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정권 ‘화약고’로 날아가는 불화살
▲ 박연차 회장의 사업체에 대한 세무조사는 현 정권의 전 정권에 대한 사정 신호탄으로 해석되고 있다. 연합뉴스 | ||
국가기록원이 대통령 기록물 유출과 관련해 전직 청와대 비서관 10여 명을 고발한 데 이어 이번에는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로 잘 알려진 박연차 회장이 운영하는 태광실업과 정산CC에 대한 세무 당국의 조사가 진행 중이다. 회사 측은 정기적인 세무조사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정기관에서는 지난 2006년 태광실업의 휴켐스 매입과정에서 불거진 농협의 헐값매각 의혹으로까지 조사가 확대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렇게 될 경우 정권 차원에서 매각과정에 개입했는지 여부도 조사대상에 오를 수 있어 파장은 더욱 커질 수 있다.
특히 현 정권이 박연차 회장 소유의 사업체에 세무조사를 실시한다는 것은 노 전 대통령을 겨냥했다고도 볼 수 있어 상황에 따라서는 전·현 정권 간의 정면충돌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대통령기록물 유출 진실공방으로 한바탕 날선 공방을 벌인 전·현 정권이 이번에는 태광실업 세무조사를 놓고 다시 한 번 맞서게 된 것이다.
지난 1일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은 직원 10여 명을 경남 김해에 있는 태광실업과 정산컨트리클럽에 파견, 회계 관련 자료를 확보했다. 국세청은 오는 10월 4일까지 세무조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두 회사에 통보했다.
이번 세무조사는 태광실업과 정산CC를 겨냥했다기보다는 지난 2006년 박 회장이 인수한 휴켐스 쪽을 겨냥하고 있다는 것이 세무당국을 비롯한 사정기관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현재 박 회장은 휴켐스의 최대주주다.
휴켐스는 태광실업에 인수되기 전인 2006년 초반까지 농협중앙회의 자회사였던 남해화학에 소속되어 있었다. 휴켐스는 농협 자회사 가운데서도 300억 원에서 400억 원의 안정적인 매출을 올리는 알짜배기 회사였다.
하지만 농협은 이 회사를 박연차 회장의 태광실업에 전격 매각했고 이 과정에서 헐값매각 의혹이 불거진 바 있다. 당시 농협중앙회는 공개경쟁입찰에서 1777억 원을 제시한 박 회장 측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입찰에 참여한 업체 중 경남기업은 1525억 원, 한일시멘트는 1277억 원, 한솔케미칼은 550억 원을 각각 제시했었다.
하지만 농협중앙회는 본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 박 회장 측이 당초 제시한 매입대금에서 322억 원을 깎아주면서 논란을 일으켰다. 결국 박 회장은 공개경쟁입찰 과정에서 두 번째로 높은 가격을 제시했던 경남기업보다 70억 원이 낮은 가격으로 휴켐스를 매입했다.
▲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봉하마을. | ||
하지만 당시 이 헐값매입 의혹은 유야무야 넘어간 바 있다. 언젠가는 터질 화약고였던 셈이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이번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가 휴켐스 헐값매각 의혹을 밝히는 데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세무당국에서는 태광실업의 세무조사와 관련해 언급하는 것에 대해 껄끄러워하고 있다.
국세청 관계자는 “세무조사를 받는 회사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의미 등을 고려해 조사 중인 사안이 언론에 흘러나갈 경우 적지 않은 파장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번 세무조사가 정기조사가 아닌 또 다른 의미가 있음을 내비친 발언인 셈.
이번 조사를 실시하고 있는 서울청 조사4국 관계자는 “조사가 진행 중이어서 구체적으로 밝히기 어렵지만 정기조사보다는 특별조사의 성격이 짙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태광실업이든 휴켐스든 세무당국의 칼날이 박 회장에게 향해 있는 이유는 무엇일가. 현재까지는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에 대한 사정작업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지고 있는 작업이란 해석이 가장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근 세무당국이 노 전 대통령의 부산상고 동창이 운영하던 제피로스 골프장을 세무조사해 관련자들을 사법처리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이번 공기업 수사가 마무리되면서 전 정권 실세들에 대한 사정작업이 마무리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국세청이나 검찰에서는 국회원구성이 마무리되고 을지포커스 훈련이 끝난 이후인 9월쯤에 대대적인 사정폭풍이 몰아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사정기관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정권교체 이후 쇠고기 파동 등으로 인해 전 정권과의 선긋기 작업이 미진했던 만큼 정국이 안정되는 시점에서 반드시 짚고 넘어갈 가능성이 높다는 데 무게가 실리고 있다. 결국 소리는 요란했으나 정작 실체가 보이지 않았던 이명박 정권의 사정바람은 김해에서부터 소리없이 북상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