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의 올림픽 합류 ‘뒤에서 팍팍’
▲ 2003년 필자가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이름으로 스페인 카를로스 국왕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 ||
후안 카를로스 국왕은 군사쿠데타로 축출된 그리스 국왕 콘스탄틴(IOC 명예위원)의 누이동생 소피아와 결혼했고 왕세자와 두 공주를 슬하에 두고 있었다. 처음 만날 당시에도 그는 태권도와 가라테를 무척 좋아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이무렵 유럽에서는 가라테가 태권도보다 더 알려져 있었고 그 두 가지를 혼동하곤 했다. 실제로 당시 해외의 한국 태권도 사범들은 가라테 간판을 걸어 놓고 도장을 운영하기도 했다.
이때 서울올림픽 조직위원회는 여러 가지 난제에 처해 있었다. 일단 미국 NBC방송과의 TV방영권 협상이 난항에 부딪혀 있었고, 또 집행위원장 이영호 체육장관이 몇몇 나라와 체육장관회의를 만들어 “IOC가 무어냐, 각국 체육장관이 진짜”라는 비현실적인 소리를 하면서 IOC에 대항하기도 했다. 당연히 IOC와 서울올림픽 조직위 사이가 아주 나빴다. 두 조직 사이의 불신과 불협화음을 해소하지 않으면 올림픽 준비에 큰 어려움을 겪을 판국이었다.
그래서 사마란치를 만나 NBC TV방영권 문제도 협의하고 오해도 풀기 위해 연락을 취했더니 마드리드로 오라고 했다. 나는 단신으로 마드리드로 향했다. 마드리드는 개인적으로 1975년 스페인 유도협회(이때 태권도는 유도협회 산하였다)의 안토니오 가르시아 회장이 태권도 사범을 규제해 한인사범들이 전부 쫓겨나게 되었다고 해 만나러 간 적이 있긴 하지만 내겐 아직 낯선 곳이었다.
마드리드에 도착하니 호텔에 메시지가 와 있었다. 빨리 시내에 가서 턱시도를 구해 입고 8시까지 왕궁만찬에 나오라는 것이었다. 턱시도를 살 수는 없고 옷과 구두가 흑색이라 와이셔츠 보타이 허리띠 등을 사서 대충 맞춰 입고 왕궁에 갔다.
이때 바르셀로나는 이미 다음해인 1986년 IOC 총회에서 결정될 1992년 올림픽 개최지로 입후보하여 운동 중이었다. 이런 맥락에서 사마란치, 마리오 바스케스 라냐(멕시코) 등 체육지도자들을 대신들과 함께 만찬에 초대했는데 나도 포함된 것이다. 메뉴는 꿩고기 요리였다. 만찬이 끝난 후 사마란치가 나를 왕에게 각별히 소개했다. 사마란치는 나에 대해 서울올림픽 유치의 주역이고 세계태권도연맹을 만든 사람으로 고단자라고 설명했다. 또, 왕도 태권도와 가라테도 조금하니 왕과 나한테 겨루기를 해보라고 하기도 했다. 그래서 왕과 내가 겨루기 폼을 잡으니 사방에서 웃음들이 터져 나왔다. 왕과 왕비가 상당히 소탈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후 1986년 10월 스위스 로잔 IOC총회에서 파리 암스테르담 등을 물리치고 바르셀로나가 1992년 올림픽 개최권을 따냈다. 콜럼버스 500주년을 기념하고 스페인의 문화를 전 세계에 자랑하는 올림픽이 열리게 된 것이다. 현재 바르셀로나는 2022년 동계올림픽 유치 의사를 표시하고 있다. 독일의 뮌헨이 2018년 동계올림픽(평창의 3수 도전 무대)을 유치해 사상 최초의 동·하계올림픽을 치른 도시가 되겠다는 꿈을 뒤쫓고 있는 것이다.
바르셀로나는 1988년 서울올림픽 때 많은 능력과 경험을 축적하기 위해 임원을 200명이나 보냈다. 워낙에 마드리드 왕궁이 올림픽과 스포츠를 좋아하고 또 태권도 등 무도에 애착이 강한 까닭에 이러한 카를로스 국왕과의 만남은 나중에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태권도가 이례적인 제3의 시범종목으로 채택되고, 나아가 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이후 필자는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조정위원(Coordination Commission)으로 스페인을 자주 방문하면서 평민과 늘 함께하는 왕과 왕비를 여러 번 만나게 됐다. 마드리드 왕궁은 서울올림픽 때 우리가 바르셀로나를 위해 협조와 후대를 아끼지 않은 것에 대해 크게 고마워했다.
사마란치는 늘 스페인 왕실과의 모임에 나를 참석하게 해주었다. 개인적으로 이런 모든 일련의 과정이 한-스페인 관계와 올림픽 외교에 이득이 됐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올림픽 때문에 바르셀로나에 한국총영사관이 서게 됐는데 올림픽 이후 폐쇄한다고 한 적이 있는데, 사마란치가 요청해 1년간 더 연장됐고 삼성도 가전제품 공장을 세우기도 했다. 또 스페인이 제작한 공군 수송기도 한국이 산 것으로 안다.
서울올림픽에는 당초 카를로스 국왕이 올 예정이었지만 사정상 오지 못했고, 대신 왕비와 왕세자가 2주일 동안 신라호텔에서 시종 및 경호관들과 함께 유숙했다. 부산에서 열린 요트경기에 공주가 선수로 참가하기도 했다. 당시 왕비와 공주의 부산 왕래에는 청와대가 전용기를 내주었다.
왕비와 왕세자가 묵을 방이 마땅치 않았는데 당시 나는 사무실로 쓸 겸 해서 큰 방을 준비해 놓았다. 사마란치가 고심하다 못해 “보통 방 두 개를 줄 터이니 당신 방을 왕비에게 양보할 수 없느겠냐?”고 전화를 해왔다. 물론 나는 기꺼이 받아들였고 서울올림픽 당시 호텔의 같은 층을 사용하게 돼 매일 출입하며 자주 마주치곤 했다.
▲ (위 왼쪽부터)바르셀로나올림픽 태권도 경기에 참관한 사라트 스페인 위원, 필자, 카를로스 국왕 모습. 아래 사진은 국왕이 필자에게 스페인 훈장을 수여하는 모습. | ||
참고로 보르본 공주가 IOC 위원이 되기 전에 사마란치가 정색을 하고 나에게 따져 물은 적이 잇다. “당신이 보르본한테 IOC 위원이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적이 없기 때문에 “모르는 얘기”라고 했는데 결국 1996년 보르본 공주는 IF(국제경기단체) 몫으로 IOC 위원이 됐다. 내가 자신이 믿는 확실한 참모임에도 불구하고 사마란치는 (자신이 모르게 일이 추진되는 것이) 걸리면 용서 없이 통제한다. 나를 통해서 보르본 공주의 압력을 물리친 것 같다.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카를로스 국왕은 사마란치, 사라트 스페인 IOC 위원과 함께 셔츠 바람으로 태권도 경기장(시범경기)에 와서 나란히 앉아 관람하기도 했다. 폐회식 직전에는 별궁에 IOC 집행위원들을 불러 직접 훈장을 수여하고 리셉션을 열기도 했다. 훈장은 스페인과의 스포츠 교류와 올림픽 성공에 대한 포상이었다. 생각해보니 필자는 카를로스 국왕으로부터 스페인 훈장을 두 번 받았다. 그리고 필자도 IOC 집행위원회-국제연맹 연석회의가 마드리드에서 열렸던 2003년 마드리드 교외 하궁에서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이름으로 왕에게 커다란 감사패를 전한 바 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폐회식 직전에 이렇게 리셉션 및 훈장 수여식을 마쳤고 버스로 폐회식장으로 가는데 황영조가 마라톤에서 1, 2위로 달리며 금메달을 다투고 있다는 놀라운 소식이 들어왔다. 스페인 왕비와 왕세자는 이 날도 반가이 맞아줬다. 이미 IOC 부위원장이 되어 있던 나는 카를로스 국왕, 사마란치 등과 함께 본부석 안에서 황영조가 가장 먼저 골인하는 장면을 지켜봤다. 정말 감동적이었다. 1936년 손기정의 마라톤 우승으로부터 56년 만에 몬주익 주경기장 트랙을 한 바퀴 돌면서 1등으로 골인한 것이다. 이에 대부분의 올림픽 관계자들이 황영조에 대한 시상을 사마란치와 필자가 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사마란치는 네비올로 세계육상연맹 회장과 함께 나갔고 나에게는 요청이 없었다. 바르셀로나 올림픽은 첫 금메달(사격)과 마지막 금메달(남자 마라톤)을 모두 한국이 차지했다. 금메달 12개로 7위였다. 카를로스 국왕 등 스페인 사람들은 하나같이 한국의 상승하는 국력을 인정했다.
94년 릴레함메르 동계올림픽에도 카를로스 국왕과 왕비, 그리고 공주가 직접 와서 릴레함메르 호텔에 묵었다. 왕의 만찬에는 대신들 몇 명과 가족, 사마란치 내외가 참석했는데 외국인으로는 유일하게 필자 내외가 초청됐다. 당시 사마란치는 내게 “초청된 이유(Why)를 알지?”라고 말했는데 아직까지도 그 이유를 알 듯 모를 듯하다. 개인적으로 놀란 것은 신하들이 국왕과 같은 식탁에서 담배를 피우고 사담을 하고 자유롭게 행동한다는 것이었다. 이때 사마란치 부인이 내 아내 옆에 앉았는데 왕비 옷과 아내 옷이 똑같다고 했다. 가만히 보니 색깔만 다르지 같은 회사 제품이었다. 왕비가 그만큼 평민적이었던 것이다.
카를로스 국왕과 소피아 왕비는 나가노, 애틀랜타, 시드니 올림픽에 계속 참석해 스페인팀을 격려했다. 입장식 때 스페인팀이 들어오면 일어서서 손을 흔든다. 95년 IOC박물관 개관식에도 왕비는 우리와 함께 참석했다. 평민적이면서도 국민 통합을 위해서는 발품을 아끼지 않았다.
1994년 파리 IOC 총회 때(IOC 100주년 기념) 스페인 사범들이 자비로 파리에 몰려와 나를 보호했다. 앞서 잠깐 언급했지만 1975년 마드리드로 가 안토니오 가르시아 데라프엔태 회장(세계유도연맹 사무총장)을 만나 한국사범의 스페인 체류 문제를 해결한 적이 있다. 그 덕에 1975년 몬트리올 GAISF 총회에서 파마 유도연맹 회장이 태권도가 가라테의 지류라고 가입을 반대할 때 스페인 회장은 ‘가라테는 가라테고 태권도는 태권도’라고 역설하며 우리 편을 들어주었고 1976년에 바르셀로나에서 유럽태권도연맹과 제1회 유럽태권도선수권대회를 창설하게 하여 유럽지역 태권도 보급의 중심이 된다.
2003년 마드리드에서 IOC-IF 연석회의와 스포츠어코드회의가 있어 나는 GAISF 회장과 스포츠어코드 창설회장으로 참석했다. 내가 GAISF와 스포츠어코드 회장을 물러난 후 페아브르겐 부회장이 회장을 대행하면서 GAISF를 없애고 스포츠어코드 회장으로 안착했다. 이때 김진선 강원도지사와 이창동 문화장관, 공노명 유치위원장 등도 초청되었다. 평창이 IOC 집행위원회에 보고하는데 대기실이 없어 내가 쓰던 GAISF 회장실을 내주기도 했다. 다음날 GAISF 총회 개회식을 로게와 내가 주재했는데 한국 VIP들은 보이지 않았다. 이때 카를로스 국왕이 하궁에서 IOC 집행위원들을 초청해서 오찬을 베풀었고 이 자리에서 내가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이름으로 감사패를 전달한 것이다. 태권도가 바르셀로나올림픽 시범종목,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 등 고독하고 힘들었던 긴 여정을 겪을 때 카를로스 국왕이 도와준 데에 대한 감사의 표시였다.
마드리드는 카를로스 국왕이 앞장서 2012년 하계올림픽 유치전에 나갔지만 2005년 싱가포르 총회에서 런던에 패했다. 그리스의 니콜라우 위원이 컴퓨터 버튼을 잘못 눌러 마드리드가 도중에 떨어졌다고 질라디 위원이 (이스라엘) 언론에 보도했다. 또 2009년 10월 열린 2016년 하계올림픽 유치에서도 국왕이 나서서 사마란치의 지원하에 재도전했지만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에 패했다.
나중에 들으니 카를로스 국왕은 경쟁도시인 일본의 도쿄를 방문하고 또 마드리드가 안 될 때는 리우를 지원하라고 발언했다고 한다(결국 리우가 2016 개최권을 따내 올림픽이 최초로 남미대륙에서 열리게 됐다). 사마란치 IOC 위원장의 탄생, 바르셀로나 올림픽, 그리고 태권도의 올림픽 정식종목 채택 등 따지고 보면 스페인 왕실의 절대적인 지원이 없었다면 이뤄지지 않았을 일들이 참 많았던 것 같다.
전 IOC 수석부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