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약자 특별 보호 ‘복지대피소’도 있다
일본은 ‘방재 선진국’으로 불릴 만큼 완벽한 방재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지난 4월 일본 도쿄 소방관들이 도쿄 시내에서 지진 대비 인명 구조 훈련을 하는 모습. EPA/연합뉴스
흔히 일본을 ‘방재 선진국’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일본도 처음부터 완벽한 방재 시스템을 구축한 건 아니다. 대형 재해에서 배운 교훈을 제도 개선에 반영했기에 가능했다. 원인을 분석하고, 피해를 줄이려고 노력한 결과가 일사불란한 재난 대응 체제를 만든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4년 발생한 주에쓰 지진이다. 이미 고령화사회에 접어들었던 일본은 낯선 피난생활에서 건강이 악화돼 목숨을 잃는 노인이 속출했다. 당시 일본 지자체들은 이 지진을 계기로 대피소 형태를 전면 재검토하게 된다. 그리고 ‘복지 대피소’를 따로 지정해 운영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복지 대피소란 재해 발생 시 노인, 장애인, 임산부 등 피난생활에서 특별한 배려를 필요로 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전문 스태프가 대피소 생활을 지원하는 시설이다. 즉 재해가 발생하면 지역의 일반 대피소로 1차 피난을 가고, 노약자나 보호가 필요한 사람은 다시 복지시설로 2차 피난을 가는 구조다.
또 지진 후 응급의료 제공이 지연돼 사망한 이들이 많다는 보고에 따라 재해파견의료팀도 발족했다. 이들은 일본 전역의 재해에 48시간 내 대응할 수 있는 기동성을 자랑한다. 아울러 임시진료소를 세울 수 있도록 군사용 비행기가 환자 진료에 필요한 의료장비 등을 재난 지역으로 옮기는데, 그 규모는 작은 병원을 통째로 담아 이동하는 수준이라고 한다.
이러한 체제 정비로 인해,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강타했을 때 후쿠시마현 소우마시에는 일찌감치 복지 대피소가 마련됐다. 인공투석 환자 전용 시설을 비롯해 총 7개의 복지 대피소가 개설된 것. 덕분에 더 큰 인명 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 소우마시 관계자는 “주에쓰 지진 경험을 반영해 관련제도를 정비한 게 도움이 됐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현행 일본 건축기준법에 따르면, 업무용 건물의 경우 규모 8.0 강진에도 붕괴되지 않도록 규정돼 있으며, 일반 주택도 진도 6의 지진에는 견딜 수 있을 것을 의무화하고 있다. 도로, 철도, 공원 등 공공장소의 경우 더욱 내진 설계에 중점을 둔다. 이 같은 엄격한 건축 기준은 한신 대지진의 경험에서 비롯됐다.
일본 공원에 설치된 벤치. 그러나 단지 앉아 쉬는 기능만 있는 게 아니다. 윗부분을 올리면 화장실로 바뀐다. 함께 들어 있는 텐트를 설치하면 비상용 화장실로 손색없다.
1995년 1월 17일 새벽. 일본 효고현 한신·아와지에서는 도심부를 직격한 대지진이 발생했다. 규모 7.2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나기 전까지 일본 지진관측 사상 최대의 파괴력을 보여줬던 지진이다. 단 20초 만에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됐고, 6000여 명이 목숨을 잃었다. 새벽에 발생한 탓에 사망자의 80% 정도는 취침 중 가옥에 깔려 즉사했다.
피해가 컸던 이유는 “오래된 가옥이 많았고, 그 대부분이 1960년대 내진설계 기준에 따라 건설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비록 엄청난 희생을 남겼지만, 일본 재난 대비 시스템은 한신 대지진의 전과 후로 나뉠 정도로 확연히 달라졌다.
먼저 일본 정부는 총 3차례에 걸쳐 건축기준법을 바꿨다. 낡은 집들은 내진설계가 적용된 현대식 주택으로 개조됐고, 고속도로 철근 강도는 3배 단단해졌다. 총리 관저에는 24시간 위기관리센터를 설치했으며, 내각부에도 정보집약센터를 신설했다. 10분 내 진도 분포 등을 추계할 수 있는 지진피해추계시스템(DIS)도 새롭게 정비했다. 그리고 이런 노력들은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2013년 4월 13일 새벽, 한신 대지진과 비슷한 진앙에서 규모 6.3의 지진이 발생했으나 사망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물론, 일본이 모든 재해에 효과적으로 대응한 것은 아니다. 자연재해를 예측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규모 9.0의 동일본 대지진은 일본의 예상을 완전히 벗어난 대표적인 재난이다. 특히 쓰나미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졌고 ‘세계 제일의 안전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던 일본은 치명타를 입었다. 당시 경험을 반영해 방조제 높이를 증축하고, 인프라를 재구축 하는 등 현재 일본은 방재 대비책을 한층 공고히 하려고 애쓰는 중이다.
일본 정부가 가장 심혈을 기울여 대비하고 있는 것은 ‘수도 직하형 지진’이다. 수도 직하형 지진이란 바다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도쿄 땅 밑에서 일어나 인구밀집지역을 덮친다는 뜻이다. 일본 정부는 30년 이내에 도쿄에서 지진이 일어날 확률을 70%로 본다. 따라서 이를 대비한 방재훈련도 정기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불의 고리’ 환태평양 지진대에 속해 있는 일본. 그 탓에 지진과 공생하며 재난이 그칠 날이 없다.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움직임이 일본 각지에서 분주해지고 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인테리어 소품도 방재용품 변신 조화가 여차하면 간이 화장실로… 일본인들은 지진과 같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방재용품을 구입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평상시에도 사용 가능한 아이디어 용품들이 인기를 얻고 있는데, 이 제품 역시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평범한 인테리어 조화처럼 생겼지만, 나무 부분을 들어 올리면 간이 화장실로 변신한다. 더욱이 생수, 촛불, 라이터, 만능칼, 붕대 등 다양한 방재용품이 딸려 있어 유사시 도움이 된다. 평소에는 인테리어 조화로, 재해가 발생하면 방재용품으로 여러모로 쓸모가 많은 제품이다. 가격은 2만 4000엔(약 24만 원). [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