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투’ 앞에선 연륜도 소용 없었다
결혼생활 45년 만이었다. 외손자 육아를 위해 딸집으로 떠난 아내 A 씨(66)는 돌연 남편 B 씨(73)에게 이혼을 요구했다. B 씨는 여러 차례 이혼 요구를 거절했지만 아내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A 씨는 2년 전부터 남편 B 씨로부터 “남자가 있다는 걸 안다”며 온갖 괴롭힘에 시달려왔기에 꼭 이혼을 하고 싶었다.
자신의 설득에도 상황이 여의치 않자 남편 B 씨는 배신감에 휩싸여 딸의 집을 찾아갔다. 손에는 몽둥이와 흉기를 든 채로. 얼굴을 마주하고도 말이 통하지 않자 결국 두 사람은 몸싸움을 시작했고 B 씨는 무지막지하게 몽둥이를 휘둘렀다. 일흔을 넘긴 고령이었지만 여자의 힘으로 감당하긴 역부족이었다.
급기야 B 씨는 아내를 흉기로 찔렀고 제대로 응급처치를 하지 않아 사망에 이르게 했다. 아내의 피가 묻은 손까지 깨끗하게 씻은 B 씨는 경찰에 가서 자수를 하긴 했지만 수사과정에서 자신의 범행을 정당화하는 태도를 보여 가족들에게까지 충격을 줬다. 결국 살인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B 씨는 1심에서 징역 9년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결과에 불만을 품은 남편 B 씨가 항소까지 했는데 재판부는 “이혼 소송을 요구한 피해자의 의사를 존중하며 법의 테두리 내에서 대화와 설득을 통해 문제를 풀어가는 대신 일생을 함께해온 피해자를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했다. 수사과정에서도 피해자에게 책임을 돌리며 범행을 정당화하는 태도를 보인 점 등을 고려할 때 원심의 형이 너무 가볍다”며 오히려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반평생이 넘는 시간을 함께한 배우자를 자기 손으로 죽인 것도 충분히 끔찍한 일이지만 나아가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수법을 동원해 살인을 꿈꾼 노인도 있다. 10살 연상의 여인 임 아무개 씨(70)와 사랑에 빠진 김 아무개 씨(60)는 어느 날 이상한 소문을 듣게 됐다. 임 씨가 다른 남자를 만난다는 내용이었다. 질투심과 배신감에 화를 참지 못한 김 씨는 곧장 임 씨를 찾아가 감금한 뒤 무자비한 폭행을 가했다.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은 김 씨는 임 씨를 불 태워 죽이려는 계획까지 세웠다. 실제 임 씨의 아파트를 찾아간 김 씨는 2ℓ 휘발유를 이용해 신문지에 불을 붙인 후 창문을 통해 주방 안으로 던져버렸다. 다행히 안방에 있던 임 씨가 ‘펑’하는 소리에 거실로 나와 급히 불을 꺼 김 씨의 살인극은 실패로 돌아갔다. 다만 김 씨는 질투어린 복수극의 결과로 징역 4년을 선고 받았다.
노년층에서 발생하는 이별 범죄의 또 다른 특징은 가해자의 극단적인 선택으로 사건이 끝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여생을 감옥 속에서 보내게 된 C 씨(77)도 다른 남자를 만나는 내연녀(48)를 살해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무려 29살이나 어린 여성과 내연관계를 맺은 C 씨는 늘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연녀의 마음을 잡기 위해 돈거래까지 하며 공을 들였지만 날이 갈수록 관계는 악화됐다.
그러던 중 내연녀가 다른 남자를 만난다는 사실을 알게 됐고 질투심을 이기지 못해 끝내 살인까지 저질렀다. 뒤늦게 잘못을 깨달은 C 씨는 내연녀의 자녀에게 “너희 어머니를 살해했다. 나도 목숨을 끊겠다”고 연락한 뒤 목을 매 자살을 시도했다. 하지만 신고를 받은 경찰의 도움으로 자살은 실패로 돌아갔고 고령의 몸으로 감옥에서 죄를 뉘우치는 신세가 됐다.
노인전문병원에서 근무하는 한 전문상담사는 “요양원이나 상담소를 찾는 어르신들 중에서도 남편의 의처증, 아내의 의부증, 스토킹 피해 등을 호소하는 분이 많다”며 “나이가 들면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세상을 떠나고 자신의 가정이 생긴 자녀들과도 거리가 멀어진다. 그렇게 되면 배우자나 연인에게 더욱 집착하게 되는데 별일 아닌 것에도 화를 내게 되고 질투를 하게 된다. 의지했던 만큼 배신감이 크니 끔찍한 범죄로 연결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