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나갔던 그들 잘 나가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워야 출세한다?”
최근 검찰 주변에서 돌고 있는 이야기다. 과거 참여정부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거나 현 정부에서 노 전 대통령 수사를 비롯해 진보진영 수사를 했던 인물들이 승진하고 있는 상황을 빗댄 말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노 전 대통령과 검사와의 대화를 했던 소장 검사 10인이다. 이들은 노 전 대통령이 당선된 2003년 초 검찰총장 인사독립을 외치며 사상초유로 대통령과 ‘맞장 토론’을 벌였던 인물들이다. 용의 수염을 뽑으려 들었던 이들은 과연 정권이 바뀐 후 어떻게 됐을까? 때마침 지난 8월 말 검찰 부장급 인사가 있었고 이들 10명에 대한 인사도 났다.
사시 31회에서 35회로 당시 고작해야 부부장 검사였던 이들은 현재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 대검 담당관, 지청장 같은 검찰의 중간간부로 활약하고 있다. 특히 대부분 검사들의 로망이라는 청와대, 법무부, 대검, 서울중앙지검 등에서 근무했던 경력도 가지고 있다. 당시 어른에게 꼬박꼬박 대들며 몽니를 부린다는 뜻의 ‘검사스럽다’는 신조어까지 생길 정도로 따가운 질책을 받았던 이들의 승진 궤적을 따라가 봤다.
검찰조직에서 곧잘 오르내리는 검찰 인사의 핵심은 ‘서울검사’인지, 아니면 ‘시골검사’인지다. 지방에 내려가면 만나는 사람과 사건 모두 서울과 수도권에 비하면 비중이 떨어지기 때문에 시골에 3년만 있으면 시골스러워진다는 분위기마저 있다. 법원은 임관할 때 성적으로 근무지가 결정되지만 검찰은 어떤 정권이 들어오느냐에 따라 서울검사와 시골검사가 갈린다.
노무현 정권 초 ‘검사와의 대화’ 참여 검사 10명 가운데 6명이 현재 서울에 있다. 그 가운데 2명 대검에 있고, 2명이 서울중앙지검에, 나머지 2명이 정부부처에 파견 근무 중이다. 지난해에는 이들 가운데 8명이 서울에 있었고 그 가운데 한 명은 청와대에서 근무했다. 6년 전 평검사 대표들답게 이들은 동기 그룹에 비해 잘나가고 있는 셈이다.
당시 평검사 대표로 노 전 대통령과 토론을 주도했던 허상구 검사는 이번 인사에서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장으로 임명됐다. 부산 출신인 허 검사는 당시 토론 첫머리에 노 전 대통령에게 “대통령은 토론의 달인이지만 우리는 토론의 달인이 아니다”라며 분위기를 심상치 않게 이끌었던 인물이다.
참여정부 시절 한직인 고검에 있던 허 검사는 참여정부 말 법무부 보호국 관찰과장으로 간 뒤 지난해에는 범죄예방기획과장으로 있다가 이번 인사에서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장으로 발령 났다. 일반 검사들이 가장 부러워한다는 법무부와 서울중앙지검을 계속해 오가고 있는 셈이다.
사시 31회 동기이자 ‘검사와의 대화’ 당시 유일한 여성 참석자였던 이옥 검사는 서울중앙지검 공판부장에서 같은 지검의 형사7부장으로 옮겼다. 이 부장은 한 번 하기도 어렵다는 서울 중앙지검 부장을 두 번이나 한 셈이다. 특히 그가 이명박 정부에서 ‘홀대’받고 있다는 호남 출신(전남 고흥)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 부장 인사는 더욱 눈에 띈다는 평가다.
이들과 사시 동기인 이석환 검사 역시 잘나가고 있다. 그는 현재 검찰의 핵심 조직인 대검 중수2과를 맡고 있다. 2003년 이인규 전 중수부장과 SK비자금 수사를 함께한 인연으로 올해 초 대검 중수부에 발탁됐다가 노 전 대통령 수사 종결된 후에도 중수2과장으로 남아 있는 상태다. 그는 검찰 내부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금융수사통으로 꼽힌다. 정권이 교체된 지난해에는 해남지청장으로 근무했었다. 이 검사는 당시 검사와의 대화에서 “여권 실세가 SK비자금 수사와 관련해 압력을 행사했다”는 말로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31회 동기인 이정만 검사도 지난해 대검 과학수사담당관을 맡았다가 이번 인사로 서울동부지검 형사3부장으로 발령 났다. 박경춘 검사(사시 31회)는 서울북부지검 형사6부장을 마치고 대구지검 부장검사로 발령이 난 후 현재 기획재정부 금융조사분석국에 파견돼 있다.
이들보다 한 기수 후배인 이완규 검사는 제천지청장으로 발령이 났다. 검찰의 대표적인 이론가로 꼽히는 이 검사는 사법개혁추진위원회와 형사소송법개정, 검찰 미래개혁단 일을 맡아 계속해서 대검에 파견 나가 있었다.
토론회 때 노 전 대통령의 ‘청탁 전화’ 사실을 이야기해 노 전 대통령이 “이쯤되면 막 가자는 거죠”라는 말을 하게 한 김영종 검사(33회)는 선망의 보직인 대검 첨단수사과장으로 발령이 났다. 대검에 발령 나기 전에는 서울지검에서 부부장을 했다. 탄탄한 경력이다. 재미있는 점은 그는 이번 정부뿐 아니라 참여정부에서도 ‘잘나갔었다’는 사실. 김 검사는 참여정부에서도 법무부에 파견을 갔고 영동지청장을 거쳐 서울중앙지검에 부부장으로 근무했다. 인사권자의 역린을 정면으로 건드렸다가 다치지 않고 오히려 잘 풀린 이례적인 케이스다.
사시 34회인 영동지청장인 김윤상 검사도 참여정부 시절 법무부에서 근무하다 지난해 부산지검 부부장을 거쳐 영동지청장으로 발령 났다. 영동지청은 특히 검사와의 대화 참가 검사와 인연이 깊다. 참가 검사 10명 가운데 김윤상 지청장을 포함해 허상구 김영종 검사 등 3명이 영동지청장을 거쳤기 때문이다. 검사들의 보직난을 고려할 때 영동지청장 자리는 나쁘지 않다는 게 검사들의 말이다.
참가 검사 가운데 막내 검사였던 김병현, 윤장석 검사(사시 35회)의 이번 정부 들어서 이력도 화려하다. 김병현 검사는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청와대 민정수석 산하 법무비서관실에 나갔다가 현재 감사원에 파견 나가 있다. 대통령 직속 감찰기관인 감사원에 검사가 파견되기는 그가 처음이다. 윤장석 검사도 지난해 법무부 정책기획단에 있었다가 현재 통영지청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처럼 검사와의 대화에 참석했던 검사들만 잘나가는 것은 아니다. 이인규 전 중수부장과 함께 노 전 대통령 수사를 지휘했던 홍만표 수사기획관은 올해 검사장으로 승진해 서울고검 송무부장으로 영전했다. 노 전 대통령 사건 주임검사였던 우병우 당시 중수1과장은 이번 인사에서 대검 범죄정보기획관으로 발령 났다. 범정기획관은 검찰의 눈과 같은 역할을 하는 핵심 자리다.
한 법조인은 “노무현 정부 때 검찰 인사권 독립을 외치던 검사들이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검찰 인사와 수사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왠지 요즘 검사들의 모습과 노 전 대통령과 맞장 토론을 벌이던 검사들의 모습이 묘하게 오버랩된다”고 말했다.
김진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