 이전에도 여러 차례 시도됐으나 여론의 반발로 잘 진행이 안 된 경우가 많았다. 기업의 후계 구도는 전혀 신경 쓸 바가 아니다”라고 전했다. 결국 상속법 개정안은 국회로 가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법무부 관계자는 “올해는 우선 진행되기 어려울 것 같다”라고 전망했다. [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