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개발 엇박자에 주민들만 ‘곡소리’
▲ 용유 무의 관광단지 조감도(위), 개발사업 난항으로 피해를 입은 주민들이 항의하는 모습. | ||
개발권을 가진 캠핀스키 측은 5월 초 본사의 레토 위트워 회장의 방문을 계기로 사업에 가속도를 붙이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인천시 측은 캠핀스키 측이 그동안 여러 차례 약속을 어겨온 만큼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름만 거창한 장밋빛 개발계획에 천혜의 경관을 지닌 용유·무의 지역이 갈수록 황폐해져 가고 있다.
<일요신문>의 보도 이후 인천경제 자유구역청은 지난달 캠핀스키 측에 계약해지 예고 통보를 보냈다. 3개월 내에(7월까지) SPC(특수목적법인)를 설립하지 않을 경우 계약을 해지하겠다는 내용으로 사실상의 최후통첩인 셈이다.
이에 대해 캠핀스키 한국법인(이하 KI코리아) 측은 지난 1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인천경제청과의 기본협약에 명시된 일정대로 SPC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이날은 그동안 논란의 중심에 있던 수잔 조 KI코리아 공동대표가 처음으로 언론에 얼굴을 내밀었다. 수잔 조 대표는 공동대표였던 박성현 전 대표로부터 횡령혐의로 고소를 당해 법정분쟁에 휘말렸던 인물이다. 수잔 조 대표는 최근 박 전 대표를 무고죄로 맞고소한 상태다.
이날 수잔 조 대표는 “해외업체, 국내 건설사, 금융기관 등과 SPC 설립 관련 양해각서를 체결하는 등 실질적인 투자유치업무가 진행 중”이라며 “다음주 방한하는 레토 위트워 캠핀스키 회장이 구체적으로 계획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또 KI코리아는 자사의 법적 지위와 관련된 의혹에 대해 “지난 2월 캠핀스키 S.A와 KI 코퍼레이션으로부터 자사가 인천경제청과 협의 및 사업진행을 위한 대리권을 부여받았다는 문서를 제출했다”면서 “특히 최근 시가 요구한 법적 대표권에 관한 공증을 거친 문서도 제출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KI코리아의 이 같은 입장 표명에도 불구하고 인천경제청 측은 여전히 반신반의하고 있다. 그동안 KI코리아 측이 여러 차례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일단은 지켜봐야 한다는 것. 인천경제청 측은 레토 회장 방문을 지켜보고 모든 서류에 대해 면밀히 검토하고 살펴본 후 원칙적으로 처리해 나간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하지만 인천경제청 내부에서는 KI코리아 측이 보내온 법적 지위권 관련 서류에 대해 주주회의를 거치지도 않은 채 회장 명의로만 회신이 온 것은 인정할 수 없다고 반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지난해부터 계속되어 온 캠핀스키 측과 인천경제청 간의 진실공방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이런 두 주체 간의 지루한 공방에 지치는 것은 용유·무의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다.
캠핀스키는 용유·무의 전체 개발권을 가졌지만 4조 6000억 원으로 추정되는 토지보상에 대한 계획을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아 그동안 주민들이 캠핀스키와의 계약은 무효라고 주장해왔다. 보상계획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캠핀스키 측은 지난 1일 구체적인 보상계획을 뒤늦게 내놨다.
인천시도 이러한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구체적 계획을 검증하지도 않은 채 80조 원에 이르는 대형사업을 외국업체에 덥석 넘겼기 때문이다. 캠핀스키와 인천시 간에 구체적으로 어떤 조건이 오갔는지는 두 쪽 모두 함구하고 있다. 로비의혹이 끊이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캠핀스키 측의 사업 참여 확정 이후 이 지역에는 두 가지의 심각한 부작용이 생겨났다.
하나는 캠핀스키의 사업참여가 확정되면서 보상을 노린 외지인들이 무분별하게 건물을 지은 것이다. 지난해 8월부터 3월까지 이 지역에 새로 들어선 건축물은 약 300동에 달한다. 이 지역에서 가장 알짜배기라 할 수 있는 을왕리 해수욕장 뒤편과 왕산, 오성산 등 산 밑둥이가 온통 파헤쳐졌는가 하면 임야 등은 형질변경을 통해 대지로 전환돼 보상을 노린 건축물까지 들어서고 있다. 이는 용유지역의 임야가 보통 3.3㎡당 80만 원대에 거래되고 있는 반면 대지는 300만 원 이상으로 거래되고 있어 사업지구로 지정되면 토지보상과 함께 지상물 보상까지 받을 경우 5배 이상의 보상금을 탈 수 있기 때문이다. 토지소유주들은 임야 용도변경에 따른 개발부담금이나 건축비용을 감안하더라도 막대한 투자이익을 얻을 수 있어 ‘묻지마’ 개발을 해왔다. 건축주 대다수는 지역주민이 아닌 외지인이고 신축 건축물들도 철골 형태의 가건물들이다. 게다가 사람도 살지 않는 ‘유령건물’이다. 건축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자 지난 3월 인천시는 건축허가 제한구역으로 묶었으나 그 무렵부터는 캠핀스키 측의 참여가 불투명해지면서 오히려 매물들이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이를 사려는 사람들이 없다. 한마디로 유령의 집만 곳곳에 들어선 셈이다.
이곳에서 오래 살아온 주민들의 고통은 더 심하다. 대표적인 게 세금 폭탄이다. 오래 전부터 이 땅으로 농사를 지어왔으나 몇 해 전부터 개발계획이 구체화되면서 공시지가도 올랐다.
하지만 주민들은 개발제한에 묶여 땅을 팔지도 못하고 있다. 개발계획이 있는 곳이어서 공시지가만 계속 올라 내는 세금은 더 많아졌다. 지난 2004년 ㎡당 6만 6700원 하던 공시지가는 2007년 11만 3000여 원으로 두배 가까이 올랐다. 현재 알짜지역에서는 3.3㎡당 1000만 원까지 치솟은 곳도 있다고 하니 매물이 나와도 당연히 살 사람이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몇 해 전부터 일부 주민들은 불법인 줄 알면서도 생존을 위해 건물을 지어 영업을 하고 있다. 을왕리 해수욕장 일대 업소들 중 적지 않은 곳이 이런 무허가 건물이다. 현재 철거이행 강제금 대상 건축물만도 680군데(40억여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렀지만 시도 책임이 있는 셈이라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
결국 80조 원에 이르는 용유·무의 지구 개발계획은 참여회사와 행정기관 간의 엇박자로 인해 주민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셈이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