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 깨지면서 금슬도 깨졌다”
▲ 16세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대도’ 조세형 씨와 결혼했던 이은경 씨. 올 2월 이혼한 이 씨는 지난 1일 비구니가 되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대체 무엇이 그리도 그녀를 서럽게 한 것일까. 세상에 대한 미련 탓일까. 아니면 자신의 운명을 거스르고 싶었던 걸까. 여인의 이름은 이은경(55).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70~80년대 부유층과 고위층을 상대로 신출귀몰한 절도행각을 벌여 세상을 발칵 뒤집어놨던 ‘대도’ 조세형 씨의 아내였다. 이날 삭발식은 이 씨가 ‘청아’라는 불명을 받고 비구니로 태어나는 시발 의식이었다.
지난 2000년 조 씨와 16세의 나이차를 극복하고 부부의 연을 맺어 세간의 화제를 모은 바 있던 이 씨. 사랑과 헌신으로 전직 대도의 인생역전을 갈망했던 그녀는 이제 더 이상 조 씨의 아내가 아니다. 10년 만의 파경, 그리고 승려의 길. 대체 이들 부부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 사람과의 인연은 끝났습니다. 지쳤습니다. 놔준다는 표현이 정확할 듯 하네요.”
이 씨와의 만남은 지난해 가을 부부 인터뷰 이후 꼭 14개월 만이었다. 이 씨는 많이 지쳐보였다. 당시 조 씨는 출소한 지 반 년 만에 번듯한 사업가로 깜짝변신해 있었다. 인터뷰 내내 두 사람은 화기애애한 분위기속에서 돈독한 금실을 과시했었다. 하지만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상황은 너무도 달라져 있었다.
이 씨에 따르면 조 씨와 이혼 얘기가 처음 나온 것은 지난해 9월이고, 법적으로 부부의 연을 정리한 것은 올 2월이다. 세간의 화제 속에 부부가 된 지 10년 만의 파경이었다. 표면적으로 부부갈등의 단초가 된 것은 신앙문제였다. 천주교 모태신앙이었던 이 씨는 조 씨를 만난 후 기독교로 개종했고, 2005년에는 면목동에 천상암을 열고 법사(출가하지 않은 재가 불자지만 깨달음을 얻기 위한 수행은 계속하는 승려)의 길로 들어섰었다. 목포교도소 수감 당시 아내로부터 ‘신이 내렸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조 씨는 기자에게 큰 혼란을 겪어야 했다고 털어놓은 바 있다.
“신앙문제로 갈등이 많았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 사람은 제가 교회에 다니며 평범한 주부로 살길 원했어요. 하지만 사람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더라구요. 사실 이혼 얘기는 전부터 나왔었습니다. 수감과 출소를 반복하는 그 사람으로 인해 저도 많이 힘들었지만 무엇보다 염려스러운 것은 아이였습니다. 수시로 경찰과 기자들이 아이에게까지 접촉하는 것을 보니 참담하더라구요. 아이를 위해서라도 법적으로 정리해 놓자는 얘기가 오갔지요. 하지만 막상 이혼을 생각하니 아이보다 그 사람이 마음에 더 걸렸습니다.”
이혼에 대한 얘기가 오갔지만 조 씨가 마음에 걸려 결심을 하지 못했다는 이 씨. 하지만 두 사람은 끝내 진짜 ‘남남’의 길을 택하고 말았다. 이 씨는 파경에 대해 성격 차이나 불륜, 심한 다툼 등 일반부부의 사연과는 다른 헤어짐이라고 강조했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고,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결별 수순을 밟았다고 한다.
하지만 이 씨는 조 씨와의 순탄치 않은 결혼생활을 얘기하면서 연신 눈물을 흘렸다. 뭔가 말하기 힘든 또 다른 사연이 있음이 분명했다. 파경 이유에 대해 극도로 말을 아끼던 이 씨는 오랜 설득 끝에 속내를 털어놨다.
“그 사람은 오랜 수감생활로 인해 사회와 단절되어 있던 사람입니다. 결혼생활 10년 중 무려 8년을 수감생활을 했던 사람이에요. 저는 그 사람이 사회에 자리를 잡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려고 부단히 노력했습니다. 지난해 그 사람이 출소한 후 제가 오랫동안 구상해놨던 사업체를 마련해 준 것도 그런 의미였어요. 하지만 그 사람은 사회를 너무 몰랐고 좀처럼 제 뜻에 따라주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이 씨는 2005년 마포구에서 또다시 절도행각을 벌여 구속된 조 씨를 위해 오랜 준비 끝에 러시아와 중국, 북한 등지에서 송이버섯 등을 수입하는 회사를 차렸고 3년을 복역하고 출소한 조 씨에게 선뜻 대표이사 자리를 내줬다. 당시 이 씨는 기자에게 “힘들게 이뤄놓은 사업을 남편에게 넘겨준 것은 지아비를 다듬어서 끝까지 같이 가겠다는 각오인 동시에 새출발을 각인시키는 희망의 메시지였다”고 말한 바 있고, 조 씨 역시 “마누라 잘 만나서 팔자에도 없는 무역회사 CEO가 됐다”며 ‘사업가 조세형’으로서의 재기를 선언한 바 있다.
▲ 지난 99년 결혼을 앞두고 행복한 웃음을 감추지 못했던 조세형 씨와 이은경 씨. | ||
하지만 사회생활이나 사업에 대해 무지했던 탓일까. 조 씨는 이 씨의 조언을 무시하고 자주 문제를 일으켰다고 한다. “주변에서 그 사람을 놔두지 않았어요. 출소자들이 그 사람을 수시로 찾아와 ‘도와달라’고 했어요. 그 사람은 정이 너무 많아서 거절을 못하는 성격입니다. 한두 명도 아니고…. 그 돈도 결국은 다 제 주머니에서 나가는 거잖아요. 사업체를 운영하는 부분에 있어서도 문제가 많았습니다. 작년에 엄청난 돈을 날렸어요. 회사에 자신의 측근들과 심지어 마약에 손댔던 사람들까지 아우들이라고 심어 놓으니 사업이 정상적으로 될 리가 있나요. 또 측근들에게 돈을 다 써 대다보니…. 이 사업체는 ‘마지막 승부’라고 누누이 얘기했음에도 제 조언은 듣지 않더군요. 자존심이 무척 강한 사람이거든요. 그런 과정에서 신뢰는 무너졌고 인간적인 실망감도 극복하기 힘들었습니다. 결국 ‘빚을 해결할테니 당분간 떨어져 지내자’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빚 정리는 물론 남은 사업자금도 다 줘버리고 정리했습니다.”
두 사람은 “헤어지자”는 말도 없이 ‘유유히’ 파경을 맞았다. 이 씨의 표현에 따르면 그녀는 조 씨에 대한 인간적인 연을 놓아버렸고, 자존심이 유독 강한 조 씨는 이 씨를 끝내 붙잡지 않았다. 미안함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다고 이 씨는 보탰다. 하지만 이별에 대해 아무 언급도 하지 않은 것은 두 사람 모두 마찬가지였다. 세간을 들썩이게 했던 두 사람의 10년 로맨스가 너무도 허망하게 끝난 셈이다.
그렇다면 이 씨가 하필 승려가 되기로 결심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 남자의 아내이자 한 아이의 어머니였던 이 씨로서는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 터.
“돌이켜보면 아내로서, 여자로서, 어머니로서 살아온 제 삶은 정말 파란만장했어요. 스스로 생각해도 안쓰러울 정도죠. 하지만 제가 살 수 있는 최후의 보루는 이 길밖에 없었습니다.”
조 씨와의 갈등은 이 씨에게 정신적으로 큰 아픔을 줬다고 한다. 그리고 이 씨를 지치게 했다. 이 씨는 13일 동안 금식을 하며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생각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로 인해 결국 마음을 돌렸다. 그리고 택한 길이 승려의 길이었다.
“그간 참 말 못할 일들이 많았어요. 그 사람이 수감되어 있는 동안 그 사람의 아우들이 수시로 찾아와서 돈을 달라고 하는 것은 기본이고 갖은 횡포를 부려댔어요. 심지어 성적 희롱까지 하곤 했습니다. 여자로서 참기 힘든 수모였죠. 그 사람은 심성은 착한 사람이지만 남편으로서 저를 보호해주지 못했고, 방패가 되어주지 못했어요. 결국 ‘내가 살기 위해서는 이 사람과의 인연을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혼 후에도 그 사람의 측근들은 제가 바람났다는 등 근거없는 악소문을 내고 다닙니다. 이곳에 온 지 몇 달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수차례나 찾아와서 입에 담기 힘든 욕설을 하고 기물을 파손하고 심지어 폭행까지 했어요. 얼마나 두려웠는지 모릅니다. 오죽하면 CCTV를 달고 경찰에 신고까지 했겠습니까. 경찰조차 오죽하면 ‘그냥 깊이 숨는 게 낫겠다’는 말을 하더군요.”
▲ 지난 1일 승려의 길로 들어선 이은경 씨의 삭발식 장면. 힘들었던 속세의 인연을 잘라내듯 고운 머리카락을 잘라내며 이 씨는 방울방울 눈물을 떨궜다. | ||
이날 이 씨는 조 씨에게 미움이나 원망 같은 건 없다고 강조했다. 쉬운 말로 ‘원수’지고 갈라선 것이 아니기 때문이란다. 이 씨는 대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인간적인 미련과 염려가 남아있었다고 고백했다.
“솔직히 꿈에서라도 보고 싶었고 통화라도 해보고 싶었습니다. 견디다 못해 측근을 통해 그 사람에게 연락을 시도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만 인연 끊으라’는 얘기만 전해들었죠. 며칠 전 차 안에서 우연히 그 사람을 봤습니다. 한번 불러볼까도 생각했지만 그 사람의 얼굴이 너무도 평온해 보이더군요. 자연스럽게 마음 정리가 되더라구요. ‘저도 이제 제 길을 가겠습니다. 제발 잘 살아주세요’라고 되뇌며 그냥 왔죠.”
이 씨는 “모든 것이 운명인 것 같다”며 “앞으로 사람들의 상처를 보듬고 아우르는 동시에 사회에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조 씨에게 쏟았던 사랑과 헌신을 복지재단과 문화재단을 통해 실천하겠다는 계획도 있다고 했다.
한편 기자는 조 씨와 여러 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끝내 연락이 닿지 않았다. 대신 조 씨의 측근으로부터 조 씨가 현재 상당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전해들을 수 있었다. 측근은 12월 3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조 씨는 가정문제 때문에 심적으로 무척 힘든 상황이다. 개인적으로 조 씨가 너무 불쌍하고 안타깝다.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모든 연락을 끊고 지방의 기도원에 머물면서 마음을 다스리고 있다. 가끔 공중전화로만 연락이 올 뿐 연락할 방법이 없다”며 “불편한 가정사를 기사화해서 조 씨를 힘들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