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이상 이후 번번이 “밀어붙여”
사실 북한 입장에서 보면 위성 발사는 ‘위험한 도박’이었다. 실패했을 경우 대내적으로는 김정일 체제가 뿌리부터 흔들리는 것은 물론이고 대외적으로도 북한의 발언권이 급속히 위축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이다. 북한이 이런 위험을 무릅쓰고 도박을 강행한 속사정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북한이 위성을 본궤도에 올리는 데 실패했음에도 성공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만큼 미사일 개발을 통해 얻고자 했던 노림수가 분명히 있었다는 설명이다. 특히 김정일 3기 체제의 안착과 미국과의 대화에서 또 하나의 협상카드를 쥐기 위해 ‘미사일 카드’가 꼭 필요했다는 주장이다. 북한의 인공위성 발사에 따른 향후 파장과 전망을 짚어봤다.
북한이 국제 사회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위성 발사를 강행한 것은 대륙간 탄도 미사일 개발을 향한 열망이 그만큼 강하다는 방증이다. 인공위성이나 미사일은 발사하는 추진체가 사실상 같기 때문에 북한이 만약 이번 위성발사체에 미사일 탄두를 장착해 발사하면 일본은 물론이고 멀리 미국 본토까지 사정거리에 들어갈 수 있다.
북한은 이번 위성 발사 실험을 통해 이 점을 전 세계에 과시하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 만약 성공했다면 이는 북한이 미국 측에 꺼내들 수 있는 또 하나의 협상카드가 됐을 것이고, 나아가 미국과의 대화에서 조금 더 유리한 국면으로 이끌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위성발사가 실패했기 때문에 북한의 이런 계획은 수포로 돌아간 셈이다.대내적으로는 북한은 위성 발사를 통해 김정일 3기 체제 안정을 위한 발판을 마련하려고 했다.최근 불거진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상설 등을 불식시키는 한편 체제의 굳건함을 과시하기 위해 이번 로켓 발사를 강행하려 했다는 것이다.
특히 9일로 다가온 제12기 최고인민회의를 앞두고 이뤄진 로켓 발사는 김정일 국방위원장 3기 체제 출범에 맞춘 ‘축포’의 의미가 짙었다.북한은 또 김 위원장의 후계 승계 구도를 두고 권력구조의 변화를 꾀하기 전에 로켓 발사 성공을 토대로 내부 단속에 나섰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67세의 김 위원장은 현재 3명의 아들 중 자신의 후계자를 선택할 복안을 가지고 있다. 주변 국가에서 위성 궤도 진입 실패를 공식화했음에도 북한이 스스로 조선통신 등을 통해 궤도진입에 성공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다시 말해 김정일 위원장의 불안감에 극에 달했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북한의 인공위성 발사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발사강행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여론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대미 협상력 약화, 체제 불안 등의 ‘막다른 골목’에 내몰릴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대륙간 탄도 미사일 개발 열망은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북한은 지난 2006년 대포동 2호 발사 실패와 최근 몇 년간의 극심한 경제난에도 불구하고 3년간 막대한 시간과 돈을 투자했다. 이는 체제안정과도 관련이 있고 이미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격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북한은 ‘추진체 보완’과 ‘핵탄두 소형화’를 계속 추진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북한의 인공위성 발사에 따른 각국의 향후 대응방안도 관심거리다.국제사회가 어떤 자세를 취할 것인가는 결국 미국의 대응수위에 달렸다.
한국과 미국 양국이 이번 사태에 대한 긴밀한 공조를 약속한 상황에서 미국이 이번 로켓을 인공위성 발사로 규정하고 일정한 냉각기를 거쳐 협상을 추진할지, 미사일이라는 판단 아래 실질적인 제재를 추진할 지가 우리 정부의 대북 대응에도 상당한 영향을 준다는 의미다.
일단 미국은 북한의 주장과 달리 이번 발사체를 미사일로 규정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5일 북한이 발사한 로켓을 `대포동 2호 미사일’이라고 명명했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의 이 같은 성격 규정은 북한의 이번 발사를 `인공위성 발사 시도’로 언급한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의 발언과도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것이다. 미국의 대응수위에 따라 6자회담의 순항 여부도 결정될 전망이다.
일본은 그야말로 전시상황에 다름없다. 이미 발사 하루 전에 발생한 오보 소동은 북한 위성 발사에 일본이 얼마나 민감해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다. 발사 이후 일본 언론은 호외를 통해 ‘2차 대전 이후 열도에 대한 최대위협’이라며 큰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일본정부는 북한이 위성을 발사하자마자 유엔안보리 소집을 요청하는 한편 즉각적인 대북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미·일의 대응과는 관계없이 남북관계는 더 악화될 수밖에 없어 보인다.
우리 정부가 이미 공언한 대로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전면 참여하고 북한은 그에 맞서 대남 강경 행동에 나설 경우 남북관계는 더욱 어렵게 전개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북한은 그동안 남한 정부가 로켓 발사를 이유로 PSI에 참여한다면 이를 `선전포고’로 간주, 즉시 단호한 대응조치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