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따돌린 ‘결정적 옵션’ 있었나
▲ 극적인 악수 이명박 대통령과 칼리파 빈 자예드 알 나흐얀 UAE 대통령이 지난달 27일(현지시간) 아부다비 에미리트 펠리스 호텔에서 원전사업 계약 서명식을 마친 뒤 악수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
하지만 야권과 일부 시민사회단체 주변에서는 원전 수주를 둘러싼 논란이 수그러들기는커녕 갖가지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확대·재생산되고 있다. 한국의 원전 수주는 미국과 UAE 간의 원자력협정에 따른 부산물이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가 하면 공사 규모가 부풀려졌고, 헐값 수주로 인해 오히려 손해가 날 수도 있다는 주장도 고개를 들고 있다.
야권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프랑스로 기울었던 원전을 수주하기 위해 경계병 파병 내지는 군 병력 파병을 약속하지 않았나 하는 이른바 ‘이면계약’ 의혹마저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 여당의 감격과 흥분을 뒤로한 채 갖가지 궁금증과 의혹이 커져가고 있는 UAE 원전 수주를 둘러싼 미스터리를 들여다 봤다.
UAE 원전 수주를 둘러싼 갖가지 미스터리 중 가장 큰 논란을 예고하고 있는 대목은 다름 아닌 ‘이면계약’이 있었는지 여부다. ‘이면계약’ 의혹은 이 대통령이 UAE와 담판 끝에 프랑스 아레바로 기울던 원전 계약을 한국전력이 따내도록 한 배경에는 분명 미공개 X파일이 자리잡고 있을 것이란 의구심에서 출발한다. 수주 가격을 비롯해 프랑스가 제시한 계약조건보다 뭔가 진일보된 조건 내지는 파격적인 선물을 제시한 게 아니냐는 논리다.
야권 일각에서는 경계병 파병 등 포괄적인 군사협력을 계약 옵션으로 제공했을 것이란 의구심을 감추지 않고 있다. 특히 김태영 국방장관이 원전 수주에 앞서 두 차례 UAE를 방문했다는 사실은 이러한 의혹을 부추기고 있다. 김 장관은 이 대통령의 UAE 방문 전인 지난해 11월 3박 4일간의 일정으로 황의돈 한미연합사 부사령관과 함께 UAE를 방문해 양국 간 군사협력 문제를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국이 어떤 점을 논의했고 구체적인 합의 사항이 무엇인지 등은 베일에 가려 있지만 김 장관이 UAE 측과 전략적 군사동맹 문제 등 원전 수주와 관련한 포괄적인 군사협력 문제를 논의했을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지난해 12월 30일 열린 국회 지식경제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야당 의원들이 김 장관의 역할론을 비롯한 ‘이면계약’ 의혹에 대해 집중적으로 추궁한 것도 이러한 관측과 그 맥을 같이하고 있다. 노영민 민주당 의원은 이날 회의에 참석한 최경환 지식경제부 장관을 상대로 김 장관이 지난해 11월 UAE를 방문해 군 고위급 협상을 진행한 것과 관련해 “건설현장의 안전관리를 위한 군대 파견 가능성이 있느냐”고 추궁하면서 “국회 동의 없이 파병을 약속하거나 협약을 체결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일축했다. 같은 당 김재균 의원도 “군사협력이나 기타 부문에서 이면합의가 있는 것 아니냐 하는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다”며 “만일 추후 드러난다면 이명박 대통령이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하는 부분도 문제를 갖지 않을 수 없다”고 경고했다.
야당 의원들의 추궁에 최 장관은 “국방부 장관은 방위산업 이런 쪽에서 협력을 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구체적 내용은 모르겠다”고 답했고, 군사협력이 원전 수주의 옵션인지 여부에 대해서도 “옵션은 아니다”라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최 장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양국간 군사협력 문제는 이면계약 의혹 논란과 맞물려 원전 공사 과정에서 휘발성이 강한 시한폭탄으로 부상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로 원전 수주 발표 직후 청와대의 한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양국간 국방협력 문제와 관련해 “모든 나라에서 원전은 최고 보안시설이므로 어떻게 관리하고 지킬 것인지 우리가 도울 수 있는 범위에서 도와야 한다”며 “원전에 테러리스트라도 접근하면 큰일인데 UAE는 자체 경비 역량이 떨어진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는 원전 건설 현장의 경계 등 안전관리를 한국이 상당 부분 담당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며, 이를 위해 정부 차원에서 민간 경비인력뿐만 아니라 군 병력 파병 가능성도 열어놓고 있다는 복심이 투영된 발언으로 해석된다.
국내 국방 전문가들이나 주요 외신들은 불안한 중동지역 정세 및 긴 원전 공사 기간을 고려하면 안정적 경계 지원을 위한 군 병력 파견이 불가피할 것이란 관측을 내놓고 있다. 원전은 냉각수가 많이 필요해 아랍에미리트 해안에 자리잡아야 하는데 이 경우 바다 건너편에 있는 이란의 군사적 위협에 노출될 수밖에 없어 군사적 안전장치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자체 국방력을 갖추고 있지 않은 UAE 측이 원전 공사를 발주하면서 군사 문제 등을 계약 조건의 최우선 순위로 내걸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프랑스 사르코지 대통령도 원전 수주 경쟁 과정에서 UAE 측에 군사기지 설치를 약속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정부 당국과 이 대통령이 프랑스로 기울던 원전 수주를 막판에 우리 쪽으로 돌려놓을 수 있었던 배경에 군 병력 파병 등 ‘이면계약’이 있었던 게 아니냐는 의혹을 부추기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 정보당국의 한 관계자는 최근 기자와 만나 “원전 수주 막판에는 계약 조건의 최대 난제였던 군대 협력 문제와 관련해서도 UAE 측의 요구를 만족시킬 대안을 제시한 걸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대안이 무엇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관계자는 오프를 전제로 “군 병력 파병 문제를 포함한 포괄적 군사교류협력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국방부와 정보당국이 난색을 표명했지만 이 대통령의 의지가 워낙 강해 밀어붙인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원전 수주 이후 청와대 일부 관계자들이 원전 건설 현장의 경계 등 안전관리를 위해 민간 경비인력뿐만 아니라 군 병력 파병 가능성을 언급하고 있는 것도 석연치 않다. 군 파병 가능성에 따른 여론 추이를 살피는 등 이면계약을 추진하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 수순에 돌입한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원전 수주를 성사시킨 3일 후에 정부가 유엔 평화유지군 파병을 1000명 수준으로 확대하겠다고 발표한 것도 심상치 않다. 지난해 12월 31일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새해 글로벌 외교에 초점을 맞추고 성숙한 세계 국가에 한발 다가가기 위해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참여 확대와 공적개발원조 선진화를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특히 외교부는 PKO참여법 제정으로 아프리카 등 PKO의 수요가 있는 곳에 신규 파병을 추진키로 하고 평화유지군 파병 규모를 현재의 401명에서 1000명 규모로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UAE 원전 건설 공사가 본격화될 경우 어떤 식으로든 수면위로 부상할 수밖에 없는 해외 군 병력 파견 문제를 희석시키기 위해 PKO 참여 확대를 명분으로 내놓은 게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원전 주수 과정에 결단코 ‘이면계약은 없었다’는 정부 당국의 주장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안전한 원전 건설을 위한 사후 파병 문제가 공론화 될 경우 정치권의 첨예한 정쟁과 맞물려 사회적 논란도 뜨겁게 달아오를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파병 기간이 너무 길고 민간 공사 현장에 군 경계병을 파병한 전례가 없기 때문이다. 한국은 원전 4기 가운데 1호기를 2017년 준공하고, 해마다 발전소를 하나씩 건설해 2020년에 공사를 끝낼 계획이다.
원전 수주 과정에서 이 대통령과 정부당국이 파병을 비롯한 공개되지 않은 ‘이면계약’을 한 사실이 드러날 경우 원전 수주에 따른 축포는 곧바로 정치권을 강타하는 폭탄으로 변질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그러나 여권과 보수 진영에서는 원전 수주 이면계약설이 나도는 것에 대해서 ‘야권의 흡집내기일 뿐’이라는 시각이 강하다.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는 시점에서 원전 수주로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오르는 등 여당에게 유리하게 전개되자 세불리를 느낀 야권이 국가적 경사인 원전 수주를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말 정부 여당에 환호성을 안겨준 UAE 원전 수주 쾌거가 앞으로도 계속 정부 여당의 호재로 작용할지 아니면 악재로 돌변할지 국민적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