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노벨상 공작(의혹)’ 제2폭탄 터진다
▲ 지난 2000년 12월 노벨상 수상 연설을 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 | ||
2000년 안기부를 떠나 2003년 1월 DJ의 노벨평화상 로비의혹을 제기한 김 씨는 미국에 머물다 그해 12월 내부고발자 자격으로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다. 그리고 그동안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 불법체류자 신분으로 거주해오다 지난 15일 4년여 만에 이뤄진 추방관련 1심재판에서 망명을 허용받았다. 최종판결은 아니며 앞으로 상급심이 남아있다. 망명허용으로 고무된 탓인지 김 씨는 이번 재판 이후 “DJ가 노벨상을 받기 위해 북한에 지원한 돈은 4억 5000만 달러가 아니라 15억 달러”라고 주장하며 기자회견을 통해 그 전모를 밝히겠다고 했다. 김 씨의 기자회견은 한 차례 연기돼 3일로 예정돼 있다.
이미 정치권과 국정원을 발칵 뒤집어 놓은 적이 있는 터라 김 씨의 이번 행동은 사실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다. 핵심은 이번 김 씨의 폭로에 새로운 내용이 포함되어 있는지와 그가 주장하는 의혹들을 증명할 만한 자료가 있는지 여부다.
일부 소식통에 따르면 김 씨는 이번에는 그동안 막연한 루머로만 나돌던 갖가지 의혹들을 구체적으로 증명해보이겠다는 각오를 피력했다고 전해진다. 즉 ‘김대중 전 대통령이 정주영 전 현대 명예회장을 압박, 노벨상을 포기토록 했다’는 것이 사실이라는 내용을 비롯해 ‘대북송금 관련 특검 결과 DJ정권이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4억 5000만 달러를 북에 제공했다고 밝혀졌지만 사실은 15억 달러 이상이 건네졌다’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진다.
한마디로 “DJ는 노벨상을 받기 위해 북한에 엄청난 불법자금을 송금하면서까지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켰으며, 따라서 DJ의 노벨평화상 프로젝트는 자신의 노욕을 채우기 위해 국가 전체를 이용한 대국민사기극”이라는 것이 김 씨의 주장이다.
김 씨의 주장을 검증하기에 앞서 먼저 김 씨가 어떤 인물인지 알아보자. 이는 그의 말을 어디까지 신뢰할 수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간접적인 척도가 될 수 있으며 추후 벌어질 공방에서도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김 씨는 이미 국정원법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가 7년여간 몸담았던 국정원 측에서는그를 배신자로 보는 분위기가 팽배한 것으로 알려졌다.
1차 폭로 당시 국정원은 “김 씨는 국정원 재직 때부터 성격이 매우 불안정해 단기간 재직 중 근무부서를 수시로 옮겨다니는 등 정보업무에 적응하지 못함으로써 해외정보분야 업무를 제대로 알 수 없는 위치에 있었다”고 언급한 바 있다. 국정원 측에 따르면 김 씨는 내부기밀을 파악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었으며 따라서 그의 주장은 허무맹랑한 소설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서울법대 84학번인 김 씨는 93년 1월 안기부에 입사, 대공정책실, 해외조사실(1국), 국제정책실, 비서실, 전략실 등 국정원의 여러 부서를 거쳐 2000년 10월 퇴사한 인물로, 국정원 간부 출신이 아닌 일반 직원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과거 김 씨는 국정원에서는 DJ 노벨상 공작 특별팀이 생기기 전부터 노벨상 공작을 펴왔으며 자신이 공작 부서에 몸담았기 때문에 그 전모를 자연스레 알게 됐다고 주장한 바 있다.
주목할 점은 김 씨가 그간 인터넷 등을 통해 유포한 ‘양심선언’ 내용을 보면 그는 국정원 내부의 사정 및 당시 상황에 대해 상당히 구체적인 진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김 씨가 폭로를 결심한 순간부터 기밀 자료들을 수집했으며 조만간 그 자료들을 공개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이번 폭로를 앞두고 김 씨는 상당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에는 이전처럼 정황상의 추측에 의한 단순 폭로전으로 끝날 것 같지 않다”는 얘기까지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김 씨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증거라는 게 한두 페이지도 아니고 무척 방대하다. 구체적인 자료공개는 좀더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라며 “국민적 의혹을 풀기 위해서 최소한의 범위에서 자료를 공개하는 것도 검토하겠다”고 말해 김 씨가 ‘도청 녹취록’과 같은 ‘히든카드’가 있음을 은연중 내비치기도 했다.
▲ 김기삼 | ||
김 씨는 최근 “한국의 현 정부가 노벨상 의혹 규명 작업을 추진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자료를 제공할 수 없다. 한국 정부의 진상 규명 의지를 확인한 뒤 자료를 내놓겠다”라고 말한 바 있다 .
만약에 김 씨가 자신의 주장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제시할 경우 그 파장은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동안 의혹만 있고 실체는 없었던 DJ 노벨평화상 의혹에 대한 본격적인 진실규명 작업을 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김 씨가 재폭로를 결심한 배경은 무엇일까.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지만 한국의 정권교체와 김 씨에 대한 미국정부의 망명허가가 그 계기가 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실제로 김 씨는 모 언론을 통해 “새로운 정부가 출범했고 또 이번 망명 허용 판결을 계기로 내가 제기한 의혹규명을 위한 공감대가 형성될 경우 귀국해서 진실을 위한 마무리를 할 용의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물론 일각에서는 이번 재폭로는 남아있는 망명허가 상급심에서 유리한 국면을 조성하기 위한 의도도 있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김 씨의 주장을 반박하는 측에서는 “노벨평화상을 돈으로 받을 수 있는 것이라면 전 세계의 갑부들이 더 많이 받았을 것”이라며 김 씨의 행동은 매국노의 그것과 다름없는 것이라고 맹비난하고 있다. “DJ는 어쨌거나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생사를 넘나들며 강도 높게 군사정권과 싸워오지 않았나. 북한의 핵개발 소식에도 국민들이 크게 동요하지 않는 것은 어쨌거나 DJ시절 닦아놓은 신뢰감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DJ의 미국순방을 수행하다 현지에서 보도를 접한 박지원 전 청와대비서실장은 “일고는커녕 영고의 가치도 없다”고 일축한 뒤 “김 씨가 자기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내놓을 수 있는 자료도 없을 것이다. 김 씨가 근거 없는 주장을 되풀이할 경우 법적대응도 생각하고 있다”고 불쾌한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번 기회를 통해 DJ의 노벨상 의혹에 대해 정부가 나서서 밝혀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노벨평화상은 일개 국가의 문제가 아닌 만큼 관련 의혹이 말끔하게 해소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한편 김 전 대통령은 김 씨의 주장을 전해들었지만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퇴임 후에도 끊임없는 악성루머에 시달려온 김 전 대통령으로서는 심기가 편할 수만은 없을 터.
김 전 대통령은 지난 4월 15일 10박 11일 일정으로 미국 방문길에 올랐다. 이번 김기삼 씨의 주장과 맞물려 김 전 대통령이 방미한 진짜 목적을 두고 여러 가지 얘기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고령의 나이로 왕복 20시간이 넘는 미국행을 감행한 이유가 따로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김 씨는 2005년 당시 이미 “DJ는 국민의 혈세를 가로채 스위스, 홍콩 등지에 분산 예치했고, 비자금의 규모는 최소 6000억 원에서 1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고 폭로한 바 있다. 당시 김 씨는 “DJ가 2004년 5월 18일 스위스를 방문한 것은 단순히 세계보건기구(WHO) 총회 개막식 연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비자금과 관련이 있다. 계좌이체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계좌의 상속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그의 친필 사인이 필요했기 때문에 스위스를 방문한 것”이라고 주장했었다.
하지만 당시에도 이 같은 자신의 주장을 입증할 만한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전직 대통령과 국가최고정보기관을 향한 전직 국정원 직원의 폭로는 과연 사실일까. 때늦은 김 씨의 재폭로의 진정성에 대해 논란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 사안의 중대성으로 인해 국민의 눈과 귀가 김 씨의 입으로 쏠리고 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