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재가 안보인다’ 불안감 스멀스멀
증권사들이 대체로 내년 증시 전망을 어둡게 보고 있다.
가장 최근 새해 증시전망이 어두웠던 때는 2008년이다. 2007년 10월 중국 증시의 급락으로 인한 충격이 글로벌 경제의 위기를 예고했다. 사실 이보다 앞서 2007년 초에는 서브프라임 모기지(Subprime Mortgage, 비우량 주택담보채권) 문제가 처음으로 일반에 제기되기도 했다. 심상찮은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했던 셈이다.
그리고 슬픈 예감은 현실이 됐다. 2008년 3월 미국의 투자은행(IB) 베어스턴스가 파산하고, 9월에는 리먼브라더스마저 무너지면서 글로벌 금융위기가 최고조로 치달았다. 미국은 2009년부터 금융부실을 메우기 위해 달러를 찍었는데, 6년간의 달러 살포가 종료되는 것이 바로 2015년이다.
미국이 찍어낸 달러로 인한 달러약세는 지난 6년간 우리나라 증시를 떠받친 원동력이었다. 그런데 미국이 달러 살포를 중단하면 달러가 강세로 전환되면서, 원화약세가 유발돼 외국인들의 차익실현 욕구가 커지게 된다.
특히 외국인들은 국내 주식뿐 아니라 국채도 대거 매입했다. 시장에 내다 팔아야 돈을 챙길 수 있는 주식과 달리 채권은 올 연말부터 내년까지 만기가 차례로 도래할 때마다 달러로 바꿔 나가면 그뿐이다. 채권자금 이탈은 금융시장에 일대 혼란을 초래할 수도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기업들의 실적. 실적이 좋다면 외국인들이 이탈할 이유도 적어지고, 경상흑자가 유지돼 외국인 자금 이탈에도 걱정할 게 별로 없다. 그런데 기업 실적 전망이 극히 부진하다. 경상적자까지는 아니더라도 흑자폭이 상당히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김형렬 교보증권 매크로팀장은 “삼성전자를 필두로 한 수출주의 부진이 예상보다 속도가 빠르고, 삼성전자의 ‘실적 충격’이 내년 증시 전망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며 “삼성전자의 실적 부진을 보완할 산업이 등장해야 하는데 자동차 업종은 수요환경이 빠르게 개선되기 어렵고, 삼성전자의 순이익 부진을 금융 등의 산업이 보완해주는 모습이 내년에도 이어질지 확신이 부족하다”고 전망했다.
더군다나 일본은 강달러를 극복하고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또 다시 적극적인 엔화 찍어내기에 나서고 있다. 이는 우리 제품의 수출경쟁력을 훼손시켜 기업 실적의 악화를 더욱 부채질할 수 있다. 유럽 역시 중앙은행(ECB)이 마치 엔화와 경쟁이라도 하듯이 유로화를 마구 찍어내는 모습이다. 달러가 강세면 원화가 약세이어야 하는데. 유로 및 엔화가 더 약세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원화는 강세 통화가 되는 모습이다.
극심한 내수침체에 대한 우려도 크다. 실적부진에 직면한 기업들이 지출과 고용을 줄일 가능성이 큰 데다, 세수 부족에 시달린 정부가 각종 세금을 더 걷으면서 소비가 위축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전직 자산운용사 최고투자책임자는 “2007년 초 처음 서브프라임 모기지 문제가 등장했을 때도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우량채권(Prime Mortgage)으로의 파장이 제한적일 것으로 애써 과소평가했고, 2007년 가을 중국 증시가 무너지기 시작했을 때도 세계의 다른 지역은 괜찮을 것이라 자위했었다. 또 2008년 초 베어스턴스가 무너지자 이번이 마지막이라 외쳤지만 결국 이런 잘못된 전망으로 많을 일반투자자들이 시장 탈출의 기회를 놓쳤다”면서 “전문가들조차도 이미 마음속으로는 내년에도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 찾아올 수 있다는 점을 잘 알고 있지만, 차마 그런 얘기를 꺼내기 어렵다 보니 우회적으로 증시 전망을 낮춰 잡는 게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최근 정부가 중국과 체결한 자유무역협정(FTA)도 당장 경제에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많다. 이번 협정 체결에도 불구하고 계속 존재할 중국의 관세장벽이 적지 않은 데다, 관세가 철폐되는 분야도 향후 10~20년간에 걸쳐 완만하게 진행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실제 한중 FTA 협정이 양국에서 비준되면 즉시 없어지는 관세규모는 87억 달러지만, 최소 10년 이상에 걸쳐 철폐될 관세규모는 458억 달러에 달한다. 아울러 이미 대부분의 한국 기업들이 중국 현지에 생산기지를 갖고 있다는 점도 FTA 효과가 크지 않을 이유다.
한 증권사 고위임원은 “당장 경제적 효과가 크지 않을 한-중 FTA를 서둘러 체결하려는 모습이 마치 정권의 치적 쌓기처럼 보인다”면서 “한-EU FTA 체결이 오히려 자동차와 사치품 등 유럽산 고가 제품의 수입증가를 유발한 것처럼, 한-중 FTA가 중국 내 생산기반을 가진 글로벌 기업들의 제품이 국내에 유입되는 길을 넓혀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최열희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