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1은 일견 우격다짐이다. 성립 여부를 떠나 그 거칠고 담대함이 이세돌답다. 그런데 백2는 뭔가. 이건 성립 여부, 선악 여부를 떠나 흑1의 기세에 밀린 수라는 것.
<2도>는 실전진행. 백4까지 살았다. 그러나 후수로 이렇게 사는 모습이 좋을 리가 없다는 것. 상변 흑5는 기분 좋은 곳. 흑7은 백이 혹시 A로 나와 끊는 것을 노릴지도 모르므로 그에 대한 꼼꼼한 예방.
하변 흑9에서 11, 흑이 확실히 앞서가는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고, 우상변 쪽 백12, 이창호의 걸음이 바빠지고 있다.
검토실이 <1도> 백2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백은 왜 <3도> 1, 3으로 나와 5로 끊고 싸우지 않았느냐는 것. 이건 수상전인데 예컨대 흑8, 백9 다음 <4도> 흑1, 3으로 맥을 구사한다 해도 <5도> 백4까지면 흑이 수부족이라는 것.
물론 이런 건 있었다. <3도> 백7 다음 흑이 수상전으로 가지 않고, <6도>처럼 외곽에서 활용하는 것. 예컨대 흑1로 3-3에 들어가 보는 것은 기분 좋은 타이밍이고 흑3의 단수 한 방도 즐거우며 좌변에선 5로 달리는 것 역시 실리상으로 짭짤하다.
이런 정도면 흑도 불만은 없어 보인다는 것. 그러나 백도 실전처럼 볼품없이 사는 것보다는 흑 석 점을 잡아야 했다는 것이다.
<7도>는 <2도>에 이어진 실전진행. 흑1~5 다음 백6, 검토실은 부분적으로 모양의 급소라는 것 말고, 고심의 흔적을 보았다.
백은 사실은 <8도> 1로 여기를 붙여 누르고 싶다. 그러나 흑2에서 4로 끊으면? 대책이 확실치 않다. 백1이 안 된다면 A로 뛰나? 그건 또 흑B, 백C, 흑D로 너무 싱겁다는 것. 지금 형세가 흑은 싱거워도 괜찮지만 백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7도> 백6이 고심의 응수타진이었는데, <7도> 흑7이 응수타진에 대한 응수타진 이른바 역응수타진이 검토실로부터 “과연 전투의 이세돌다운, 이세돌의 재주가 번득인 한 수”라는 탄성과 함께 갈채를 받았다.
<9도>가 실전진행. 백1은 일단 최선이었지만, 흑2가 선수가 되고 있다. 흑2가 선수되는 것이 싫어서, 가령 백1이 아니라 백A면? 그건 흑B로 두는 귀살이가 남는다.
백3은 여기서부터 바삐 몰아가면서 좌상귀 쪽에서 응수하는 것을 생략하겠다는 것. 그래서 백7까지 급히 따라붙고 흑8에는?
<10도> 백1부터 끊어가는 것으로 자연스럽게 백3을 두면서 좌상귀를 보강했지만 흑4에서 6, 8로 상변 백 한 점이 떨어졌다. 그게 컸다.
<7도>의 흑7 자리를 나중에 물어 본다면? 가령 <11도>처럼 흑1로 여기를 먼저 막으면? 백은 일단 2로 붙여누른다. 거기서 흑3이면? 이제는 백4로 비키고 흑5에는 백6으로 늦춰서 그만. 아무 것도 아니라는 얘기.
외나무다리에서 이세돌은 돌진했고 이창호는 물러섰다. 한 발 나아간 것과 한 발 물러선 것. 이창호와 이세돌은 앞으로도 계속 만나고 싸울 텐데, 이들의 승부는 결국 이번과 같은 패턴이 되풀이되느냐 여하에 달렸다는 생각이 든다. 이창호는 참 웅숭깊은 기사라 며칠 지나면, 전에도 여러 번 그랬던 것처럼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웃는 듯 마는 듯한 그 특유의 얼굴로 나타날 것이다.
이광구 바둑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