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곱’은 악마의 꼬리에 불과하다?
▲ 지난 25일 군포 여대생 살해혐의로 체포된 강호순. 경기 서남부 일대에서 일어난 연쇄살인사건도 자신의 소행이라고 자백했다. 연합뉴스 | ||
지난 2006년 12월 노래방에서 만난 배 아무개 씨를 살해한 것을 시작으로 강 씨는 2007년 1월까지 20여 일 동안 무려 5명의 부녀자를 살해하는 잔혹함을 보였다. 5명을 살해한 강 씨는 2년 가까이 잠시 살인행각을 멈췄다가 또다시 2명을 살해했다. 강 씨는 피해 여성 7명 중 3명은 노래방에 손님으로 찾아가서, 4명은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여성을 상대로 범행을 저질렀다. 강 씨는 피해 여성들과 성관계를 갖거나 성폭행을 한 후 반항 여부와 상관없이 곧바로 살해했으며 옷을 모두 벗긴 뒤 시신 위에 흙을 덮는 방법으로 사체를 처리했다.
강 씨로부터 여대생 납치살해 사실을 자백받은 수사팀은 그동안 일어났던 부녀자 실종 사건들과도 강 씨가 관련이 있다고 보고 연관성을 찾는데 수사의 초점을 모아왔었다. 강 씨의 과거 및 신변, 주변인에 대해 조사하던 중 몇 가지 미심쩍은 정황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애초 강 씨의 여죄를 둘러싼 의혹은 강 씨의 네 번째 부인과 장모의 화재로 인한 사망에서 출발했다. 당시 안산시 본오동의 다세대주택 반지하에 거주하고 있던 강 씨의 네 번째 부인(당시 29세)과 장모(당시 60세)는 2005년 10월 30일 발생한 화재로 사망했다. 이 화재는 18평 남짓한 집 내부와 가재도구 등을 태워 700여 만 원의 재산피해를 내고 15분 만에 꺼졌는데 작은방에 있던 강 씨는 아들(당시 12세)을 데리고 작은방 창문을 뚫고 무사히 탈출, 화를 면했다.
하지만 당시 화재를 진압했던 소방 관계자는 “불이 난 반지하 주택은 작은방과 안방 창문이 붙어 있는데 부인과 장모를 구출하지 않았다는 점은 의아했었다”고 말했다. 특히 당시 발생한 화재는 끝내 그 원인이 밝혀지지 않아 의문을 더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의심스러운 점은 화재 후 강 씨의 보험금 수령이었다. 조사 결과 화재가 발생하기 2년 전에 부인 명의로 가입된 보험이 2개가 있었고, 1~2주 전인 10월 17일과 24일에도 부인 명의로 종합보험과 운전자상해보험 등에 가입해 강 씨는 총 4개의 보험으로 4억 8000여 만 원의 보험금을 수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뿐만 아니라 강 씨는 네 번째 부인과 3년여 동안 동거하다가 부인이 화재로 사망하기 5일 전인 25일에야 혼인신고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일부 보험은 장모가 수령인으로 돼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정황들 때문에 경찰은 강 씨가 이 화재사건에도 연루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화재 발생 당시에도 경찰은 보험금을 노린 방화 가능성에 수사의 초점을 맞추고 6개월 동안 내사를 벌였으나 증거를 찾는 데는 실패했다. 당시 강 씨는 “작은방에서 자고 있던 중 불이 난 것을 알고 알루미늄 새시 방범창을 뜯어내고 아들과 함께 탈출했다”며 “집 밖으로 나온 뒤 정신을 잃어 미처 부인과 장모를 구하지 못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또 보험 가입 및 혼인신고 날짜와 관련해서도 강 씨는 “아내의 요구에 따라 혼인신고가 미뤄졌을 뿐이다. 보험 가입도 부인과 함께 가서 가입했다”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강 씨가 자고 있던 작은방의 방범창을 사전에 훼손해 놓았는지를 확인할 수만 있다면 강 씨의 혐의를 밝힐 수 있겠지만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 쉽지 않다는 것이 경찰의 설명이다.
의심스런 대목은 또 있다. 강 씨의 과거 전력을 살펴보던 경찰은 강 씨가 10여 년 전에도 화재사고 명목으로 거액의 보험금을 수령해간 사실을 확인했다. 1999년과 2000년 강 씨는 자신이 운영하던 해장국집과 자신 소유의 덤프트럭에서 불이 나 총 6400만 원의 보험금을 탄 전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보통 사람 같으면 평생 한 번도 겪기 어려운 원인불명의 화재를 강 씨는 세 차례나 겪은 셈이다. 그리고 그 일로 강 씨는 거액의 보험금을 손에 거머쥐었다.
하지만 강 씨가 받고 있는 의혹은 네 번째 부인과 장모 방화의혹이 전부는 아니었다. 이번 여대생 사건과 관련 강 씨의 범행 수법이 상당히 치밀하고 잔인하다는 점에서 수사팀 안팎에서는 애초부터 강 씨가 초범이 아닐 거라는 얘기가 조심스레 흘러나왔다.
실제로 강 씨의 수법은 수사팀의 혀를 내두르게 할 정도로 치밀했다. 여대생을 살해하고 돈을 인출할 당시 강 씨는 더벅머리 가발을 쓰고 20대 옷차림을 하는 등 철저히 본모습을 숨겼다. 또 강 씨는 여대생이 반항하는 과정에서 손톱에 긁히자 자신의 살점과 모근 등 DNA를 확인할 수 있는 증거물이 남아있을 것을 우려, 여대생의 열 손가락 손톱 부분을 모두 도려내기도 했다. 이에 한 범죄분석 전문가는 “피해자를 범행 당일 잔혹하게 살해한 것도 모자라 작은 증거라도 남기지 않기 위해 피해자의 열 손가락 손톱을 모두 잘라낸 강 씨의 행동은 초범이라 보기에는 너무 치밀해보인다”며 강 씨가 처음부터 연쇄살인범일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 지난 30일 강호순이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여대생 연 아무개 씨의 유골을 발굴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
그뿐만 아니다. 경찰이 강 씨의 집에서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압수해 분석한 결과 강 씨는 2008년 9월 말과 12월 말, 2009년 1월 등 세 차례에 걸쳐 컴퓨터 본체를 포맷한 뒤 운영시스템 시간을 2007년 1월로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강 씨는 첫 번째 경찰조사를 받은 1월 23일과 24일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포맷한 사실도 확인됐다. 경찰은 강 씨가 컴퓨터 사용흔적을 없애기 위해 의도적으로 조작한 것으로 보고 범죄와의 개연성을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 당초 경찰은 강 씨가 범행 후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수사진행 사항을 검색한 것으로 판단했지만 강 씨가 ‘군포’ ‘납치’ 등 사건과 관련된 단어들을 검색한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강 씨는 또 범행 후에도 태연히 출근을 하는 등 평소와 다름없는 생활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고교 졸업 후 양봉과 양계에 종사했던 강 씨가 수년전 근무했던 사우나에 다시 출근한 것은 범행 후 열흘이 지난 12월 29일. 검거되기 전까지 강 씨는 안산의 한 사우나에서 스포츠마사지사로 일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강 씨는 군포 여대생 살해 사건을 자백한 후에도 여죄에 대해서는 “증거를 내놓으라”며 완강히 부인하거나 묵비권을 행사했다. 하지만 그동안 물증을 확보한 수사팀의 추궁에 끝내 무너지고 말았다. 특히 강 씨는 심리수사가 진행되자 상당한 심적 압박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 수사팀은 강 씨가 검거된 후 지난 2006년 12월부터 2008년 11월 사이에 발생한 5건의 부녀자 연쇄실종사건과 강 씨의 연관성을 찾기 위해 집중수사를 해왔다. 수사팀은 △실종된 부녀자들의 휴대전화가 꺼진 화성시 비봉면 일대에 강 씨가 2000년부터 2002년까지 거주한 사실이 있다는 점 △수색이 어려운 곳에 사체유기가 가능할 정도로 그 일대 지리에 밝은 인물이라는 점 △실종된 부녀자 중 3명이 이번 여대생처럼 버스정류장에서 실종된 점 △2006년 12월 수원에서 실종된 박 아무개 씨(당시 37세)의 사체가 발견된 야산이 강 씨의 축사와 4km 남짓한 거리라는 점 △스타킹으로 목졸라 살해한 수법이 이번 여대생 사건과 같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강 씨를 유력한 용의자로 판단했다.
특히 여대생의 사체를 매장한 방법이 2007년 5월 8일 안산 야산에서 발견된 박 아무개 씨 경우와 똑같다는 점은 동일범의 소행이라는 확신을 갖게 만들었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실종자인 박 씨가 2007년 1월 3일 10시 30분에 화성 신남동 기지국을 통해 강 씨와 통화한 기록이 확인됐고 또 실종 당일 강 씨가 그 일대에서 배달일을 했다는 사실도 추가로 드러났다.
이에 대대적인 수색에 들어간 경찰은 수원 강수동에 있는 강 씨의 축사에 세워져 있던 트럭에서 여성의 모발 3점과 하트 모양의 금반지, 식칼 등을 발견했다. 또 전소된 에쿠스 차량에서 목장갑과 녹색테이프, 콘돔 등을 찾아냈고 무쏘 차량에서도 삽과 쇠스랑 등을 발견했다. 경찰은 유류품 등을 국과수에 보내 감식을 의뢰하는 등 수사를 강화한 끝에 결국 강 씨가 실종된 부녀자 중 주부 김 아무개 씨를 살해한 범인으로 드러났다. 국과수에서 ‘강 씨의 점퍼에 묻은 혈흔에서 지난 2008년 11월 9일 수원에서 실종된 주부 김 아무개 씨의 DNA가 발견됐다’는 통보를 받은 것. 강 씨는 끝내 나머지 부녀자 실종사건도 자신의 소행임을 자백했다.
이제 남은 것은 전처와 장모 화재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일이다. 현재 강 씨는 “아내가 죽은 뒤 여자만 보면 살인충동을 자제할 수 없었다”며 전처 사망으로 받은 충격 때문에 연쇄살인을 한 것처럼 언급하고 있으나 수사팀은 강 씨의 진술을 신뢰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도 강 씨가 다른 범행을 합리화하기 위해 변명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아내의 죽음 때문에 충격을 받아 여성들에게 살의를 느꼈다는 건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다는 게 수사관계자의 얘기다. 더구나 강 씨는 부인 사망 후 1년 이상을 방황했다고 진술했지만 축사에 매번 다른 여성을 데려오는 등 화려한 여성편력을 보여온 것으로 드러났다.
경제적인 면에서도 강 씨의 방황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부인이 사망한 후 일정한 직업이나 수입이 없었던 강 씨는 2007년 받은 보험금으로 안산에 소재한 상가를 2억 2000만 원에 구입하고 중고 에쿠스 승용차를 어머니 명의로 구입해 굴리는 등 여유로운 생활을 해온 것으로 확인됐다. 또 자포자기 심정으로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심각한 방황을 했다는 진술과 달리 강 씨는 첫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두 아들을 끔찍히 아끼며 부양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은 전처와 장모의 화재사망사건의 진실 외에도 강 씨가 범행을 중단한 1년 10개월 동안의 행적을 밝히는 데도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이미 그 이전에 5건의 살인을 저지른 강 씨가 2년 가까운 공백기간 동안 또 다른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이수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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