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팀이 꿀꺽? 소설이냐 팩트냐
경찰과 동아건설 관계자에 따르면 현상금 3억 원은 박 씨를 검거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 사람에게 건네져 마무리됐다. 하지만 경찰 주변에서는 한때 현상금과 관련한 괴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박 씨를 검거한 수사팀과 제보자 사이에 ‘부적절한 거래’가 있었다는 게 소문의 골자였다. 소문이 불거지자 경찰은 12월 11일 언론을 통해 “현상금 3억 원은 제보자가 이미 받아갔다. 괴소문도 조사했지만 사실무근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대체 어떤 소문이 있었기에 경찰이 조사까지 해야 했던 것일까. 현상금 3억 원을 둘러싼 황당한 소문과 그 진상을 추적해봤다.
평범한 중년 회사원이 회사 공금 1898억 원을 횡령해 잠적한 사실이 지난 7월 해당회사 및 경찰을 통해 알려지자 세인들의 눈과 귀는 이 사건으로 쏠렸다.
박 부장은 서울의 명문 상고를 졸업한 뒤 고졸 공채로 동아건설에 입사해, 자금부장으로 근무하며 2004년부터 올 6월까지 5년간 2000억 원 가까운 돈을 회사 통장에서 빼냈다. 그는 평소에는 일반 회사원으로 평범한 생활을 했지만 주말에는 카지노에서 수십 억원을 쓰는 ‘왕회장’으로 통했다. 하지만 회사 주변에서 그와 관련한 이상한 소문이 돌기 시작하자 박 부장은 지난 7월 잠적했다.
뉴스를 접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 그런 거금을 횡령할 수 있었는지, 또한 박 부장이 그 많은 돈을 다 어디에 사용했는지 등에 큰 관심을 나타냈다. 또한 역대 최고인 3억 원이란 현상금에도 세간의 관심이 쏠렸다. 이 현상금은 동아건설 임직원들이 휴가비를 반납해 모은 돈이었고 최근 제보자에게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 현상금을 둘러싸고는 한때 경찰 내부에서 이상한 소문이 나돌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팀이 박 씨의 위치를 확인한 다음 브로커를 내세워 현상금을 타내게 하고 이를 제보자와 나눠 가졌다는 것이 소문의 골자. 이런 내용은 문서로 만들어져서 일부 수사기관에도 뿌려졌다. 누가 작성했는지 알 수는 없었지만 그 내용만큼은 그럴싸했다.
제기된 의혹들을 차례로 살펴보면 먼저 동아건설 횡령 사건이 경찰서 지능팀이 아닌 경제팀에 배당된 점에 의혹의 시선이 쏠렸다.
경찰 시스템상 서장이나 수사팀장 등의 인가가 떨어지지 않으면 경제팀에서는 배당 사건만을 수사할 수 있는데 이번 사건의 경우 경제팀에서 인지수사를 했다는 것이다.
괴문서에는 처음에 인지수사를 허락하지 않았던 경찰 윗선에서 같은 고향 출신 건설사 임원의 로비를 받고 나중에 수사를 지시했을 것이란 내용도 담겨 있다. 즉 수사 시작 단계부터 문제가 있었다는 주장이다.
또한 문서에는 제보자가 ‘사설경마를 하는 선배가 박 부장에게 대포폰 몇 개를 만들어 주었는데 대포폰 번호를 제공하겠다’며 경찰에 접근한 것으로 나와 있다. 하지만 경찰은 제보자가 알려준 대포폰을 추적했지만 별다른 소득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이에 경찰은 박 부장 아내의 차량에 위치추적기를 부착하고 미행을 계속했는데 한 식당에서 부인에게 돈을 건네주려고 나타난 박 부장을 붙잡았다는 내용도 담겨 있다.
또 문서 내용에는 ‘경찰이 박 부장 검거 과정에서 제보자에게 연락한 뒤 박 부장 얼굴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고, 제보자는 현장에서 사이클 선수 복장을 하고 수염을 길러 경찰도 알아보지 못한 박 부장의 얼굴을 보고 맞다고 지목해줬다’고 적혀있다.
특히 ‘제보자는 박 부장의 도피를 도와 준 선배로서 박 부장의 범행 사실을 알고 있었던 만큼 그 자신도 범인도피를 도운 혐의로 구속될 형편이었지만, 오히려 박 부장 검거 후 현상금 3억 원 중 세금을 공제한 2억 4400만 원을 받을 수 있었다’고 문서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외에도 문서에는 수사 시작 배경부터 관련자 이름까지 제법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어 관련 의혹들에 대한 신빙성을 더했다.
이런 내용의 문서들이 몇몇 사정기관과 경찰청 감사실 등에 돌자 경찰은 황급히 사태 파악에 나섰고, 지난 11일 언론을 통해 관련 의혹들을 반박했다.
경찰 측은 “제보자는 평소 박 씨와 어렴풋이 알고 지낸 인물로, 지난 8월 동아건설이 제작한 수배 전단을 보고 박 씨가 사용하던 ‘대포폰’ 전화번호를 동아건설 제보 접수반에 알렸다”고 밝혔다.
당시 동아건설은 각 부서에서 차출한 15명의 직원을 3개조로 나눠 24시간 박 씨 관련 제보 전화를 받고 있었다. 동아건설 고위 관계자가 이 제보의 신빙성이 높다고 판단해 경찰에 전달했다는 것이다. 경찰은 “전화번호를 통해 박 씨의 행방을 추적했고, 지난 10월 2일 경기도 하남시 미사동의 한 식당에서 부인 송 아무개 씨와 몰래 만나던 박 씨를 검거했다”고 밝혔다.
특히 경찰은 “해당 수사관 및 동아건설, 검찰 등에 확인한 결과 ‘부적절한 거래’가 있었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고 못을 박았다. 경찰 관계자들은 이 같은 의혹들이 불거진 배경에 대해 해당 경찰서 내부의 승진을 둘러싼 암투를 꼽기도 했다. 즉, 승진에서 소외된 쪽이나 이를 시기하는 쪽에서 퍼트렸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한편 박 부장이 꾸린 변호인단 규모가 법조계에서 화제를 모으고 있다. 박 부장은 국내 로펌 8위인 ‘바른’과 개인 변호사가 변론을 맡고 있다. 법무법인 바른은 검찰 고위직 출신인 문성우 전 대검차장과 이인규 전 대검 중수부장, 서범정 전 대검 과학수사기획관을 동시에 영입해 법조계에서 화제가 된 곳이다. 전 태광실업 회장 박연차 씨, 스테이트월셔 회장 공 아무개 씨 횡령 사건 등 굵직한 사건을 도맡아 법조계에서는 “바른이 형사사건을 싹쓸이 한다”는 얘기가 나돌 정도다.
이번 사건을 수사한 경찰이나 검찰 은 박 씨가 매머드급 변호인단을 구성하자 ‘숨겨 놓은 재산이 더 있는 모양’이라며 혀를 내둘렀다고 한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