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덕영 리버스스윕… ‘빅재미’ 안겼다
대구덕영 송홍석(오른쪽)이 천일해운 박수창을 상대로 불계승을 거뒀다.
현재 B조에서는 서울건화가 챔피언 결정전에 올라가 있다. 함양군을 3 대 1로 꺾은 충북을 건화가 다시 3 대 1로 물리쳤다. 지난해 바닥권이었던 함양군은 올해, 기존의 시니어 최호철, 주니어 전준학, 여자 박한솔에 시니어 박성균, 주니어 김치우를 영입하며 면모를 일신, 정규리그에서 당당 3위로 대도약하는 이변을 연출한 팀이다. 충북이 힘들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그러나 정규리그 12전 전승에 빛나는 최호철이 김정우에게 잡혔고, 시니어 빅3의 하나로 꼽히는 박성군이 주니어 여자 김현아에게 질 수 없는 바둑을 역전패했으며 주니어 에이스 김치우도 김용환에게 졌다. 서울건화와 충북은 지난해에 챔피언 결정전에서 만났던 사이. 그때도 건화가 이겨 챔피언이 되었다. 충북은 포스트 시즌 리턴매치에서 설욕을 벼렸으나 불발로 끝났다.
A조에서는 대구덕영이 전북알룩스를 3 대 0으로 일축하고 천일해운에 도전장을 던졌다. 22일 1, 2국에서는 정규리그 여자 다승왕 천일해운의 박지영이 여자 랭킹 1위이며 어느 팀에 가더라도 소녀가장 노릇을 하고 있는 김수영에게 불리한 바둑을 뒤집었고 정규리그 주니어 다승왕 정훈현이 강지훈에게 낙승하며 2승을 쓸어담았다. 결승 진출은 시간문제인 것으로 보였다.
23일 열린 제3국은 천일해운 조민수와 대구덕영 박강수의 대결. 박강수도 만만치 않은 저력이나 조민수는 남자 시니어 부동의 1위이고 두 사람 사이의 역대 전적에서도 크게 앞서 있기에 3 대 0으로 끝날 가능성도 없지 않았다. 바둑은 시종 조민수의 공격, 박강수의 타개였다. 종반 입구에 이르자 조민수의 낙승지세. 그러나 지독한 감기로 컨디션이 최악이었던 조민수가 끝내기에서 허점을 보였고, 박강수가 그걸 놓치지 않았다. 박강수의 역전 3집반승.
박강수는 대구덕영의 검토실로 들어와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내가 최근 조 사범에게는 한 번도 못 이겼다. 더구나 오늘 지면 끝 아닌가. 작전을 바꾸었다. 상대는 워낙 강펀치의 소유자 아닌가. 전에는 상대가 펀치를 날리면 나도 흥분해서 맞받아쳤던 건데, 그래선 안 되겠더라. 오늘은 도망 다니자고 작심했다…^^”
박강수의 승리에 분위기가 변했다. 2 대 0과 2 대 1은 천지차이. 이제는 해볼 만하게 된 것이다. 4국은 천일해운 박수창과 대구덕영 송홍석의 일전. 송홍석은 1988년생, 스물여섯인데, 연구생 출신 주니어 중에서는 어느덧 ‘노장(?)’ 소리를 듣는다. 박수창은 스물둘. 송홍석은 예전에 아마랭킹 1위였었고 매년 입단후보 1순위로 꼽히는 전통의 강자지만, 요즘은 무조건 나이 어린 쪽이 유리하다는 것이 상식이요 정설. 송홍석은 유경민 감독에게 “기대하지 말아 주세요. 그냥 보너스 판이라고 생각해 주세요”라고 인사 아닌 인사를 남기고 대국장에 들어갔는데, 불계승을 거두고 나왔다.
초반은 흑을 든 송홍석이 활발하게 움직였다. 그러다가 백의 삭감부대를 향해 검토실이 이구동성 “이런 수도 있나. 있기는 있지만, 요즘 연구생 출신들은 절대 이런 수는 안 둘걸”이라면서 고개를 흔들었던 ‘난해한 완착’을 범했다. 백이 적절히 대응했고, 거기서부터 앞서는 것 같았다. 그런데 불과 몇 걸음 못 가서 백의 결정적 실수가 튀어나왔다. ‘난해한 완착’이라고 핀잔을 받았던 바로 그 수가 백의 결정적 실수를 유발했던 것. 이후는 흑의 바둑이었다. 종반에 한 차례 실랑이가 있었으나 박수창이 돌을 거두었다.
24일 열린 5국에서 대구덕영 박영진이 천일해운 김세현을 눌렀다. 대구덕영은 2패 뒤 3연승이라는 역전드라마를 쓰며 챔피언 결정전에 올라 10월 29일부터 서울건화와 우승을 다툰다. 연승 후 연패, 연패 후 연승은 옛날에 조치훈 9단이 심심하다 싶으면 보여주었던 짜릿한 드라마였다.
이광구 객원기자
‘난해한 완착’이 되레 약됐다 <1도>가 송홍석-박수창의 바둑. 송홍석이 흑이다. 백1로 좌변을 견제하면서 하변을 키우자고 나왔을 때 우하변 백을 향해 흑2로 ‘차렷!’한 수가 난해한 완착이었다. 물론 백이 응수하지 않으면 <2도>처럼 흑1로 들여다보고 3, 5로 나와 끊는 수가 있지만, <3도> 백1로 찌르고 3에 껴붙인 것이 적절한 대응. 흑은 백이 형태를 정비하도록 도와주기만 한 꼴이었다. 게다가 <3도> 백1, 3은 중급자들도 두는 수 아닌가. 그걸 깜빡한 것이라면 불가사의하다는 것. 흑6, 8로 어쨌거나 <1도> 흑2의 체면을 살려보려는 수. 그런데 여기서 백9가 튀어나왔다. 결과적으로 패착1호가 된 수였다. 흑은 외면하고 10에 붙여 흔들기에 들어갔다. 백9는 흑이 <4도> 2로 받아준다면 백3까지 선수하고 5로 뛰든지 하겠다는 것이었겠지만, 이 장면에서 흑2로 받을 사람을 없다는 것. <5도> 백1은 흑에게 흔드는 리듬을 주지 않으려는 응수. 그나저나 흑2가 날카로웠고 백3에 흑4가 통렬한 치중이었다. 흑10까지 전과가 다대하고 백13에 흑14로 붙여가는 수순이 매끄럽다. 흑이 승기를 잡은 장면이다. K-바둑에 가면 아기자기한 재미가 있다. 2층에 스튜디오와 분장실, 조정실, 응접실, 식당이 있고, 대국이 있는 응접실과 식당이 검토실이 된다. K-바둑에서는 선수들과 응원단에게 식사와 다과, 음료를 제공한다. 양대 바둑방송이라고는 하나 바둑TV와 K-바둑은 규모에서 비교가 안 된다. 바둑TV는 CJ라는 재벌 계열이니까. 세계기전이나 국내기전 중에서도 큰 것은 바둑TV가 다 차지하고 있고 K-바둑은 마이너 프로기전과 아마추어 대회를 방영하고 있다. 속칭 골리앗과 다윗인데, 이제는 다윗을 좀 키워야 하는 것 아닌가. 골리앗이 항상 우선이고 언제나 이긴다는 보장은 없다. 내일도 많이 가 주시기를. 저녁으로 김밥 만두를 나누어 먹으면서 관전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