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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 | ||
- 박훈희 칼럼니스트
애널 섹스는 ‘잘생긴 남자배우가 새벽에 병원으로 실려 왔는데 의사의 진단은 항문파열이었다더라. 보호자로 따라온 남자는 게이로 의심받는 디자이너였다더라’는 카더라 통신의 소재로 다뤄지곤 한다. 남자들은 원하지만 여자들은 질색하는 애널 섹스를 일반적으로 즐기는 커플은 주로 게이 커플이기 때문일 것이다. 오럴 섹스, 69체위, 섹스 토이 등 섹스 플레이에 적극적인 나조차 애널 섹스만큼은 용기가 필요하니 보통 여자들이 얼마나 과민반응을 보일지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진짜 좋아하는 여자에게 애널 섹스를 요구하기는 힘들지. ‘애널 섹스’라는 말을 꺼내는 즉시 나는 변태 취급당하고 분위기도 깨지고 섹스는 중단되니까”라는 카사노바 포토그래퍼 A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A는 ‘애널 섹스’라는 말을 꺼내기만 해도 몸서리치는 여자친구를 설득해서 시도하는 데 성공했다. 그의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A와 그의 여자친구는 모두 콘돔을 싫어했고 질외사정으로 피임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A는 질외사정으로 오르가슴의 순간을 조절해야 했던 불만을 터트렸다. “나도 너의 안에서 사정하고 싶어. 애널 섹스를 하면 임신 걱정도 없고 서로 만족스러울 수 있으니까 좋잖아. 게다가 오늘은 너 위험한 날이잖아. 한 번만 해보자. 한 번 해보고 네가 싫다고 하면 안할게”라고 강력하게 졸랐던 것이다. A의 간절한 청에 그의 여자친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승낙했다. 그래서 정말 좋았느냐고? A는 “괄약근의 조임은 끝내주더라. 그런데 별로 즐겁지가 않았어. 여자친구가 너무 싫어하니까 내가 마치 변태가 된 느낌이거든. 그래서 결국은 안 하게 되더라고.
항문 섹스에 공포심을 갖는 것은 여자만이 아니다. 섹스를 할 때 주로 삽입을 하는 게이 B 역시 “남자친구가 자기도 톱(TOP : 게이 섹스에서 삽입을 선호하는 남자)을 해보고 싶다고 하길래 내가 바텀(BOTTOM : 게이 섹스에서 피삽입을 선호하는 남자) 역할을 했지. 그런데 너무 힘들더라. 너무 아프니까 좋은지도 모르겠더라고. 아마 그는 삽입에 서투르고 나는 피삽입에 서툴렀기 때문이었을 거야. 그때부터 내 남자친구에게 너무 고마워서 섹스할 때는 더 부드럽게 삽입하려고 노력하는 편이야”라고 말했다.
항문 섹스를 상시적으로 즐기는 게이 역시 익숙지 않은 방식의 페니스 삽입이 ‘아프다’고 느꼈을 정도이니 보통의 여자들은 대부분 통증을 느낄 것이다. 첫 섹스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첫 섹스에 긴장해서 몸이 굳은 여자는 상당히 노련한 남자가 리드를 해도 아픔을 느끼고 결국 첫 섹스에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니 항문 섹스에 처음인 남자와 항문 섹스를 싫어하는 여자가 만나서 만족스러운 섹스를 즐길 수 있는 확률은 매우 낮을 수밖에 없다.
남녀 모두 애널 섹스에 대한 지식과 연습이 풍부하지 않으면 제대로 즐기기가 쉽지 않다. 애널 섹스에 대한 로망을 가진 남자라면 여자가 공포를 느끼지 않게끔 섹스 전에 많은 대화를 나누어야 하고, 항문에 윤활유를 바르고 손가락부터 작은 바이브레이터 등을 넣으면서 여자의 긴장을 풀어주는 예행연습에도 성실해야 한다.
솔직히 나 역시 애널 섹스가 어떤 느낌인지 궁금할 때가 있다. 더군다나 섹스 칼럼을 쓰면서부터는 ‘애널 섹스를 해봐야 하는 것은 아닐까’라는 직업 정신이 발동할 때도 있다. 그런데 평소 ‘애널 섹스’에 호기심이 강한 나도 그가 내게 아무런 상의도 없이 애널 섹스를 시도하려는 낌새를 챌 때는 은근히 거절하게 된다. 후배위를 하다가 페니스가 내 몸에서 분리되었는데 1초 동안 그가 다시 삽입하지 않고 멈칫할 때 내 머릿속에는 ‘이 사람이 혹시 지금 딴 생각을 하고 있지 않나’ 싶어서 체위를 바꾼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체위를 바꾸어 섹스를 하면서도 ‘내가 오버한 걸까? 아냐. 시도하려다가 나에게 딱 걸린 게 분명해’라고 결론지으며 순간적으로 나를 함부로 대하려던 그에게 나 홀로 적대감을 불태우곤 했다.
사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싫어하는 여자친구에게 양해를 구하지 않고 멋대로 시도하곤 한다. 영화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에서도 남자가 여자에게 한 마디 선전포고도 없이 페니스를 여자의 항문에 삽입해서 여자가 불같이 화를 내는 장면이 있다. 그런데 만약 그가 섹스 전에 “애널 섹스 한 번만 해보면 안돼?”라고 말했더라면 어땠을까? “변태!”라고 돌아섰을까? 그가 연습용으로 ‘애널용 바이브레이터’를 준비했는데도 나는 무조건 ‘싫다’고 고개를 도리질했을까? “항문에 G스폿이 있대. 여자가 애널 섹스에 맛들이면 남자보다 더 좋아한다더라”고 여자를 우선시하는 말을 해주었더라면 어땠을까? 결국 ‘No’라고 거절을 했을지는 몰라도 적어도 한 번쯤은 ‘애널 섹스’를 시도하는 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맛있는 섹스 그리고 사랑>에서 여자가 남자의 설득에 결국 굴복하는 것처럼 말이다.
◆ 박훈희 씨는 <유행통신> <세븐틴> <앙앙> 등 패션 매거진에서 10년 이상 피처 에디처로 활동하면서 섹스 칼럼을 썼고, 현재 <무비위크>에서 영화&섹스 칼럼을 연재 중인 30대 중반의 미혼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