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씨 ‘고맙습니다’
|
||
| ▲ 특종 제목을 담은 <일요신문> 표지. 정계, 재계, 연예계 인사들이 망라돼 있다. | ||
일요신문, 하면 생각나는 인물은? 요즘은 뜸하지만 아무래도 전두환 씨가 아닐까 싶다. 지난 2004년 일요신문(654호)은 “29만 1000원밖에 없다”며 1000억 원이 넘는 추징금을 내지 않고 버티던 전두환 씨 본인 명의 땅을 찾아냈다. 검찰이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 써가면서도 전 씨 재산 추적은 답보상태였기 때문에 그 파장은 대단했다.
이 서초동 땅은 압류, 경매를 통해 2006년 6월 1억 1931만 원에 팔렸다.사실 전 씨 재산에 대한 추적은 꽤나 오래 전부터 일요신문의 화두였다. 전 씨 재산 관련 첫 특종이 1996년 벽두, 처음으로 물증을 확보해 보도한 ‘전두환 과천 땅 투기 잡았다’였으니 말이다. 이후 굵직한 것만 뽑아 봐도 2001년 ‘전두환 손자 10억대 부동산 소유’(467호), ‘전두환 16세 손녀도 10억대 부동산 보유’(468호), 2003년 ‘전두환 일가 부동산 최소 200억대’(573호), ‘전두환 3남 100억대 빌딩 소유’(574호) 등이 있었다.
전 씨 가족들도 특종의 주인공으로 자주 등장했다.
2003년 일요신문은 ‘전재용-톱탤런트 A 양 수상하다’(600호) 제하의 기사에서 전두환 씨 차남 재용 씨의 ‘괴자금 100억 원’과 관련, 박상아 씨(A 양)에 대한 검찰 내사 및 두 사람의 관계를 처음으로 보도했다. 4년 뒤인 2007년 일요신문은 ‘전재용 씨 이혼-전두환 박상아 며느리로 맞나’(777호) 기사도 단독 보도해 주목을 받았다.
전두환 씨만큼은 아니지만 노태우 씨도 단연 ‘주연급’이다. 일요신문은 지난 1994년 ‘추적, 드러나는 6공 비자금’(132호)에서 노 씨 사돈기업인 동방유량 계열사들이 6공 검은돈의 은닉처로 이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최초로 보도했다. 최근 좋지 않은 그의 건강과 관련, 3년 전 그가 ‘소뇌축소’라는 희귀병 증세로 투병 중이라는 사실을 ‘노태우 서울대병원 입원 치료 단독확인’(754호)으로 처음 세상에 알렸다.
전·현직 대통령 가족 중에서 일요신문 특종 주인공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 현철 씨도 눈에 확 띈다. ‘김현철 게이트’로 뜨거웠던 1997년 일요신문은 ‘충격의혹! 김현철, 주민등록번호도 바꿨다’(253호)에서 그해 2월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된 김현철 씨의 학력의혹 등 실체를 구체적 자료로 보여줬다. 이후 보석 석방 한 달도 안 돼 ‘청와대 연무관 출입하는 김현철’(291호) 사진특종을 잡아내 파문이 일었다.
2년 뒤 ‘94년 삼성그룹 비서실 작성 문건’(352호)에선 김현철 씨가 대우그룹의 로비를 받아 삼성의 승용차 진출에 반대한 사실이 처음 알려지기도 했다.
김현철 씨가 YS 정부의 황태자였다면 6공화국 황태자는 박철언 전 정무장관이었다. 일요신문은 1995년 ‘5·6공 방북밀사 박철언, 김일성과 5차례 이상 만났다’(172호)에서 그동안 소문으로만 나돌던 박 전 장관의 대북밀사설과 5·6공화국 대북정책의 실체를 최초로 확인, 보도했다. 박 전 장관은 지난해에도 ‘박철언 일가 미모 여교수와 거액 송사 내막’(824호) 기사를 통해 일요신문 특종 주인공이 됐다.
대선이 있던 해에는 항상 일요신문 특종이 넘쳤다. 그중 최고의 역작은 아마도 1997년 대선 한나라당 후보였던 이회창 현 자유선진당 총재 아들들 병역 의혹이 아닐까. 일요신문은 대선 한 해 전인 1996년 ‘대권 예비주자 11명의 아들들 병역조사, 현역사병은 단 1명뿐’(228·229합본호)이라는 기사를 시작으로 가장 유력한 후보였던 이 총재 아들들의 병역 면제 문제 등을 최초로 확인, 끈질기게 추적 보도했다.
‘최형우 병실 밖 모습 최초 공개’(262호)도 지난 1997년 대선 때 일이다.
|
||
| ▲ 심은하(왼쪽),고현정(오른쪽) | ||
또 한 명의 유력한 후보였던 정몽준 의원에 대해선 ‘정몽준 대학 1학년 때 유급의 비밀, 커닝하다 정학당했다’(537호)를 발굴 보도, 세간의 화제가 됐다. 이 해 대선 핫 이슈였던 병역비리 폭로와 관련 ‘김대업 테이프 손댄 흔적 많다’(539호)로 대특종을 하기도 했다.일요신문 특종 주인공이 된 재벌 총수들도 적지 않다. 우선 떠오르는 곳이 LG가. 2004년 일요신문은 ‘구본무 LG그룹 회장 아들 입양 내막’(656호)을 최초 보도, LG가 경영권 승계구도의 큰 변화를 알렸다.
당시 이 보도가 나가자마자 다급한 LG 측은 이 사실을 모든 언론에 뿌리는 ‘특종 물타기’를 해야만 했다. 5년이 지난 현재 재계에서 구본무 회장 양자 구광모 씨를 ‘황태자’로 부르는 데 이견은 없다.창간 17주년을 기념하는 이번 호에도 단독보도가 있지만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의 경우 유독 부동산 특종이 많았다. 2002년 ‘이태원 이건희 가족타운 조성 프로젝트 전모’(546호)를, 2005년엔 경북 영덕 칠보산 부근 일대 2만 5000평 매입(673호)과 전남 여수 6000여 평 매입을, 최근엔 127억 원을 들여 서울 강남에 최고급 빌라와 아파트를 사들인 사실이 확인돼(878호) 눈길을 끈 것이다.
최원석 전 동아그룹 회장과 장은영 씨도 특종 단골손님이었다. 1998년 ‘최원석 회장-탤런트 장은영 동시 출국금지’(322호)를 시작으로 이듬해 ‘장은영 9시간 눈물 대고백, 최원석과 몰래한 사랑’(375호) ‘최원석-장은영 극비 혼인신고’(378호) 등이 지면을 장식했다.일요신문의 연예인 관련 특종은 그 횟수도 많지만 메가톤급도 즐비하다. 그 중 몇 명만 꼽자면 오현경 고현정 문근영 심은하 정도다. 1999년 ‘탤런트 A 양 섹스비디오’(356호)는 연예계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큰 파문을 던졌다. 일요신문 편집국 내부에서도 보도 전후 기자들이 모인 자리라면 어디서든 ‘공인의 사생활과 언론보도의 한계’라는 난상토론이 벌어지곤 했다.
일요신문 편집국은 당시 고심 끝에 은밀한 사생활이 동영상으로 버젓이 유통되고 있는 사회적 문제에 초점을 맞춰 보도했다. 그래서 해당 탤런트의 이니셜도 ‘O 양’이 아닌 ‘A 양’으로 처리했다.1997년 일요신문은 ‘삼성가 며느리 고현정 결혼 후 첫 모습’(280호)에서 고 씨가 대중의 시야에서 사라진 지 2년 4개월 만에 특종사진으로 독자들의 궁금증을 풀어줬다. 이후 이혼 후 컴백까지 고 씨 관련 특종은 계속됐다.
그녀가 지난 2004년 11월 컴백 기자회견장에서 “10년간 저를 취재하느라 고생하신 일요신문에 감사드립니다”라고 할 정도였다. 2004년 ‘문근영의 슬픈 가족사’(657호)에서 ‘국민 여동생’으로 밝고 귀엽기만 한 문근영 씨가 장기수의 외손녀라는 사실을, 2005년엔 예비신랑과 함께 웨딩숍 방문한 장면을 단독 촬영한 ‘사랑에 빠진 심은하’(696호)를 통해 심 씨의 결혼을 세상에 처음으로 알렸다.
사실 특종으로 가득한 일요신문의 지난 17년을 단 17명으로 정리하는 것은 무리다. 좋은 작품이 넘쳤던 해의 영화제 시상식을 진행하는 마음이랄까.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일요신문 특종 주인공을 정리하기엔 더욱 어려울 것이다. 특종은 계속될 것이기에.
이성로 기자 roile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