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리로 퇴출된 매니저들 의사들 손잡고 ‘유턴’
의사들이 패널로 출연하는 한 방송사 프로그램의 녹화 장면.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비교적 연예계와 방송계에선 매니지먼트 시스템이 안착돼 있는 편이다. 물론 그럼에도 관련 연예계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그런데 전문직 종사자인 일반인 출연자가 많아지면서 그들을 둘러싼 브로커들이 연예계에서 묘한 잡음을 만들어내고 있다.
요즘 고참급 연예부 기자들 가운데 비슷한 경험을 가진 이들이 많다. 과거 연예계에서 나름 잘나가던 매니저였지만 이제는 현직을 떠난 이들로부터 부탁 전화를 받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부탁 내용은 누군가의 기사를 써 달라는 것. 매니저가 연예부 기자에게 연예인 관련 기사를 부탁하는 일은 매우 흔하다. 그게 그들의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랜만에 돌아온 그들의 부탁 대상은 연예인이 아니다. 의사도 있고 변호사도 있고 중소 내지는 중견 기업을 이끌고 있는 사업가도 있다. 한 중견급 연예부 기자의 얘기다.
“예전에 잘 알고 지내던 연예기획사 사장의 전화를 받았다. 그 분이 과거 매우 잘나가던 매니저이긴 하지만 업계를 떠난 지 오래됐고 나 역시 수년 만에 받은 전화였다. 다시 이쪽 일을 하게 됐다며 기사를 하나 부탁한다는 내용의 전화였다. 그 분이 잘나갈 때 도움 받은 것도 많아서 흔쾌히 도와주려고 했는데 연예인이 아니었다. 요즘 방송에는 전문직에는 종사하는 출연자들이 많다. 그런 분들은 연예부 기자의 취재 대상이기도 하다. 그런데 부탁받은 분은 전혀 방송에 출연한 경험도 없는 이였다. 알고 보니 그 분을 방송에 출연시키기 위해 방송국과 협의 중인데 아무래도 관련 기사가 몇 개 있으면 방송 출연이 용이해질 수 있어 부탁을 해온 것이었다. 이런 경우 아무리 친분이 있어도 연예부 영역이 아니라 도와주기가 힘들다.”
실제로 연예관계자들은 일반인 출연자의 방송 출연을 돕는 브로커의 상당수가 과거 연예계에서 매니저로 활동하던 인물들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다시 매니저로 일하기 위해 일반인 방송 출연을 돕는 것은 아니다. 이런 출연자들은 대부분 방송 출연이 최종 목표는 아니다. 방송을 통해 유명세를 쌓고 자신의 본업을 홍보하는 것이 목표다. 따라서 출연료를 나누는 방식의 매니지먼트는 일반인 출연자와 브로커 모두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다. 결국 브로커들은 방송 출연 몇 회를 보장하며 거액에 계약을 받거나 아예 일반인 출연자의 본업 관련 홍보 대행 전반을 맡는 방식으로 계약을 맺는다. 문제는 믿을 수 없는 브로커가 많다는 점이다. 역삼동 소재의 한 룸살롱 사장의 얘기다.
“얼마 전 가게에 예전에 자주 드나들던 연예기획사 사장이 손님들 데리고 왔다. 그분은 과거에 매니저 할 때 PD나 감독을 접대하느라 우리 가게에 자주 왔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나름 잘나간다는 지방 사업가를 데리고 자주 오더라. 물론 돈은 그 사업가가 낸다. 심지어 나까지 룸으로 부르더라. 자기가 예전에 얼마나 방송가에서 얼마나 잘나갔는지 설명 좀 해달라면서. 그런데 그 사람 사기꾼이다. 나는 다 안다. 그 사람 믿고 거액을 줬다가 돈만 날린 신인도 꽤 있는 것으로 안다. 그래서 연예계를 떠났다고 들었는데 그렇게 뒤로 부활했더라. 분명 그 사업가도 돈만 날렸을 게다.”
방송가에선 이런 매니저 출신 브로커들이 나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대부분 연예계를 떠난 지 수년이 지난 이들이라 요즘 PD들 인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이들이 한창 활동할 당시 친하게 지내던 PD들 가운데에는 여전히 방송국 고위직에 있거나 외주 프로덕션을 설립해 독립한 이들이 많다. 그리고 일반인 출연자가 출연하는 교양이나 예능 프로그램의 상당수는 외주 프로덕션에서 제작한다. 따라서 이들의 과거 인맥이 출연 청탁에 더 용이할 수도 있다. 한 방송국 관계자의 설명이다.
“사실 과거 방송가에는 비리가 참 많았다. 그래서 옷을 벗은 선배들도 많다. 요즘 방송계는 많이 깨끗해졌다고 생각한다. 또 경쟁이 치열해진 터라 뒷돈 받고 함량미달 출연자를 섭외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런데 몇몇 일반인 출연자 브로커들이 물을 다 흐리고 있다는 얘기다 있다. 그들이 과거에 일하던 방식으로 다시 출연 청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즘 들어 갑자기 전문직 종사자 출연이 급증한 배경에는 그런 어두운 그림자가 있을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연예관계자들이 지적하는 또 다른 문제점은 지나치게 부풀려진 계약 금액이다. 방송 몇 회 출연을 보장하며 엄청난 거액을 받아가는 브로커들이 많다는 것. 심지어 수억 원을 받아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한 연예관계자의 설명이다.
“일반인들 입장에선 방송 출연이 매우 힘겨운 일이라 여기기 마련이다. 그런 까닭에 방송 출연에 엄청난 돈이 든다는 브로커의 얘기에 현혹된다. 그래서 수천만 원짜리 계약이 체결되는 거다. 예를 들어 병원의 경우 각종 홍보성 기사와 광고 등에 이미 엄청난 금액을 쓰고 있기 때문에 훨씬 홍보 효과가 좋은 방송 출연은 더 많은 금액이 필요할 거라 여긴다. 브로커들은 이런 저런 비용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겠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다.”
조재진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