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는 뜸들이고 ‘선수’는 속전속결
현재 국내에도 탐정들이 있다. 다만 ‘탐정’이란 명칭을 쓸 수 없어 ‘민간조사원’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법 테두리 안에서 제한된 일을 하고 있는데 심부름센터와는 다르다. 이들은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 민간조사원 조창규 씨를 통해 그들의 일과를 들여다 보았다. ‘불륜 전문 탐정’이라고도 불리는 조 씨의 황당하고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함께 소개한다.
민간조사원이라고 불리는 사설 탐정들은 주로 변호사나 경찰이 의뢰한 사건을 맡는다. 기업 스파이, 교통사고, 보험조사, 미아·실종자 찾기 등 분야도 다양하다. 아직 법적으로 공인되지 않아 사건을 간접적으로 의뢰 받는다.
서울 강남과 분당 등지에서 활동 중인 민간조사원 조창규 씨는 8년 경력으로 주로 ‘불륜 전문 탐정’으로 불렸다. 최근에는 경찰들의 의뢰로 기소 중지자를 찾는 일도 병행하고 있지만 주업은 ‘바람피우는 현장’을 급습하는 것.
보통 한 달에 10여 건을 의뢰받는다. 수임료는 건당 300만~400만 원 정도이며 난이도에 따라 차이가 난다. 한 건에 보통 2~3명이 투입되고 일주일 정도 시간이 소요된다. 의뢰인들은 대개 이혼소송을 하고 있는 부부들이다. 상대의 불륜 현장을 잡아 재판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는 이들이다. 민간조사원들도 이혼소송청구 자료가 있으면 조사에 관한 법적 책임이 덜어지기 때문에 다른 의뢰보다 선호한다.
조 씨는 “불륜 전문 탐정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인내”라고 말한다. 대상자를 미행하다보면 12시간 동안 차 안에서 꼼짝 못할 경우가 많다는 것. 그럴 때는 식사는 물론 소변까지 차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어느 순간에 대상자가 시야에서 사라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처음 바람을 피우는 이들은 민간조사원이 뒤를 좇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문제는 ‘선수’들. 바람피운 일이 한두 번이 아니어서 이미 민간조사원의 미행을 몇 차례 경험한 이들은 교묘한 방법으로 추적을 따돌린다고 한다.
조 씨는 “미행을 당해 본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차를 타고 가다 갑자기 골목으로 방향을 꺾어 들어가기도 하며 6차선 대로 한가운데에서 비상등을 켜고 정차하기도 한다. 누가 따라오는지 확인하는 것인데, 그렇게 되면 그냥 지나치는 수밖에 없어 결국 미행에 실패하고 만다”고 설명한다. 그래서 미행할 때는 한 명은 승용차로 한 명은 택시로 한다. 때때로 추적기를 달기도 하지만 ‘선수’들은 이마저 따돌리기 일쑤다. 추적기를 단 자신의 차량을 타고 가다 불륜 상대인 여성의 차로 바꿔 타고 가는 것.
도보 미행도 두 명이 한 조로 움직인다. 대상자가 지하철을 탈 경우 한 사람은 그를 따라 지하철을 타고, 한 사람은 혹시 탔다가 내릴 경우를 대비해 밖에서 기다린다는 것이다.
호텔이나 모텔의 불륜 현장에서는 타이밍이 중요하다. 현장을 급습했는데, 이미 ‘관계’가 끝났거나 시작되기 전이면 간통 현장으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 조 씨는 “불륜 상대자와 처음 만나 모텔로 들어갈 때는 관계를 맺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고 여러 번 만난 경우는 얼마 걸리지 않는다”고 전했다.
황당한 일도 비일비재하다. 한번은 한 남자의 불륜 현장을 급습했는데, 그 모텔의 다른 방에 의뢰자인 그 남자의 부인도 외간 남자와 바람피우고 있었던 것. 조 씨는 “결국 모텔에서 그 부부가 크게 싸움을 벌였고 현장에서 서로 이혼에 합의하는 것으로 끝났다”며 실소를 금치 못했다. 남편이나 부인의 불륜을 조사해달라는 의뢰인들 중에는 국회의원, 연예인들도 있다. 조 씨는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방송에서 잉꼬부부라고 소개되던 연예인 부부가 대리인을 통해 의뢰한 적도 있었다”고 전했다.
민간조사원을 양성하는 한국민간특수행정학회의 하금석 회장은 “퇴역 경찰, 군인 등이 민간조사원 교육을 받고 탐정으로 활약하고 있는데, 국내에서도 국가 인증을 받으면 더욱 유망한 직종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또 그는 “불륜 조사뿐 아니라 기업 스파이, 교통 사고 조사 등과 같이 전문적인 역량이 필요한 곳도 많다”고 밝혔다. 사설 탐정을 법제화하기 위해 경비업법을 발의한 이인기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경찰청 심부름센터 유형별 단속 실적’에 따르면 2005년 1~3월 동안 심부름센터 불법행위는 655건이나 적발됐다고 한다. 이런 폐해는 사설 탐정이 제도화되면 상당 부분 예방될 수 있다고 보는 의견이 많다. 민간조사원 업계는 “경찰은 인력의 한계로 모든 사건에 전력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사설 탐정이 이를 보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류인홍 기자 ledh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