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네 약품 불처방’ 경고에 간이 ‘철렁’
의사들은 “대웅제약이 예전에도 비슷한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본때를 보여야 한다”며 강경하게 나섰고 일부는 대웅제약 제품 불매운동까지 벌이기 시작했다. 전체 매출의 85%가 전문의약품인 대웅제약은 급기야 대표이사가 의협을 방문해 사과까지 했다.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갑’과 ‘을’ 관계의 주체들이 얽힌 사건을 들여다봤다.
대웅제약은 지난 8월 언론사에 ‘Say Health Diet’ 프로그램을 실시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이 프로그램은 ‘약사를 대상으로 체계적인 다이어트 상담을 할 수 있는 비만관리 전문가를 양성한다’는 취지였다. 적지 않은 약사들이 대웅제약이 실시한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비만 교육을 받으면 약국 운영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교육은 일주일 만에 중단됐다. 의사들의 반발 때문이었다. 프로그램 내용 중에 ‘비만을 진단한다’는 내용이 문제였다. 의사들은 “비만은 세계보건기구가 지정한 질병인데, 이에 대한 진단을 약사가 하는 것은 실정법 위반”이라고 주장하며 강하게 항의했다. 또 이들은 “비만전문가 양성은 일반인들에게 약사들도 비만 치료약을 처방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의협 차원의 거센 어필에 대웅제약은 ‘뜨끔’할 수밖에 없었다. 대웅제약은 의사들의 처방 없이도 판매할 수 있는 일반의약품인 ‘우루사’로 유명한 회사지만 실상 매출의 85%가 전문의약품이었기 때문이다. 의사들의 반발은 결국 매출 감소로 이어질게 뻔했다.
실제로 일부 의사들은 처방전에서 대웅제약 제품을 빼기도 했다.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도 의사들의 중론이 강경하게 모아지자 대웅제약에 공식적으로 항의를 했다.
서울 동대문 중앙성심의원 좌훈정 원장은 대웅제약 본사 앞에서 지난 26일과 27일 이틀 동안 1인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그는 “대웅제약이 이런 일을 벌인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좌 원장은 “2000년 <대웅팜>이라는 잡지를 통해 처방전문약국 활성화 기사를 주도적으로 실은 적이 있고 2004년엔 대웅제약 임원이 일반의약활성화위원회 회장을 맡은 일도 있었다”며 “당시에도 약사 측 입장을 견지했던 대웅제약이 4년을 주기로 이런 일을 벌이는 것을 그냥 넘어갈 수 없어 1인시위를 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대웅제약은 즉각 프로그램을 중단하고 진화에 나섰다. 대웅제약 측은 “약사들을 대상으로 단순히 다이어트 상담에 대한 교육을 했을 뿐 비만에 대한 진단 내용은 없었다”며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에 내용에 대해 자문의사들과 충분히 협의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프로그램 중단과 ‘진단과 처방 내용이 없다’는 대웅제약의 설명은 ‘약발’이 전혀 먹히질 않았다. 의협의 김주경 대변인은 “프로그램 팸플릿 내용을 보면 비만에 대해 진단과 처방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나와 있었을 뿐더러 약사들이 비만 상담을 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의협의 주장에 대해서 일각에서는 “의사들이 지나치게 이권에 민감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도 하다. 이에 대해 김 대변인은 “약사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면서 특정 제품을 소비자들에게 권유할 수 있는데, 이러한 ‘권유’ 역시 위법이다”며 “약사를 대상으로 한 제약회사의 마케팅 비용은 약품 가격에 포함되 결국 소비자의 부담으로 이어진다. 또 처방 자격이 없는 약사의 특정 제품 권유도 있어선 안 되기 때문에 의협 차원에서 강력히 문제제기를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부 강경한 의사들은 “세 가지 요구 조건을 들어주지 않으면 대웅제약 제품 불처방 운동을 벌이겠다”고 압박했다. 세 가지 요구 조건은 △언론을 통한 공개 사과 △대표 이사의 재발방지 약속 △담당자 처벌 등이었다.
이렇게 의사들의 심기가 누그러들지 않자 대웅제약은 전무이사가 의협을 방문해 사과의 뜻을 전했다. 그것으로도 모자라자 9월 2일엔 이종욱 대표이사까지 직접 의협을 찾아가 재발방지를 약속했다. 이 대표를 만난 의협 관계자들은 “공식 사과문을 의협 신문에 게재하고 담당자를 문책할 것”을 요구했다고 전해진다. 의약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업계 3~4위 제약회사가 의협을 찾아와 머리를 숙인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설명했다.
대웅제약 측 역시 의협의 요구에 따라 9월 3일 의협 신문에 사과문을 게재했다. 하지만 담당자 문책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한다.
일단 의협 측은 대웅제약 측의 일련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으로 이번 사태가 일단락됐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의협 김 대변인은 “의약분업이 시행 8년째를 맞이하고 있지만 아직도 현장에서는 실정법을 위반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있는데, 이번 일도 그와 같은 배경 속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또 “대웅제약에서 프로그램을 만든 직원들이 최근에 제약 회사와는 관계없는 회사에서 스카우트되어 온 이들이라고 알고 있다”며 “의료계의 실상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무리하게 마케팅을 하다가 빚어진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어 김 대변인은 “대웅제약 측의 사과가 불만족스럽다고 판단하는 일부 의사들이 불매운동을 할 수는 있지만 의협 차원에서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반면 좀더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일부 의사들은 “아직 미흡하다”는 입장이다. 좌 원장은 “대웅제약이 국민들에게 비만 치료약 오남용을 호도한 측면이 있으니 의협신문 같은 전문지가 아닌 대중지에 사과문을 게재해야 하며 관련자들은 실정법을 위반했기 때문에 꼭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또 사태의 추이를 보아가며 개인적으로라도 ‘대웅제약 제품 불처방운동’을 펴나가겠는 생각이다.
한편 대웅제약의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약사들 사이에서도 간간이 볼멘소리가 나오고 있다. 약사회 관계자에 따르면 “협회 차원에서 진행된 일이 아니기 때문에 의협과 대웅제약 간의 문제에 대해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기 곤란하다”며 “의협의 주장으로 프로그램이 갑작스럽게 중단되어 일부 약사들의 불만이 있을 수 있으나 중론은 아니다”고 전했다. 또 의협 측이 주장하는 “약사가 약을 권유하는 것은 불법이다”는 얘기에 대해서는 “실제 현장에서는 그 규정이 애매모호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며 “약사가 어떤 증상에 대해 이런 저런 약이 있다는 정도의 얘기는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류인홍 기자 ledh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