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한 적 없다는데 고소자 둔갑?
▲ 사진=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당시 검찰은 이 사건에 대해 ‘조작된 논문을 <사이언스>에 게재하고 줄기세포 수립의 실용화 가능성을 과장해 기업과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타낸 사기극’으로 결론내렸고, 황 박사는 2006년 5월 12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현재 황 박사에 대한 공판이 26차까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느닷없이 SK후원금 문제가 불거지며 관심을 끌고 있다.
자칫하면 황 박사 공판이 아니라 SK 공판으로 번질지도 모르는 법정안으로 들어가 본다.
그동안 황우석 박사 주변에도 많은 일이 벌어졌다. 우선 지난 5월 21일 미국 <뉴욕타임스>는 황 박사 팀이 미국 연구팀도 10여 년째 해내지 못했던 애완견 복제에 성공했다고 보도해 황 박사는 건재를 과시한 듯싶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지난 7월 1일 황 박사의 인간 체세포 배아 복제 연구를 승인하지 않기로 최종 결정했다. 그런가하면 학계에서는 이미 ‘역분화방식에 의한 줄기세포 연구’가 세계적인 추세로 ‘체세포복제방식에 의한 배아줄기세포 연구’는 한물갔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황 박사 주변에서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정작 황 박사에 대한 재판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2006년 6월 20일 첫 공판이 시작된 후 지난 9월 11일 열린 26번째 공판까지 무려 2년 3개월의 시간이 지났지만 재판은 아직 반도 진행되지 않았다는 게 법원 주변의 얘기다. 사건 자체가 과학적 전문지식을 요하는 터라 검증이 간단하지 않고 대규모의 증인신문도 길어져 신속한 재판 진행이 어렵기 때문이라는 것이 법원 측의 설명이다.
연구비 횡령, 사기 혐의 등으로 기소한 검찰과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황 박사 사이의 첨예한 법정공방과 날카로운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지난 8월 19일 열린 25차 공판에서는 SK 후원금과 관련, 황 박사의 사기, 횡령 혐의에 대한 확인 작업이 이뤄져 특히 관심을 끌었다. 쟁점은 황 박사가 줄기세포 수립의 실용화 가능성을 과장해 지원금을 타내 개인 용도로 사용했는지 여부로 이 부분이 사기, 횡령의 범죄가 성립될지를 가를 핵심 부분이 될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검찰의 핵심적인 기소내용은 황 박사가 ‘2004년 및 2005년 <사이언스>에 허위로 조작된 논문을 게재하고 소위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의 효율성, 실용성을 위장하여 발표하는 등 연구결과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환상을 조장한 후 2005년 9월 28일 이 논문 및 연구결과 발표의 진실성을 믿은 SK로부터 체세포 핵이식 기술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동물 연구와 인간 줄기세포 연구 명목으로 10억 원을 교부받아 편취했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2005년 7월 중순경 박상원 당시 SK 기술원장이 황 박사로부터 ‘연구비 지원을 받고 싶으니 만나자’는 전화를 받고 만났으며 황 박사는 이 자리에서 ‘환자 맞춤형 줄기세포’ 연구에 필요한 기자재 구입비용과 연구원 인건비 등이 부족하다면서 줄기세포 관련 기술, 정보, 인맥 네트워크 등을 SK에 제공해 주고, 줄기세포가 상용화되면 SK에 우선권 등 유리한 기회를 주겠다는 조건으로 5년간 매년 15억 원씩 모두 75억 원을 지급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SK는 그 대신 3년에 걸쳐 매년 10억 원씩 지급하기로 약정했다는 내용이다.
SK 후원금과 관련된 이날 공판은 박상원 전 SK 기술원장과 조정호 팀장이 증인으로 출석한 가운데 검찰이 기소한 내용을 중점적으로 검증하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이날 공판에서는 검찰의 기소내용에 반하는 법정 증언이 나와 관심을 끌었다.
첫째, 황 박사가 SK 측에 먼저 연락을 취했는지 부분이다. 두 증인은 ‘황 박사가 먼저 만나자고 전화한 사실이 있느냐’는 변호인단의 질문에 ‘회장의 지시로 황 박사에게 먼저 연락을 취했다’라고 답했다. SK 측에서 황 박사에게 먼저 연락을 했는데 황 박사와 연락이 닿지 않았으며, 연락을 달라는 전화 용건을 전해들은 황 박사가 연락을 했다는 것이다. 이에 황 박사 지지단체 측에서는 검찰이 중간 과정을 모두 무시하고 황 박사가 연락을 했다는 결과만 강조해서 먼저 SK에 접촉했다는 억지 논리를 펼쳤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하지만 검찰은 ‘서류상에 구체적인 반대급부의 계약 사항은 없었지만 황 박사가 줄기세포가 상용화되거나 획기적인 연구 성과가 나오면 SK에 유리한 기회가 제공될 수 있다는 진술을 했다’는 사실을 언급하면서 ‘이는 반대급부에 해당하는 확정적인 구두계약’이라고 반박했다.
셋째, 후원금 사용내역에 대한 것으로 핵심은 SK로부터 받은 10억 원에 대한 사용내역 중 순수 연구비로 쓰지 않은 자금(김선종이 음독했을 때 치료비, 박종혁의 생활비, 박을순의 귀국 항공비 등)에 대한 적법성 여부다.
변호인단은 후원금은 학술이나 연구활동 지원 등 다양한 용도로 쓰기 위해 받았기 때문에 순수 연구비로 사용되지 않았다 해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김선종 같은 범인을 돕는 데 사용하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반박, 첨예한 대립각을 세웠다.
이날 법정 공방에서 가장 중요한 쟁점은 SK가 황 박사를 고소했는지의 여부였다. 검찰 기소내용에 따르면 SK는 연구 성과를 과장해 연구비 명목으로 후원금을 받아 마음대로 사용한 황 박사의 농간에 놀아난 피해자가 된다. 그리고 실제로 검찰은 피해자의 신분인 SK 명의로 고소장이 작성되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날 “SK 측에서 피해자의 자격으로 황 박사를 고소한 사실이 있는가”라는 재판장의 질문에 증인들은 “그런 사실이 없다”고 답변, 법정을 술렁이게 했다.
현재 황 박사 지지자들은 검찰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황 박사의 죄를 성립시키기 위해 무리한 기소를 했다고 강력히 반발하는 동시에 검찰의 수사의도에도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들은 “공판과정 내내 검찰은 황 박사를 기소할 목적으로 기소사항이 될 만한 명분과 정황을 만들어내고 있을 뿐 아니라 무리한 짜맞추기 수사를 통해 사실관계나 전후 전개과정을 왜곡하고 있다”며 “피해자를 만들어내기 위해 허위로 SK 측을 피해 고소자로 둔갑시키는 비상식적인 행위까지 서슴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특히 황 박사 지지단체인 ‘국민의 소리’ 측은 이날 법정 증인들의 진술에 더해 좀 더 정확한 사실 확인을 위해 8월 말 SK 측에 ‘황우석 고소 사실여부에 대한 공개질의서’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질의서에는 ▲SK 측이 박상원 전 원장도 모르는 상황에서 검찰 측에 공식적으로 고소를 한 사실이 있는가 ▲만일 SK 측이 고소한 사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검찰 측이 SK의 명의를 도용해 허위기재했다면 고소 취하 등 시정조치를 해줄 것 ▲검찰 측의 주장대로 박상원 전 원장도 모르게 SK 측이 고소하였다면 황우석 박사의 처벌을 원하는지 아니면 취하할 의사가 있는지 입장을 밝힐 것 등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국민의 소리’ 관계자는 “SK 측이 황 박사를 고소한 사실이 없음에도 피해자 신분으로 황 박사를 고소한 것으로 되어 있다면 여러 가지 위험한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위에 대한 사실 확인은 반드시 이뤄져야 할 사안”이라며 공개질의서를 보낸 배경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SK 측으로부터 어떤 답변도 들을 수 없었다고 한다.
‘국민의 소리’ 등 황 박사 지지단체 측은 경찰이 짜맞추기 수사를 통해 무리하게 재판을 진행시키고 있다며 만약 재판에서 이 같은 사실이 밝혀질 경우 국민적 피해보상 청구운동도 불사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검찰이나 안티 황우석 입장의 사람들은 “줄기세포와 관련 허위로 조작된 논문을 발표한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며 가장 중요한 사안”이라며 나머지 부분들은 그에 부수된 것들로 범죄 여부는 재판에서 가려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아직도 ‘황우석 신드롬’은 진행형이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