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룩의 간을 빼먹지!
지난 7일 선릉역 테헤란로 한가운데에 있는 서울 고용지원센터 강남지점은 평일 오후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실업급여를 받으려는 사람들과 직업을 구하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김 아무개 씨(28)는 자신이 두 달간이나 다닌 직장에서 취업사기를 당해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컴퓨터 그래픽을 전공한 김 씨는 모 바이오 관련 벤처회사에 취직해 일을 했다고 한다.
이 회사에서 김 씨가 맡기로 한 일은 홈페이지 디자인. 취직 후 일주일간은 회사에서 하는 사업에 대해 먼저 알아야 된다고 해서 간단한 사내 교육을 받았다. 회사 측에선 음식물 쓰레기를 간단하게 처리할 수 있는 획기적인 특허 발명품을 가지고 있으며 인터넷을 통해 이를 저렴하게 판매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일주일간의 교육이 끝나고 난 다음날 회사는 김 씨에게 홈페이지 구축 계획이 늦어지고 있다며 계획이 수립될 때까지 앞으로 두어 달은 사업팀에서 일을 하라고 했다. 결국 김 씨는 사업팀에서 일을 하게 됐는데 김 씨에게 주어진 일은 전형적인 영업직이었다. 김 씨가 약속된 업무와 다르다고 따지자 회사 측은 단지 일정이 늦어져서 그럴 뿐이라고 설명하며 김 씨를 달랬다.
결국 김 씨는 두 달간만 영업일을 하기로 하고 일을 했는데, 나중에 실적에 쫓기게 되자 자기 돈을 써서 회사 제품을 구입하기도 했다. 그러나 두 달이 다 돼도 회사 측은 이런저런 핑계로 홈페이지 구축 계획을 미뤘다. 결국 김 씨는 회사를 그만두고 피해를 구제받을 수 있는 길을 알아보기 위해 이곳 고용지원센터를 찾았다는 것이다.
고급 인력을 대상으로 한 취업 사기도 있다. 한 명문대 컴퓨터 학과를 졸업한 한 아무개 씨(30)는 지난 11월 헤드헌터라고 소개한 사람의 전화를 받았다. 외국계 IT기업의 한국 연락 사무소에서 사람을 구하는데 면접을 보라는 것이었다.
마침 직장을 구하고 있던 한 씨는 면접 자리에서 솔깃한 이야기를 들었다. 취직이 결정되면 바로 영국으로 건너가 3년간 체류하며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또한 신입이라 연봉은 많지 않지만 유로화로 지급되기 때문에 원화로 따지면 3000만 원이 넘는다며 결코 적지 않다는 설명도 곁들여졌다.
회사 측은 일주일 만에 한 씨에게 합격을 통보했는데 이때 영국으로 파견 나가려면 인감증명서와 함께 체류수속 비용 및 보증금 조로 500만 원가량을 내야 한다고 했다. 합격 소식에 다소 기분이 들뜬 한 씨는 별다른 의심없이 500만 원과 인감증명서를 준비해 회사 측에 건넸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이들은 그로부터 일주일 만에 사무실을 정리하고 잠적해버린 것. 돈도 돈이지만 인감증명서로 인한 2차 피해도 우려되는 상황. 한 씨는 일단 경찰에 피해사실을 신고하고 자신과 같은 피해를 입은 사람들을 찾고 있다.
지하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인 광고도 믿을 게 못 된다. 명함 크기만 한 ‘딱지 전단지’에 적혀있는 각종 구인 광고를 보면 대부분 취업이 어려운 35세에서 60세 사이의 사람을 구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한번 사업에 실패했거나 혹은 기업에서 관리·경리직 경험이 있는 구직자들을 타깃으로 한 것이 특히 많다.
‘여성 혼자 사업하려니 힘드네요’라든가 ‘간부사원 모집 세무관리자 우대’ 등 누가 봐도 솔깃해질 만한 문구로 마치 순수하게 사업을 도와줄 사람을 찾는 것처럼 가장하고 있다. 게다가 연봉은 3000만 원 이상 가능하다고 돼 있기도 하며, 근무 조건 역시 매우 좋은 것처럼 적혀 있다.
그러나 실제로 해당 업체에 전화를 해보면 이들은 근무 내용에 대해서는 일절 말하지 않고, 오로지 와서 상담을 받으라는 말만 한다. 개중에는 진짜 구인광고도 없지는 않지만 이러한 것들은 거의 대부분 다단계 영업사원을 모집하는 광고라는 것이 선경험자들의 말이다.
이들은 대부분 정수기나 휴대폰 별정 사업 등을 내걸고 다단계 영업을 하고 있으며, 찾아가면 실제로 있는 유명 기업을 들먹이며 어떻해서든 설득하려 한다. 말하자면 구인광고는 사무실로 찾아오게 만드는 미끼인 셈이다.
또 지하철 딱지 전단지를 보고 찾아가면 관리직임을 강조, 회사에서 휴대폰 요금을 내주겠다며 휴대폰 개통을 권유하는 경우도 많다. 이들은 휴대폰 개통 자체가 목적이기 때문에 이들에게 속으면 그순간 혹만 달게 된다.
취업사기는 직접 고소 고발을 할 수도 있지만 노동부에서 운영하고 있는 취업포털사이트 ‘워크넷’을 통해서도 신고할 수 있다. 워크넷에선 신고받은 사건을 각 고용지원센터로 전달하고 곧바로 수사가 이뤄진다.
이 사이트의 한 관계자는 “취업알선을 대가로 돈을 요구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지만 직장 자체의 진위에 대해서는 충분히 알아봐야 한다”며 “특히 취업과 관련 교육비 명목으로 돈을 요구하는 경우는 무조건 의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진언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