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행 2년 전부터 미국 부동산 쇼핑”
김형욱 전 부장이 미국 망명 전인 72년 1월 변호사 명의로 부동산회사 ‘제심리얼티코프’를 설립한 뒤 그해 4월 뉴욕 웨체스터에 있는 대형 쇼핑센터를 매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사진은 쇼핑센터의 현재 모습.
김 씨는 미국 망명 전인 1971년 부인(미국 서류에는 신영순과 김영순 표기가 혼재) 명의로 뉴저지 테너플라이 주택을 매입했고, 72년 1월에는 김 씨 변호사 명의로 ‘제심리얼티코프’라는 법인을 설립한 뒤 같은 해 4월 뉴욕 웨체스터에 있는 대형 쇼핑센터를 매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2008년 웨체스터 카운티 당국이 이 쇼핑센터에 대한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 고시한 마켓밸류(주변 시세와 비교해 가격을 결정하는 방법)는 1000만 달러가 넘었고, 실제 시장가는 1500만 달러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김 씨는 천문학적인 망명 자금을 어떻게 마련했고, 어떤 방법으로 거금을 미국으로 유출할 수 있었을까. 3공화국 최대 미스터리 정치 사건으로 분류되고 있는 ‘김형욱 실종’ 사건을 둘러싼 각종 의혹 중 김 씨의 망명 및 비자금과 관련된 새로운 X파일을 추적했다.
김 씨는 박정희 정권 출범 이후 6년여를 중정부장으로 재직하다 1969년 10월 해임된 뒤 국회의원 등을 지냈다. 이후 72년 10월 유신 선포로 국회가 해산되고 73년 3월 유정회 명단에서도 제외되자 박정희 정권으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았다고 판단해 73년 4월 15일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김 씨의 부인 신영순 씨는 73년 1월 5일 일본인 명의의 위조 여권으로 미국으로 출국했고, 김 씨는 경유지인 일본 공항에서 중정요원들과 예상치 못한 조우를 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미국에 도착한다.
국정원 과거사건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이하 과거사위)가 2007년 10월 발간한 ‘김형욱 실종사건 진상보고서’에 따르면 김 씨가 미국 망명을 결심한 시점은 1973년 3월, 빠르게 잡더라도 72년 10월 유신 선포에 따른 국회 해산 이후로 미뤄 짐작하고 있다.
73년 3월 김종필 씨가 총리로 기용되면서 행동에 제약을 받게 된 김 씨가 탈출을 구상하게 되고, 이때부터 사채를 회수하고 외화를 환전하는 등 외화밀반출을 시도했다는 것이 73년 3월설이다.
또 72년 10월설은 72년 10월 17일 해외 국정감사 도중 유신 선포로 국회가 해산되자 김 씨는 이때부터 영어회화 공부에 매달리는 등 망명을 준비했다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하지만 <일요신문>과 재미 블로거 안치용 씨의 취재결과 김 씨는 최소한 71년 이전부터 치밀하게 미국 망명을 추진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사실은 김 씨 일가가 미국 부동산 등을 구입하면서 미국 정부에 제출한 계약서 등을 중심으로 행적을 추적한 결과 드러났다.
취재 결과 김 씨는 자신의 부인 신영순 씨 명의로 1971년 이미 호화주택을 구입한 것으로 확인됐다. 신 씨 명의로 주택을 구입한 것은 1971년 1월 4일이며 주택 소재지는 뉴저지주 테너플라이 트라팔가로드 60번지다.
대지가 1.3에이커로 1591평 규모에 건평만 81평이고, 매입가는 당시 시가로 16만 5000 달러였다. 당시 미국에 이민 가는 사람에게 반출이 허용된 이민 정착금이 1인당 100달러에 불과했다는 사실에 비춰볼 때 16만 5000달러는 상상을 초월하는 거액이다.
뉴저지주 테너플라이 지역은 뉴욕에 주재하는 한국 외교관이나 지상사 주재원이 많이 사는 지역이다. 공교롭게도 지난 2007년 3월 한국정부가 300만 달러를 주고 구입해 뉴욕 주재 정보기관 책임자가 살고 있는 집도 바로 김 씨가 71년에 구입한 주택과 이웃해 있다.
김 씨는 71년 5월 당시 공화당 전국구 의원으로 의정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이때도 미국망명 계획을 은밀히 추진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72년 1월 21일 뉴욕주 국무부에 김 씨의 행적을 가늠케 하는 한 법인의 설립신청서가 제출됐다. 법인의 이름은 ‘제심리얼티코프’(JESIM REALTY CORP). 우리말로 해석하면 제심 부동산회사인 이 법인은 72년 1월 18일 김 씨의 변호사로서 프레이저 청문회 등에 동행했던 알란 디 싱거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설립돼 1월 21일 뉴욕주 등록을 마쳤다.
안치용 씨가 뉴욕주 웨체스터 카운티 등기소에 제심 법인 관련서류를 신청해 2주일 뒤 등기소 직원이 문서고를 뒤져 찾아온 약 40년 된 법인 서류는 모두 3건이다.
72년 1월 18일 법인 설립 서류에는 김 씨의 변호사 알란 디 싱거와 김 씨의 처가 쪽 친척으로 비서와 경호역할을 담당했던 전 중정요원 K 씨의 이름이 기재돼 있었다. K 씨는 60년대 후반 중정요원으로 뉴욕에 파견돼 영사로 일한 바 있는데, 아마도 김 씨는 친척인 K 씨를 미리 보내 망명을 미리 준비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 하나의 서류는 제심 부동산 회사가 김 씨의 소유임을 입증하는 결정적 단서가 되고 있다.
73년 8월 21일자로 된 이 서류에는 김 씨의 부인 김영순 씨(신영순과 동일인)가 제심 부동산 회사의 프레지던트, 즉 사장으로서 서명이 돼 있다.
대리인으로 이 법인의 지배인 역할을 맡은 싱거 변호사의 주소가 바뀌었다는 사실을 통보한 내용으로 프레지던트는 김영순, 싱거 변호사는 세크리테리로 기재돼 있었다.
이 회사는 1972년 1월 법인 설립 두 달여 만인 같은 해 4월 3일 뉴욕주 웨체스터 카운티 그린버그타운에 위치한 대형 쇼핑센터를 구입한다. 이 시기는 김 씨가 공화당 국회의원으로 활동할 무렵이다.
김 씨가 미국으로 망명하기 1년 3개월 전의 일이며, 김 씨가 해외로 밀반출한 부정축재 재산이 71년 1월 테너플라이 주택 구입으로 잠깐 모습을 드러낸 데 이어 마침내 뭉텅이 돈의 실체가 드러난 것이다.
그린버그 쇼핑센터는 극장, 연회장, 슈퍼마켓 2개, 패스트푸드점 등이 완비돼 있고, 현 시세는 1500만 달러에 달한다.
그린버그 쇼핑센터(GREENBURGH SHOPPING CENTER)로 이름 지어진 이 쇼핑센터의 정확한 주소는 ‘77-97 크놀우드 로드, 와잇플레인’(77-97 KNOLLWOOD ROAD, WHITEPLAINS NY 10607)이다.
웨체스터 카운티는 지난 40년간 대변모를 거듭하면서 이제 이 쇼핑센터는 다운타운에서 다소 떨어진 변두리 쇼핑센터로 전락했지만 쇼핑센터의 규모는 11.5에이커, 대지 1만 4000평 규모로 10여 개의 대형 상점이 들어서 있다.
대형 슈퍼마켓체인 CVS와 AP로 잘 알려진 대형 식품점이 입주해 있으며 던킨 도너츠, 베스킨 라빈스도 눈에 띈다. 또 상영관 4개를 갖춘 클리어뷰 시네마 극장, 3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연회장을 완비한 식당 로열 팰리스, 피자 레스토랑 피자브류 등이 입주해 40년 전 위용을 짐작케 한다.
이 쇼핑몰 구입 당시 제심 부동산 회사는 178만 달러의 기존 은행 융자 잔금을 그대로 안은 채 현금으로 79만8000달러를 지불했다. 결국 72년 당시 매입가는 총 260만 달러에 달한 셈이다.
제심 회사는 이 쇼핑센터를 82년 2월 8일 170만 달러에 팔게 되며 은행융자 미상환액 37만 5000달러도 함께 넘겼다. 융자 미상환액으로 미뤄볼 때 10년간 140만 달러를 갚은 것으로 한 달에 1만 2000달러를 상환한 꼴이다.
결국 김 씨는 1973년 4월 15일 미국으로 망명하기 2년여 전부터 주택을 구입하고 법인을 설립해 쇼핑센터를 구입하는 등 소리소문 없이 망명 준비를 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김 씨는 또 미국 망명 1년 4개월 뒤인 1974년 8월 21일 뉴저지 알파인 하이우드 플레이스에 27만 달러짜리 저택을 구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저택은 1800평 규모로 2009년 현재 공시주택 가격은 220만 달러 상당이다.
알파인 하이우드 플레이스에는 김 씨 집을 포함한 모두 7채의 주택이 있었는데 7채 주택 모두 등기부 등본에 하이우드 플레이스라고만 기재돼 있을 뿐 넘버는 없다고 돼 있을 정도로 철저히 베일에 싸여 있던 집이다.
우편물은 우체국 사서함을 통해서만 전달되고 일반인에게 익숙한 주소는 찾아볼 수 없고 다만 등기부 등본에 정확한 지번을 알려주는 블록과 로드가 기재돼 있어 지적도를 통해서만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을 정도다.
트라팔가 집 매입문서 등 김형욱 일가가 미국 망명 전인 71년부터 미국 초호화 부동산을 매입한 증거 자료.
망명 1년 8개월여가 지난 1975년 1월 김 씨는 언젠가 자신에게 비운이 닥칠 것을 예감하고 자신의 사망이나 실종 때 부인과 자녀들에게 유산을 상속한다는 유언장을 작성했다.
이 유언장의 주소가 ‘60 트라팔가로드’로 돼 있는 것을 보면 김 씨는 1974년 8월 알파인 하이우드 플레이스 주택을 구입했지만 적어도 1975년 1월 이후에는 다른 집으로 이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김 씨는 천문학적인 돈을 어떻게 마련했고, 또 어떤 방식으로 미국으로 유출할 수 있었을까. 정보기관 주변에서는 김 씨가 권력 실세로 군림할 당시 치밀하게 재산을 축적했을 가능성이 높고, 회고록 포기 대가로 건네 받은 돈도 수십억 원대에 달할 것이란 얘기가 무성히 나돌고 있다.
과거사위의 ‘김형욱 실종사건 진상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당시 김 씨의 회고록 출판을 저지하기 위해 거액의 돈이 오갔다는 내용이 있다. 다만 회고록 포기에 따른 대가가 150만 달러라고 기재된 부분이 있는가 하면 200만 달러라고 서술된 부분도 있어 정확한 액수는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다.
하지만 <일요신문>과 안치용 씨가 확보한 김 씨의 과거 부동산 관련 문서를 통해 김 씨의 비자금 액수를 간접적으로나마 추론해 볼 수는 있을 것 같다.
김 씨는 1979년 10월 7일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되기 이전인 그해 8월과 9월 두 차례에 걸쳐 파리를 방문하고, 이때 회고록 포기 대가의 일부분이 직접 또는 스위스 은행 비밀계좌를 통해 입금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가 파리를 방문한 직후인 1979년 8월 24일 부인 김영순 씨는 지금 현재 그들이 살고 있는 뉴저지 알파인 주택의 부지를 매입했다.
알파인 언덕의 도로 맨 마지막 막다른 곳에 위치한 이 대지는 2에이커 2450평 규모로 부지 매매가는 17만 2500달러였다. 김 씨가 79년 8월 파리에서 돌아오자마자 땅을 매입한 사실에 미뤄 회고록 포기 대가로 받은 돈의 일부를 사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낳고 있다.
이상한 거래는 또 있다. 김 씨가 실종(10월 7일)된 뒤 채 두 달도 지나지 않은 11월 29일 부인 김 씨는 뉴욕주 라클랜드 카운티 오렌지타운에 7필지의 주거용 부지를 매입한다.
매입 가격은 양도세를 역으로 계산할 경우 20만 달러 안팎으로 추정된다. 남편의 실종으로 어수선한 상황에서 부인은 또 다시 부동산을 구입한 것이다.
한국 정부는 김 씨가 망명한 뒤 미하원 프레이저 청문회를 통해 박정희 정권의 비리를 폭로하자 1977년 12월 ‘반국가행위자 재산몰수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제정했고, 1982년 3월 궐석재판을 통해 김 씨에게 징역 7년에 자격정지 7년과 함께 전 재산 몰수형을 선고한다.
김 씨에 대한 궐석재판이 진행되자 부인은 미국내 재산을 지키기 위해 이를 현금화하기 시작한다. 우선 가장 큰 부동산인 쇼핑센터 매도에 나선다.
1972년 4월 구입한 그린버그 쇼핑센터의 소유주였던 제심 부동산 회사는 1982년 2월 8일 10달러에 이 쇼핑센터를 부인 김 씨에게 넘기고, 김 씨는 같은 날 이 쇼핑센터를 매각한다.
제심 부동산 회사가 대형 쇼핑센터를 불과 10달러에 김 씨에게 넘겼다는 사실은 이 쇼핑센터의 실제 주인이 김 씨임을 입증해 주는 결정적인 단서가 되고 있다.
이 쇼핑센터의 매도금액은 양도세를 역 추적한 결과 현금 170만 달러에 모기지 37만 5000달러를 포함해 모두 210만 달러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재산몰수 움직임을 보이자 손해를 보면서 급하게 매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김 씨는 또 한 달여 뒤인 82년 3월 30일에는 남편이 실종된 지 약 두 달 뒤에 매입했던 뉴욕주 라클랜드 카운티 오렌지타운의 주거용 부지 7필지도 23만5000달러에 매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박정희 정권을 등진 뒤 흔적도 없이 사라진 김 씨가 망명 준비만큼은 그가 그토록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동백림 작전’만큼이나 철저하게 진행했던 정황이 드러남에 따라 ‘김형욱 실종’ 사건을 둘러싼 진실게임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것으로 보인다.
뉴욕=안치용 재미블로거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