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눈 제자 보면 보람 느껴”
▲ 이기봉 아마 7단이 올 초에 문 연 ‘인터내셔널 바둑 아카데미’에서 독일, 멕시코 등 세계 각국에서 온 외국인 7명이 바둑공부를 배우고 있다. | ||
태국은 동남아에선 바둑이 제일 많이 보급돼 있다. 한국과 교류도 자주 하는 편이다. 독일 학생은 4명이나 있다. 독일은 유럽에서는 바둑이 가장 성행하는 나라고 현재 유럽 바둑의 주도권을 놓고 러시아와 경쟁 중이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헝가리는 ‘호오~ 헝가리에서도’ 하게 만든다. 세르비아는 우리를 좀더 놀라게 하고, 브라질에 이르면 ‘헉! 브라질에서도’ 하고 눈이 떠진다. 남미에서도 바둑을 두기는 두지만 그 먼 곳에서 바둑을 배우러 오다니 말이다. 바둑을 배운 뒤 돌아가서 무얼 하려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하다.
명지대 말고 개인이 운영하는 국제바둑교실도 있다. 명지대에서 바둑 실기 쪽을 강의하고 있는 이기봉 씨(46·아마 7단)가 올 초에 문을 열었다. 강동구 명일동 전철 5호선 명일역 부근에 있다. 한국 명칭은 국제바둑연구실, 영문으로는 인터내셔널 바둑 아카데미(www.baduk-academy).
이 씨는 2003년 여름 한 달 동안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유럽콩그레스에 참가한 후 유럽 9개국 바둑계를 돌아보고 나서 해외 바둑 보급에 관심을 갖게 되고 재미를 붙였다고 한다. 이후 해마다 여름이면 유럽으로 바둑여행을 다녔는데 이때 한국에서 바둑을 배우고 싶어하는 외국인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이기봉 아카데미에는 현재 외국인 7명이 바둑 공부를 하고 있다. 실력은 아마 초단부터 6단 수준까지 다양하다. 국적은 명지대 바둑학과의 경우와 비슷하다. 역시 독일 학생이 많고, 핀란드와 멕시코 학생도 있다. 짧게는 한두 달 배우고 돌아가지만 문을 열 때 들어와 지금까지 장기간 공부하는 학생도 두 명이나 있다. 얼마 전에는 15명이었는데 방학이 끝나 돌아간 학생이 있어 숫자가 줄었다.
수강료는 월 500유로, 우리 돈으로 약 80만 원.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에 따라 비싸기도 하고 싸기도 한 액수인데, 숙소를 제공하는 데다가 지도사범(연구생 출신 청년 강자들) 급여가 있어 80만 원으로는 물론 적자다. 처음부터 이걸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바둑을 배우고 싶어하고, 한국의 문화, 동양의 정서를 체험하고 싶어하는 외국인들에게 그런 기회를 제공하는 것 자체가 보람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반부터 20여 년간 미국 유럽 러시아 호주 뉴질랜드 등지를 순방하며 바둑 보급에 힘을 쏟고 있는 프로기사 천풍조 8단도 비슷한 구상을 실천에 옮기고 있다. 경기도 군포시 군포역 지척에 아파트 한 채를 빌려 국제바둑교실 겸 바둑 여행객 게스트하우스로 꾸민 것. 군포시에서 건설업으로 성공했고, 얼마 전까지 군포시 바둑협회장을 맡았던 럭키건설 김홍규 사장(53)이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현재 아마 3단 정도 실력의 우크라이나 여고생이 어머니와 함께 한국에 건너와 천 8단의 아카데미에서 바둑의 꿈을 키우고 있고 조만간 캐나다 학생 한 명이 합류할 예정이다.
천 8단도 이걸로 돈을 벌겠다는 생각은 없다. 현상 유지가 목표다. 천 8단이나 이 씨나 운영이 만만치는 않지만 각오는 하고 있다. 다만 한국을 찾은 이들에게 바둑 기술 말고는 딱히 보여줄 만한 게 많지 않아 그게 좀 안타까울 따름이다. 자리가 좀 잡히면 한국의 바둑 기술뿐 아니라 바둑을 포함한 한국의 문화 전반에 관한 것을 가르쳐 주고 체험케 하는 그런 커리큘럼도 만들고 싶단다.
관심 있는 분들은 한번 찾아가 보시길. 바둑도 두고 외국어도 연습할 수 있는 즐거움이 기대 이상일 것이니까.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