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먹튀가 있나 부산 시민 뿔났다
▲ 지난 13일 대선주조 매매 과정에서 불법을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는 ㈜푸르밀 신준호 회장이 부산지검에 출두하고 있다. 연합뉴스 | ||
신 회장은 부산지역 대표 기업 중 하나인 대선주조를 지난 2004년 인수해 불과 3년 만에 3000억 원이라는 ‘대박’을 내고 지분을 팔았다. 검찰은 신 회장이 대선주조 매매과정에서 동원한 수법이 전혀 새로운 형태의 인수합병 방식이라고 보고 신 회장에 대한 사법처리를 자신하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신 회장 소환이 롯데그룹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라는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특히 현 정부와 롯데그룹이 세종시 입주를 둘러싸고 의견 차이를 보였다는 소문이 급속히 퍼지고 있는 상황이어서 푸르밀에 대한 검찰 수사 추이에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이는 정치권의 시각일 뿐 재계에서는 친형제간인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과 신준호 회장이 경영권 승계 문제로 오래 전 등을 돌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런 의혹은 말도 되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부산 지역의 대표 주류 업체인 대선주조는 경영난에 시달리다 1997년 IMF 사태가 일어나자 부도가 났다. 하지만 부산의 향토 주류업체를 살려야 한다는 부산시민들의 여론이 대선주조를 살렸다. 부산시는 대선주조 회생에 행정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정부도 간접적인 공적자금을 지원했다. 대선주조가 금융기관에 진 빚 2500억 원 가운데 2000억 원을 탕감하는 방식이었다.
지역민과 지자체의 적극적인 구제 노력으로 가까스로 기사회생한 대선주조는 2002년 최병석 전 회장이 구속되면서 다시 위기에 맞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4년에는 경남지역의 대표 주류업체인 (주)무학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위협에 시달리기도 했다.
이처럼 ‘풍전등화’의 위기 상황에 몰린 대선주조에 구세주처럼 나타났던 인물이 있었다. 다름 아닌 신준호 푸르밀 회장이었다. 대선주조 최 전 회장과 사돈지간이었던 신 회장은 2004년 6월 외아들과 며느리 등 일가 5명의 이름으로 대선주조 지분 50.79%를 사들이면서 대선주조를 사실상 인수했다. 신 회장은 이어 유상증자 등을 통해 대선주조 지분을 98.97%까지 늘리며 회사를 완전히 장악했다. 신 회장의 인수로 대선주조는 어느 정도 정상화가 이뤄지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 2007년 신 회장을 비롯해 대선주조 지분을 보유했던 일가 친척들이 돌연 대선주조 주식을 한 사모펀드에 모두 팔아버렸다. 2007년 11월 한국금융지주 산하 사모펀드인 코너스톤 에쿼티파트너스(코너스톤)에 대선주조 주식 전량을 3600억 원에 팔아 치운 것이다.
신 회장 측이 대선주조 경영권을 장악하는 데 투자한 돈은 모두 600억 원에 미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 지역에서는 신 회장 일가가 대표적인 향토기업을 인수한 후 3년여 만에 3000억 원의 시세차익만 올리고 내팽개쳤다는 비난 여론이 고조됐다. 특히 짧은 기간에 대선조주의 기업가치가 수직상승할 수 있었던 것은 부산시와 시민이 보낸 각별한 애정이 뒷받침됐다는 점에서 지역민들이 느끼는 배신감은 더욱 컸다.
신 회장 측은 대선주조 대주주에 오른 직후 공장을 경남 양산이나 김해로 옮기겠다고 했다. 이에 놀란 부산시는 부산 기장군 장안읍 자연녹지 8만 3841㎡를 공업용지로 용도변경해 제공했다. 뿐만 아니라 취·등록세 등 각종 세금도 면제해줬고, 토지보상업무 대행 등의 파격적 지원도 아끼지 않았다. 성공적인 공장 신설로 기업 가치는 수직상승했다.
그러나 우연의 일치인지는 몰라도 공장 신설이 마무리되자마자 신 회장 측은 대선주조 지분을 모두 팔아치웠다. 게다가 신 회장은 이익금을 다 가져가지 않고 200억 원가량을 코너스톤에 재투자해 여전히 대선주조의 경영권은 유지하고 있는 상태다. 신 회장 입장에서는 대선주조가 ‘황금알을 낳았던 거위’였던 셈이다.
지역 여론이 악화되자 결국 부산 검찰은 지난해 대선주조 인수 및 매각 과정에서의 불법은 없는지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지난해 11월에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의 신 회장 자택과 부산 대선주조 본사 등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검찰은 애초 600억 원짜리 회사가 3년 만에 3600억 원의 가치가 나가는 회사로 변모한 배경에 수사의 초점을 맞췄다. 압수수색을 통해 어느 정도 수사가 진척되자 검찰은 결국 지난 13일 신 회장을 전격 소환했다.
검찰은 신 회장과 관련해 크게 두 가지 흐름에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하나는 신 회장이 대선주조 매매 과정에서 대선주조 자산을 담보로 제공하기로 약정을 하고 사모펀드의 금융권 대출을 도왔고, 이것이 대선주조에 위험을 가져온 ‘차입인수’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담보제공 약정만으로도 대선주조에 위험을 가져왔기 때문에 불법에 해당한다고 보고 있다.
검찰은 이와 함께 사모펀드 코너스톤이 금융권에서 2000억 원을 빌리면서 대선주조의 기업 가치를 부풀린 자료를 제출했을 가능성에 대해서도 수사 중이다. 신 회장과 사모펀드 측이 공모해 허위 자료를 금융권에 내고 이를 근거로 막대한 자금을 대출받았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하지만 신 회장 측은 금융권 대출을 알선하면서 대선주조의 자산을 담보하기로 약정만 했지 실제 기업에 위험을 초래할 행위는 없었기 때문에 차입인수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신 회장은 검찰에 출두하면서도 “법적으로나 도의적으로나 조금도 하자가 없다고 확신한다”며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법리논쟁이 치열할 것으로 예상되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신 회장을 갑작스레 소환한 것은 세종시 수정안 발표와 연관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정부가 발표한 세종시 수정안에는 롯데그룹이 세종시에 6만 6000㎡의 땅에 연구소를 짓기로 돼있다. 애초 맥주공장 입주가 거론됐던 것과 비교하면 작은 규모다. 정부는 롯데가 제2 롯데월드 인허가나 롯데칠성 서초동 물류센터 부지의 상업용 지구 용도변경, 인천 계양구 골프장 건립 심의 통과 등과 같이 롯데그룹의 오랜 숙원 사업들을 현 정권에서 해결됐다는 이유를 들어 세종시 건설 과정에서 롯데 측에 보다 큰 ‘성의’를 기대했다고 한다. 애초 롯데의 세종시 맥주공장 건설도 정부 관계자를 통해 흘러나온 얘기라는 게 재계의 정설이다. 하지만 롯데그룹 내부 여건상 정부 측의 요구를 모두 들어주기에는 무리가 있었다고 한다. 정부는 막판까지도 롯데그룹이 더 많은 투자를 하길 원했지만 롯데는 더 이상은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세종시 논의 과정에서 정부가 롯데 측에 상당히 실망했고, 신준호 회장에 대한 수사도 이것과 연관돼 있을 것이란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롯데건설이 계양산 골프장 건설에 찬성한 시민단체에 기부금을 냈다는 의혹에 대해 경찰이 진정서 접수 하루 만에 발 빠르게 수사에 착수한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관측되고 있다.
하지만 롯데그룹 내부 사정에 밝은 인사들은 이러한 관측에 의견을 달리하고 있다. 친형제인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과 신준호 푸르밀 회장은 현재는 연락도 하지 않을 정도로 사이가 멀어진 상태기 때문이다. 두 사람이 갈라서게 된 사연은 지난 1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준호 회장은 자신이 10년 이상 맡아온 롯데건설의 자금유용 혐의로 1995년 말부터 그룹 내부감사를 받았다. 이듬해 2월에는 규모가 작은 롯데햄·우유 부회장으로 밀려났다. 두 사람의 갈등은 양평동 부지 소유권으로 인해 본격화됐다. 서울 양평동 소재 롯데제과 부지를 신격호 회장이 신준호 회장에게 명의신탁했는데 1996년 신준호 회장이 부지 소유권을 주장하면서 두 사람의 갈등의 골은 깊어졌다.
당시 재계에서는 두 사람의 재산권 분쟁이 롯데그룹 경영권 승계와 밀접한 연관이 있었던 것으로 분석했다. 신격호 회장이 한국 롯데의 경영권을 아들에게 물려주려는 움직임을 보인 데 대해 신준호 회장이 암묵적으로 반발하면서 형제간 갈등이 폭발했다는 것이다.
이후 신준호 회장은 롯데에서 밀려나 독자행보를 걷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롯데우유라는 브랜드를 버리고 ‘푸르밀’이라는 새로운 브랜드까지 출범시키며 롯데와의 인연을 끊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보이기도 했다. 신격호 회장도 두산 소주를 인수해 부산 소주 시장에 진출하면서 신준호 회장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이처럼 신격호 회장과 신준호 회장의 불편한 관계를 안다면 롯데를 압박하기 위해서 신준호 회장을 소환했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롯데그룹과 대선주조 측도 이번 검찰 수사는 신 회장의 개인적인 일이라며 선을 긋고 있다. 하지만 검찰 수사를 바라보는 범롯데가의 심경은 결코 편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