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트라스’ 간판 달고 임상시험 중
▲ 96년 당시의 배일주씨 | ||
천지산은 1999년 성분이 공개됐다. SBS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배 씨는 천지산이 삼산화비소의 변형체(As4O6)임을 밝혔다. 당시는 미국과 중국에서 암과 백혈병에 대한 비소의 효과가 많이 보고되던 때로, 비소의 항암 효과에 대한 기대가 한껏 높아져 있던 상황이었다. 그후 천지산은 어떻게 된 것일까. 최근 천지산의 사정을 살펴봤다.
제대로 된 약 개발을 위해 2000년 ‘천지산’이란 회사를 설립한 배 씨는 2006년 제뉴사이언스로 회사명을 바꾼 뒤 항암제의 효능을 과학적으로 규명하기 위해 임상시험을 진행해오고 있다.
그동안 배 씨는 미국의 암 전문병원인 MD앤더슨 암센터 등과 공동으로 천지산이 암세포의 혈관 생성을 억제하고, 암세포를 줄이는 효과가 있다는 실험결과를 국제 학술지에 발표하는 한편, 한국 미국 일본에서 약의 용도·제조공정·효능에 대한 특허를 획득했다.
배 씨가 개발한 새로운 항암제의 이름은 테트라스. 비소 화합물인 육산화비소가 주성분으로, 한국과학기술연구원과 한국원자력의학원, 충북대학교 동물의학연구소, 정부 인가 연구소인 바이오톡스텍 등에서 동물실험과 독성실험을 해 그 결과를 식품의약품안전청에 제출한 뒤 효능과 안전성이 인정돼 2003년 8월 임상시험을 허가받았다.
그러나 지난 96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2~3년 내에 대량생산이 가능할 것이라고 한 배 씨의 기대는 아직까지는 실현되지 못하고 있다.
천지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한풀 꺾인 지난 2005년 <신동아>는 6월호에서 천지산의 효능과 임상시험 과정에 대해 보도했다. “암 특효제 천지산이 한국과 일본은 물론 미국과 유럽 등 세계 23개국으로부터 특허를 받았다. 30여 명의 연구진들에 의해 동물실험을 마쳤고, 이제 환자들에게 직접 투여해 보는 마지막 임상시험만 남았다”는 것이 기사의 요지였다. 기사가 나간 후 수많은 암환자들은 수년 내 시판이 가능할 거라는 기대에 한껏 흥분했다.
하지만 약 이름이 ‘테트라스’로 바뀌었으며 세계 23개국으로부터 특허를 받았다는 것 외에는 사실상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 더구나 테트라스는 환자들이 구할 수 없는 약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랬다.
테트라스를 개발하고 있는 제뉴사이언스는 지난 9월 모기업인 스카이뉴팜과 합병키로 결의, 또 한번 기대를 모았다. 당초 제뉴사이언스는 코스닥 직상장을 추진했었지만 임상시험을 위한 자금 마련이 필요해 직상장을 포기하고 모회사인 스카이뉴팜과의 합병으로 방향을 틀었던 것.
그렇지만 주가 급락으로 이마저 어렵게 됐다. 합병비용이 예상 수준을 훨씬 넘어서자 12월 15일 스카이뉴팜은 계열사인 제뉴사이언스를 흡수합병하려던 계획을 철회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세간의 관심은 테트라스가 과연 절망적인 상황에 놓여있는 암환자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효과가 있느냐에 쏠려 있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비소의 항암 효과는 속속 밝혀지고 있고 비소화합물로 기적의 항암제를 만들려는 노력도 끊이지 않고 있다. 하지만 비소를 약으로 쓸 때의 위험성은 여전히 남아있어 임상시험 단계에서 어떤 일이 생길지는 아무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기도 하다.
신약 물질이 시판 가능한 약으로 확정되기까지는 임상시험이라는 최종 관문을 통과하고 식약청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이 과정은 결코 쉽지 않다. 국립암센터에 따르면 1977~2007년 항암제와 관련해 국내에서 937건의 특허가 등록됐지만 항암제로 개발, 판매된 제품은 단 3건에 그쳐 제품화 성공률은 0.3%에 불과했다.
애초의 계획과 기대와는 달리 테트라스의 시판이 갈수록 늦어지고 있고 이에 따라 암환자들의 관심도 점차 멀어지고 있다. 그러나 테트라스는 내년 초 유럽에서 임상시험 2단계인 임상2상에 들어간다고 한다.
과연 배일주 씨는 자신의 뜻대로 암을 정복할 수 있을 것인가. 개발자 배 씨에 대해서 그동안 일각에서는 “그동안 뭐 했느냐”며 “사기꾼” 운운하는 극단적인 평가도 없진 않지만 어쨌든 테트라스는 힘겹게 한 걸음씩 우리 곁으로 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