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 아닌 행적 알음알음…팬덤이 소속사에 “주의하라” 알려주기도
지난 4월 진행된 프리스틴의 팬 사인회에서 멤버 주결경에게 지속적으로 성희롱 발언을 한 남성 팬이 가져온 스케치북을 스태프가 빼앗아 가고 있다. 이날 사인회에는 이 남성팬을 집중 마크하기 위해 소속사인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의 한성수 대표도 참석했다. 사진=유튜브 영상 캡처
최근 아이돌 팬 미팅이나 사인회 등에서 ‘몰카 안경’을 쓰고 참석하거나 멤버들에게 과도한 스킨십을 하는 등 피해 사례가 잇따르는 가운데 이 같은 연예기획사들의 단호한 대처에 팬덤이 환호성을 지르고 있다. 특히 걸그룹 행사를 오가며 피해를 입히고 있는 일부 팬에 대해서 각 기획사들이 마치 짠 것처럼 동일한 ‘철벽 방어’를 보여주고 있다.
다만 이같이 별개 기획사들이 유사하게 대처하는 이유로는 해당 악성 팬에 대한 개인 신상 정보를 서로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이른바 ‘악성 팬 블랙리스트’ 공유 문제다.
실제로 최근 문제가 된 팬의 경우도 자신이 현아의 팬 사인회에 당첨됐음에도 입장을 금지당하자, 현아의 소속사인 큐브엔터테인먼트를 상대로 검찰에 수사를 요청하기도 했다. 자신을 악성 팬 블랙리스트에 올려 소명할 기회도 주지 않고 팬이자 소비자로서 정당한 권리를 행사할 수 없도록 강제했다는 이유에서다.
이 팬의 경우는 온라인 커뮤니티인 디시인사이드 프리스틴 갤러리와 프리스틴의 공식 팬카페에서 지속적으로 멤버인 주결경에 대한 성희롱성 글을 올렸다. 이 때문에 팬덤 내에서도 예의주시되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가 지난 4월 프리스틴의 팬 사인회에 당첨된 것을 알게 된 팬덤이 직접 성희롱 글을 캡처한 자료를 소속사인 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측에 보내기까지 했다.
걸그룹 프리스틴. 사진=플레디스 엔터테인먼트
팬 사인회 당일에도 스케치북에 성희롱 글을 써 주결경에게 전달할 것이라는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이 사실을 미리 알고 있던 플레디스 한성수 대표가 직접 제재를 가했다. 이날 이 팬이 가져온 스케치북은 주결경의 앞에서 펼쳐지기도 전에 압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일 현아 팬 사인회를 진행한 홍보대행사 측에서도 이 팬을 제지한 이유에 대해 “이전과 같은 문제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어 아티스트의 보호 차원에서 제지된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이 팬이 밝힌 당시 입장 제지 상황도 “(큐브 측이) 다른 걸그룹 팬 사인회에서 내가 소동을 일으켰으므로 입장을 시켜줄 수 없다고 했다”고 적혀 있다.
이에 대해서 이 팬은 ‘악성 팬 블랙리스트’가 큐브와 플레디스 등 소속사들 사이에서 공유됨으로써 자신의 소비자로서의 권리를 침해당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동의하는 일부 팬들 가운데는 “악성 팬은 맞지만 실제로 뭘 저지르기 전에 신상 정보가 공유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게 아닌가”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들린다.
지난 9일 현아의 팬 사인회에서도 프리스틴 팬 사인회에서 물의를 일으킨 팬이 참석했다가 입장이 금지되기도 했다. 사진=큐브 엔터테인먼트
다만,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악명 높은 팬에 대해서는 기획사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어떤 인물인지, 어떤 행사에 참석해 무슨 짓을 했는지에 대한 정보 정도는 알음알음 알려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중소 연예기획사의 걸그룹 팬덤 관리를 맡고 있는 관계자 A 씨는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블랙리스트라는 게 (악성 팬의) 상세한 개인정보를 공유하는 그런 차원의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다만 모든 연예기획사에서는 소속 연예인의 안전을 위해 악성 팬들에 대한 모니터링을 꾸준히 하고 있기 때문에, 특히 여러 연예인들에게 비슷한 악성 행위를 하고 있는 팬에 대해서는 서로 조심하자는 차원에서 알리는 일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 경우도 실제로 신상정보를 완전히 넘기는 것이 아니라 그 팬의 이제까지 행적 정도만 공유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A 씨는 “이런 팬들의 경우는 워낙 온라인에서 자기 신상을 다 드러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소속사끼리 정보를 은밀히 공유한다기보단 이미 공개된 정보를 재확인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나머지는 실제 현장에서 해당 연예기획사가 직접 본인임을 확인하고 조치한다는 것.
또 다른 연예기획사의 매니지먼트 관계자 B 씨도 “팬 미팅이나 사인회처럼 팬과 가까운 곳에서 마주하는 외부 행사의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라며 “무슨 이유에서든 소속사는 소속 연예인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팬이 어떤 그룹을 좋아하고, 또 어떤 행사에 참석하는지 여부와 관련해 지속적인 모니터링은 물론, 같은 업계 사람들의 대처를 보고 그와 유사하게 대처한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 3월 걸그룹 여자친구의 팬 사인회에 ‘몰카 안경’을 끼고 참석한 팬과 관련, 소속사가 ‘향후 팬 활동 영구 제명’이라는 초강수를 낸 것을 본 다른 연예기획사들도 앞다퉈 단호한 대처를 지시하고 있다는 것.
한편, 이 같은 정보 공유는 업계 내에서 이루어지는 것보다 팬덤이 직접 각 소속사들에 동시에 알리는 경우가 더 많다고도 귀띔했다.
B 씨는 “아무리 악성 팬이라고 해도 전화번호나 이름, 주소 같은 신상정보를 다른 회사끼리 공유할 수는 없지 않나”라며 “이런 팬들은 한 그룹에만 집중하기보다는 여러 그룹을 돌면서 비슷한 행위를 하기 때문에, 아예 한 팬덤이 다른 그룹 소속사에까지 악성 팬의 정보를 알려줘 조심하도록 경고하는 식이다. 일종의 ‘블랙리스트 품앗이’ 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