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문계와 동맹 꾀했으나 명·문 회동으로 차질…지지층 분열에 ‘올드 민주당’ 결집도 쉽지 않아

2018년 9월 19일 남북정상회담 때 있었던 평양 능라도 경기장 연설, 4·27 판문점 선언, 9·19 군사 합의 등 문재인 전 대통령의 남북 관계 개선 성과를 추켜세웠다. 이재명 대통령은 윤석열 정권의 야당 탄압에 함께 맞서 싸운 자신의 동지이자 전우라고 말했다. 이재명 이름은 36차례 언급하며 ‘반명’이 아니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정 전 대표는 “김대중의 역사, 노무현의 역사, 문재인의 역사를 자양분 삼아 이재명의 역사를 꽃피워야 한다”고 했다.
정 전 대표는 사퇴 직후 첫 공식 행보로 문재인 전 대통령과 만났다. 정 전 대표는 6월 24일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 서울국제도서전을 찾아 문 전 대통령에게 90도 인사를 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 대통령의 책 4권을 구매했다고 밝혔다. 정 전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오늘 아침 사퇴의 변으로 김대중의 역사, 노무현의 역사, 문재인의 역사를 자양분 삼아 이재명의 역사를 더 꽃피워야 된다 그랬더니 (문 전 대통령이) ‘잘했다’고 말씀을 하셨다”라고 전했다.
문 전 대통령과의 만남은 ‘친문계’와의 동맹 및 ‘올드 민주당’ 지지층 결집을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의원 지지세가 약점인 정 전 대표는 친문 의원들을 우군으로 끌어 모아야 하는 상황이다. 동시에 ‘뉴이재명’ 지지층의 거센 비토를 받는 만큼 김대중 시절부터 민주당을 지지해 온 ‘올드 민주당’ 지지도 필수다. 이들은 40대에서 60대 연령층에 분포돼 있으며 민주당 ‘코어 지지층’을 이루는 것으로 분석된다.
정 전 대표 사퇴 이틀 뒤인 6월 26일 공개된 ‘다스뵈이다’에서 유시민 작가(전 보건복지부 장관)는 ‘재건축론’이라는 일종의 논리 무기를 공급했다. 다수의 민주당 지지층은 민주당 전통 위에 중도 보수 확장을 보태는 ‘증축’을 원했는데, 이 대통령은 민주당 전통을 파괴하는 ‘재건축’을 시도했다는 주장이다. 유 작가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문제는 대통령의 자신감이 지나쳤던 것”이라고 말했다.
유 작가는 “외부 바이러스를 물리쳐야 할 면역세포가 자신의 정상 세포를 공격하는 일이 1년 이상 지속돼 신진대사에 이상이 발생했다”며 “이로 인해 민주당 지지율은 유지되거나 상승하는 반면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급락하는 ‘디커플링’ 현상이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정상 세포(전통 민주당)’ 공격에는 문재인·조국·김어준·정청래·유시민을 공격하는 ‘철거 용역 전문 평론가’와 지적 책임을 묻기 어려운 ‘촉법 평론가’들이 주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고 의원은 6월 26일 YTN 라디오 ‘장성철의 뉴스명당’에선 “하늘에 계신 그분들(전직 대통령)께서 그런 것(적통 주장)들을 인정하실까”라고 반문했다. 고 의원은 “소위 약한 분들을 위한 정치를 하는 게 민주당의 적통”이라며 “시대의 상황 등에 따라 노무현이라는 분이 나타나신 것이고, 문재인이라는 분이 나타났고, 지금은 이재명이라는 분이 나타나서 민주당에 적통과 전통성을 이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7월 1일 이 대통령과 문 전 대통령의 청와대 회동 이후 정 전 대표의 전략은 차질을 빚는 형국이다. ‘친명’과 ‘친문’ 두 계파 수장은 한 목소리로 ‘민주당 단합’을 말했다. 문 전 대통령은 “민주당이 먼저 단합하고, 그 위에서 민주개혁 진영, 그리고 빛의 혁명을 함께했던 세력들과 더 큰 단합을 이뤄내야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을 수 있다고 본다”며 “지금 이런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 대한민국에서 이 대통령뿐”이라고 말했다.
‘친문계’와의 동맹에 이상기류가 형성되자 당내에서는 정 전 대표가 고립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친명계 의원은 “최민희, 한민수, 이성윤 의원처럼 이번에 전당대회에 나오는 사람이 친청계로 되는 것 같다”면서도 “‘친청계’는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원래 정 전 대표는 ‘독고다이’였다. ‘친문’ 대 ‘친명’으로 갈라지면서 (친청계 의원들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정청래 지지로) 가는 것”이라고 했다.
관건은 권리당원 표심이다. 정 전 대표는 권리당원과 대의원의 표 비중을 1 대 1로 하는 ‘전 당원 1인 1표제’ 통과에 사활을 걸었다. ‘친명계’가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며 반발했지만, 정 전 대표는 뚝심있게 ‘1인 1표제’를 밀어붙였다. 이에 전당대회는 대의원·권리당원 투표 70%, 국민여론조사 30%로 치러진다. ‘당심’에 따라 당선자 향방이 결정될 전망이다.
당심은 정 전 대표의 최대 강점이다. 2016년 20대 총선에서 컷오프된 다음 ‘더컷 유세단’을 이끌며 민주당 지지층과 호흡했다(관련기사 한땐 ‘그’보다 위였던…정청래 인생 여정에서 찾아본 ‘명청 대전’의 기원). 딴지일보 게시판에 글을 올리며 강성 당원들과 유대관계를 쌓았다. 지난 임시 전당대회에서도 의원들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던 박찬대 인천시장을 눌렀다. 앞서의 친명계 의원은 “(정 전 대표는) 워낙에 당원들 지지가 센 분이다. 저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당심에서의 우위를 낙관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명청 갈등’으로 지지층이 분열됐고, ‘명심’도 김 전 총리 쪽으로 기울어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어서다.
‘청래당’에서 활동하고 있는 정 전 대표 지지자는 “조국 대표를 지지하고 (민주당 주최) 집회에 많이 나왔던, 민주당에서 오래되신 분들 같은 경우 정청래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고, 박찬대 쪽을 지지했던 사람들이 김민석·송영길로 갈라져 있는 것 같다”면서도 “(승패는) 솔직히 모르겠다. 어려운 싸움”이라고 했다.
이재명 정부가 발표한 ‘3대 메가 프로젝트’가 정 전 대표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삼성과 SK하이닉스 등이 호남에 반도체 제2의 생산 거점을 조성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투자 금액은 총 800조 원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은 광주를 후보지로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호남 당심이 ‘명심’으로 쏠릴 가능성이 높아진 셈이다.
정 전 대표는 ‘전북 홀대론’으로 반격했다. ‘친청계’ 이원택 전북지사는 취임식에서 ‘전북 소외론’을 거론했다. 정 전 대표는 소셜미디어(SNS)에 “‘광주·전남에만 그렇게 많이 투자하는데, 전북은 워째 그래요. 많이 서운합니다’ 정부와 당에서 전북에 현대자동차뿐만 아니라 더 많은 투자가 될 수 있도록 힘쓰겠다”고 적었다.
당 안팎에서는 전북 권리당원 19만 명의 표를 얻기 위해 호남 내부 갈라치기를 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전북에서는 역풍 조짐까지 감지되고 있다. ‘김관영 컷오프’ 사태로 만들어진 ‘친청계 비토’ 여론은 불식되지 않은 상태다. ‘전북 홀대론’에 대해서도 ‘대안 없이 분열만 조장한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전북 지역 정치권 관계자는 “이원택 특별대우로 정청래에 대한 반감이 굉장히 넓게 자리하고 있다. 이원택은 민주당 아니면 지역 발전 없다는 공포 마케팅으로 겨우 이겼는데, 정작 준비한 게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 어떤 비전이나 전략이 있어야 하는데 전·남북으로 갈라치기를 하는 발언을 했다. 이재명 정부 약속과 함께 전북 발전 기회를 바라고 있는데 전직 당대표가 그 길을 차단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그런 점에서 매우 불만이 높다”고 전했다.

이처럼 판세가 불리하게 돌아가면서 정치권에서는 정 전 대표가 불출마 카드를 꺼낼 수 있다는 관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친청계’ 인사는 “출마할 의사가 없다면 사퇴할 이유도 없다. 지난 1년 가까이 해온 것을 미루어 볼 때 출마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라고 본다”며 “당원들도 이런저런 루트로 출마하시라고 계속 요청하고 압박도 하고 이런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정 전 대표의 저력을 무시할 수 없다는 반론도 나온다. 한 민주당 관계자는 “(투표함을) 까 봐야 안다. 후보들 모두 어떤 민주당을 만들 건지 비전이나 방향 제시를 안 했다. 후보 등록도 안 한 상황이다. 누가 어떤 말실수를 하느냐, 어떤 바람이 부느냐 그런 것이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알 수 없다. 당원들은 그런 것들을 다 지켜볼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강원 기자 2000w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