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수록 좋은 관계가 ‘찰떡’처럼 끈적
▲ 지난 7일 서울시교육청 국정감사에 참석한 공정택 교육감이 긴장한 듯 얼굴을 만지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공 교육감은 국감에서 “대가성 없는 사적인 관계의 채무”라고 해명했지만 사설 학원과 각 학교의 교장을 관리·감독해야 하는 교육감이 그들의 돈으로 선거를 치렀다는 점에서 ‘적과 내통한 사람’이라는 비난까지 받고 있다. 공 교육감의 해명에도 식을 줄 모르는 학원가와의 유착 의혹을 파헤쳐보았다.
공정택 서울시 교육감의 학원 유착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은 선거 전부터 쏠리고 있었다. 올 6월 그가 학원의 심야 교습 시간을 밤 10시에서 11시로 연장하는 학원 조례 개정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선거를 한 달여 앞둔 상황에서 벌어진 일. 당시 시민단체들은 “공 교육감이 선거를 앞두고 학원가의 지지를 얻기 위해 공교육을 버리는 정책을 펴고 있다”며 학원계와 공 교육감의 유착 의혹을 제기했다.
공 교육감은 선거에서 박빙의 차이로 주경복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그 이후 ‘국제중 설립’ ‘일제고사’ ‘고교선택제’ 등의 정책을 내놓으며 그동안 주장해오던 교육의 자율경쟁 기조를 더욱 강화해갔다. 이러한 공 교육감의 정책에 대해 일부 시민단체 등은 사교육비 상승을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참교육학부모회 박범이 서울지부장은 “국제중 설립으로 학원가에는 국제중 대비반 개설 붐이 일어났고 일제고사 때문에 올 3월과 9월에 일제고사 대비반이 문전성시를 이뤘다”고 전했다. 즉 서울시 교육청의 정책이 사교육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는 지적이다.
공 교육감이 결과적으로 ‘친학원 정책’을 편 셈이 됐고 결국 그의 학원계와의 유착설이 다시 한번 불거져 나오게 됐다. 그런데 최근 국정감사를 통해 그가 사설학원 원장으로부터 돈을 빌린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러한 의혹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
그가 돈을 빌린 사설학원 관계자는 종로엠학원 최명옥 중구분원장과 성암학원 이재식 이사장. 공 교육감은 선거비용 22억 원 중 18억 원을 여러 사람으로부터 빌렸는데 그중 최 원장한테서 5억 1000만여 원, 이 이사장한테서 2억 원을 빌린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최 원장은 교육감 선거 당시 공 교육감 측의 선대본부장을 맡았던 인물이었다.
또 이러한 차입금에 대해 이자 없이 원금만 갚으면 된다는 내용의 글이 적힌 차용증이 공개돼 단순한 차입이 아닌 대가성 금품 수수라는 의혹이 더욱 강하게 제기되고 있기도 하다.
공 교육감은 국감 현장에서 최 원장에게 돈을 빌린 것에 대해 “물의를 일으켜 송구스럽다”면서도 “최 원장은 40년 전 제자, 이 이사는 매제로 사적인 관계이며 빌린 돈에 대한 대가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 측은 “종로엠학원 역시 국제중 대비반을 운영했다”며 공세를 퍼부었다.
한편 종로엠학원 목동분원은 지난해 김포외고 시험지 유출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곳이기도 하다. 당시 종로엠학원 측은 “프랜차이즈 형태라 본사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해명한 바 있다. 현재 종로엠학원의 대표는 최명옥 원장의 부인이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공 교육감에 대한 의혹은 사립고와의 유착으로 확대되고 있기도 하다. 서울 은평뉴타운 지역에 자사고 설립을 추진 중인 하나금융지주 김승유 회장으로부터 공 교육감이 300만 원의 격려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던 것. 또 교장·교감을 포함한 현직 교원 21명에게 900여 만 원을 받기도 있었다.
특히 공 교육감이 선거를 앞두고 후원금 모집 안내장을 발송한 것도 문제가 됐다. 이 안내장에는 “법정 한도 내에서 기부금을 모을 수 있으니 도와 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서울시 교육청이 자사고의 인가권과 학교 운영의 세부사항에 대한 허가권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당시 선거자금을 지원한 지방교육청 국장 등 관리직 교원 3명이 선거 전후를 시점으로 해 승진을 했다.
참여연대는 10월 9일 검찰이 공 교육감의 뇌물 수수 혐의 등에 대해 엄정하게 수사해야 한다며 ‘엄정 수사촉구서’를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했다. 또한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은 “대가성 금품수수 의혹에 대해 철저히 수사해야 한다”며 “공교육 대신 사교육을 부추기는 교육감은 즉각 사퇴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현재 검찰수사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사법처리 여부는 미지수라는 게 중론. 단순히 돈을 빌린 차원이기 때문에 도덕적으론 몰라도 법적으론 문제삼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야권과 시민단체들은 “돈을 빌려준 사람들이 교육감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람들이고 이자도 없었기 때문에 단순한 차입으로 볼 수 없다”며 검찰을 압박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공 교육감이 가장 적극적으로 펼친 국제중 설립은 선거비용 차입 문제 외에도 수많은 논란을 양산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현재는 영훈중과 대원중이 국제중으로 전환한다지만, 앞으로 얼마나 많은 학교가 국제중으로 바뀔지 모른다”며 “그렇게 되면 학원가는 국제중 열풍으로 호황을 누릴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국제중 설립 반대 목소리는 해당 지역의 주민들로부터 거세게 나오고 있다. 이 지역의 주민들은 “대원중이 있는 서울 중곡동은 중학교 시설이 부족해 매년 300여 명의 초교 졸업생이 원거리 배정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며 “이런 상황에서 대원중을 국제중으로 전환하는 것은 부잣집 자녀들을 위해 우리 아이들이 희생당하는 꼴”이라며 국제중 설립 반대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
자녀들을 국제중에 입학시키려고 하는 초등학생 부모들에게서도 볼멘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내년 3월에 개교 예정인 국제중의 입시요강이 명확하게 정해지지 않은 탓이다.
입시 관계자에 따르면 “국제중의 입시 요강이 학교장 추천과 면접 등으로 구성돼 있어 변별력을 가진 요소가 없으며 설립 자체에 대한 논란이 가속되면서 학부모들은 우왕좌왕하고 있다”고 전했다. 학부모들은 “논란이 많으면 많을수록 학부모들은 능력 있는 학원에 더욱 의지하게 된다”며 “결국 사교육비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고 하소연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상반기 국민소득 통계 결과 각 가정에서 지출하는 교육비는 총 15조 339억 원으로 나타났다. 이는 전년에 비해 9.1%나 늘어난 수치이고 244조 원의 가계소비지출에서 교육비는 6.2%에 달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고 한다. 경기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지만 교육 시장은 여전히 뜨거운 셈이다.
류인홍 기자 ledh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