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하여 총대를 메는가’
▲ 서울 마포구 상암동에 위치한 박정희 기념사업회 부지. 자금 부족으로 수년간 사업 추진에 난항을 겪다 지난해 4월부터 다시 탄력이 붙기 시작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
전경련 측은 이번 모금 활동이 100% 자발적이라는 데 방점을 찍고 있으나 공문을 받은 기업들 사이에서는 모금 여부를 놓고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전경련은 지난 12월 중순 대기업과 4대 은행(KB 우리 신한 하나) 등을 대상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관 건립 추진에 필요한 돈을 모금해 달라’는 취지의 공문을 보냈다.
전경련이 보낸 공문은 최근 재개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박정희 기념관 건립에 필요한 총 700억여 원 중 부족한 300억~400억 원에 대한 대기업 측의 모금을 요청하고 있다. 전경련은 공문을 보내기 전 몇몇 기업 담당자들과 만나 이 같은 내용을 사전에 논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각 기업들에게 보낸 공문에 기업마다 모금액이 할당돼있고, 계좌번호까지 적시돼 있어 기업 입장에서는 사실상 거부하기가 쉽지 않은 성격의 모금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공문을 받은 재계 20위권 A 기업의 경우 10억 원이 모금액으로 정해져 있었다. 4개 은행에 할당된 금액도 10억 원이었다. B 기업의 관계자는 “재계 상위권 기업에는 더 많은 액수의 모금을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전경련 측에서 이처럼 구체적인 액수까지 적은 공문을 대기업에 내려 보내자 사전 논의에 참석하지 않은 기업들은 전경련 측의 ‘저의’ 파악에 나서기도 했다고 한다.
기업들은 내부 정보원들에게 모금과 관련한 정치적 의도는 없는지, 내지 않을 경우 불이익은 없는지 파악하도록 지시하는 등 분주한 움직임을 보였다고 한다. 가뜩이나 현 정권 들어서 자발적 모금 형태의 기금 출연이 늘어난 상황에서 이번 전경련의 모금 활동에 정부 측의 입김이 반영된 것은 아닌지에도 촉각을 곤두세웠다는 후문이다.
이와 관련 최근 기자와 만난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공문을 받고 담당자들 사이에서 별별 얘기가 다 나왔었다. ‘현 정부가 박근혜 전 대표를 달래기 위해 전경련을 통해 기념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전경련 수장이 대통령과 사돈이다 보니 전경련이 일종의 보험 들기 성격으로 돈을 모금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식의 말이 돌아 정보팀으로 하여금 모금의 성격에 대해 파악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공문이 내려온 지 얼마 후 정치권에서는 한창 ‘박정희 때리기’가 진행 중이어서 기업들이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상당히 난감해 했다”고 덧붙였다.
기업들이 청와대나 정치권 측과 접촉해 진상파악에 나선 결과 모금활동은 정치권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리면서 한숨을 돌렸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에 공문을 받은 대기업들 중 일부 기업들만 보수단체들과의 관계를 고려해 약간씩을 모금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논란에 대해 전경련 관계자는 “받아들이기에 따라 오해의 여지는 있지만 전경련은 회원사의 눈치를 보는 입장이기 때문에 모금을 강제적으로 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며 “결과적으로 내지 않은 기업도 있고, (전경련이) 이 기업들에 대해 제재하지도 않았고 제재할 이유도 없다”고 말했다. 또한 이 관계자는 “정치적인 문제를 떠나서 경제계에서 봤을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대한민국 경제를 일궈놓은 분인데 이런 분에 대한 기념관 하나 없는 것은 기업들 입장에서 봤을 때 무책임한 것 아니냐”고 설명하면서 “기업 측에서 오해의 여지가 없도록 의도를 충분히 설명했다”고 강조했다.
전경련이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사업관과 관련해 구설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전경련은 박정희 기념사업관 건립 추진 초기에도 거액을 희사한 바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기념사업관은 지난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보수층의 지지를 이끌어 내기 위한 공약으로 내걸면서 사업이 시작됐다. 당시 김대중 후보는 대선을 보름 앞둔 12월 5일 경북 구미시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 박 전 대통령의 업적을 칭송하고 기념관 건립을 약속한 바 있다. 이후 김대중 정부 2년차였던 1999년 7월, 사단법인 ‘박정희 대통령 기념사업회’가 정식 발족되면서 사업에 탄력이 붙었다.
초대 명예회장에는 당시 김대중 대통령이 추대되었고, 회장에는 신현확 전 국무총리가 선임됐다. 부회장에는 각 당을 대표해 당시 권노갑 국민회의 고문, 김용환 자민련 의원, 박근혜 한나라당 부총재가 추대됐다. 사업비 709억 원 가운데 기부금 500억 원을 뺀 나머지를 국고로 충당하기로 했다. 단, 사업 추진이 부진하거나 정해진 기부금을 조달하지 못하면 국고보조금 교부 결정을 취소할 수 있다는 단서조항이 붙었다.
이후 ‘박정희 기념사업회’가 4년 동안 기부금을 100억 원밖에 모으지 못하자 정부는 단서조항을 근거로 2005년 3월 국고보조금 교부 결정을 취소했다. 게다가 기념사업회가 모금한 100억 원 중에 개인모금액은 12억 원에 불과했고 전경련이 50억 원, 대한상의가 10억 원 등 경제단체 및 기업 등의 모금액이 대다수였다.
기념사업회는 정부의 이 같은 결정에 반발해 취소처분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행정법원은 2006년 1월 기념사업회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정부가 ‘박정희 기념관 건립’ 사업에 209억 원의 국고보조금을 주지 않기로 한 것은 재량권 남용이자 행정의 신뢰보호 원칙에 어긋나 위법이므로 취소돼야 한다”고 판결했다. 지난해 4월 대법원도 역시 기념사업회 측에 승소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의 확정 판결로 ‘박정희 기념사업관 건립’ 사업에 다시 탄력이 붙기 시작했고, 사업을 사실상 전경련이 주도하는 모양새가 됐다.
이번 사태를 지켜 본 기업의 한 관계자는 “전경련이 내려 보낸 공문 한 장에 기업들이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을 보면 현 정권 내에서의 전경련의 위상이나 정부를 바라보는 기업들의 시각이 어떠한지를 잘 보여주는 해프닝”이라고 말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