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 살려준다’는 기가 막힌 상술 시끌
인천남동경찰서는 이 카드에 실제로 ‘기’가 있는지 여부를 놓고 지난 8개월간 화진화장품 측과 지리한 힘겨루기를 전개해 왔다. 취재결과 인천남동경찰서는 지난 3월 8일 위 사건을 인천지방검찰청으로 송치한 것으로 확인됐다. 화진화장품 CEO로 성공신화를 써내려가던 강 회장이 120억 원대 사기 사건에 휘말린 내막을 자세히 들여다 봤다.
17대 대통령선거에서 고배를 마신 허경영 씨가 지난해 8월 디지털 싱글앨범 ‘콜미(Call me)’를 발매해 세인들의 관심을 유도한 바 있었다. 이 곡에는 “내 눈을 바라봐 넌 건강해지고, 허경영을 불러봐 넌 시험 합격해”라는 다소 황당한 가사들이 포함돼 있었다. 한 방송사는 ‘콜미’ 노래를 듣기 전과 후를 비교해 ‘허경영 효과’의 실체를 밝히기도 했다. 화장품 업계에선 화진화장품 강현송 회장의 ‘일복 효과’가 ‘허경영 효과’보다 더 유명세를 치렀다.
중학교 졸업 후 단돈 3000원을 들고 사업에 뛰어든 강 회장은 25년 만에 방문판매 화장품 업계의 선두주자로 우뚝 섰다. 막노동, 택시기사, 사진사, 오징어잡이 등 37가지가 넘는 직업 경험을 바탕으로 그는 “일에 몰두하면 저절로 행복해진다”는 일복 원리를 통한 성공법칙을 정립했다. 그는 또한 여성 인력을 잘 활용해 IMF 경제 위기를 3개월여 만에 극복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2년에 대통령 표창을 받기도 했다. 그 이후 강 회장은 ‘국민일복운동본부’를 출범하는 등 일복정신을 추구하는 일복운동에 앞장섰다.
그러나 그의 일복운동은 점차 잘못된 방향으로 전개되기 시작했다. 그의 지나친 일복정신 교육을 받은 중년 여성들이 승진을 위해 무리하게 주변 사람들을 끌어들이다가 신용불량자로 전락하는가 하면 가정파탄에 심지어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사례까지 발생했다. 결국 강 회장은 피해자대책위원회의 고소로 2004년 11월 26일 방문판매법 위반(불법 다단계 판매조직 관리·운영) 및 조세범처벌법 위반(사업소득세 14억 원을 포탈) 혐의로 벌금 1억 원을 선고받았다. 이 사건으로 ‘엄격한 품질관리로 최상의 제품만을 판매한다’는 신뢰 경영을 강조했던 화진화장품의 이미지는 땅으로 추락했다.
등 돌린 소비자를 향해 뻗은 강 회장의 회심의 카드는 바로 ‘기 카드’였다. 화진화장품은 424원짜리 보통 PVC카드를 장당 5만~580만 원짜리 부적으로 둔갑시켰다. 카드를 가지고 있으면 수맥, 전자파가 차단되고 앓던 병이 낫는다고 광고했다. 더 나아가 카드를 많이 살수록 취업에 성공하고 사업이 번창할 확률이 높아진다며 소비자들의 기대심리를 자극했다.
화진화장품은 고가의 화장품을 구입한 고객에게 기 카드를 증정하거나 카드 다량 구매 시 효과가 극대화된다고 광고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경찰에 따르면 화진 측은 지난 1년 남짓한 기간 동안에 전국 2만 3372명을 상대로 15만 5700여 장의 기 카드를 판매, 120억여 원의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카드를 구입한 사람들 대부분이 회사 내부 관계자였다는 사실도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3월 8일 기자와 만난 인천남동경찰서 관계자는 “직원들이 회사 내부 실적을 쌓아 승진하기 위해 대부분의 카드를 구입했다”고 말했다.
화진화장품은 카드의 효능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를 철저히 준비한 것으로 알려졌다. C 대학 기계공학과 교수로부터 기 카드의 효능을 입증할 수 있는 실험자료를 받았고, 카드를 통해 효과를 봤다는 300여 명의 서명 자료를 첨부해 경찰에 제출하기도 했다.
경찰은 이에 대응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감정을 의뢰했다. 그 결과 하수도관이나 플라스틱 관에 쓰이는 일반 PVC카드로 화진 측이 주장하는 효능은 터무니없는 것으로 판명됐다. 게다가 효과를 봤다고 서명한 300여 명은 대부분이 내부 직원인 것으로 밝혀져 자료의 신빙성도 떨어졌다.
경찰 관계자는 “실제 카드 효능을 알아보려고 수맥 전문가를 데려와 시험을 해봤지만 별다른 변화를 발견할 수 없었다”면서 “화진 측이 주장한 기 카드의 효능이 진짜라면 압수한 수만 장의 기 카드를 보관했던 압류 창고 주인이 임대료도 못 내고 있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수사 과정에서 있었던 에피소드를 전하기도 했다.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은 강 회장이 신분이 확실하고 도주할 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돼 불구속 수사가 진행돼 왔다. 그 후 경찰은 수사를 마무리 하고 강 회장 외 40여 명을 사기 혐의로 3월 8일 인천지방검찰에 송치했다. 담당 검사는 9일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인천지검으로 송치된 게 맞다. 현재 수사 중이라 자세한 과정은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기자는 9일 고객의 입장에서 화진화장품에 연락해 ‘기 카드를 구입할 수 있느냐’고 물었지만 화진 측은 “판매하고 있지 않다”고 답변했다. 기자가 ‘이미 구입한 카드를 환불하고 싶다’고 말하자 “판매한 영업점의 담당 직원에게 직접 연락을 취해 환불하면 된다”는 답변을 들었다.
3월 12일 기자와 만난 화진화장품 관계자는 “기 카드는 애초에 내부 직원에게 판매할 생각으로 만들었다. 효능을 본 직원이 외부로 판매하고 싶단 뜻을 밝혀 공식적으로 팔게 된 것”이라며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경찰이 죄명을 기존보다 완화해서 검찰에 넘긴 것으로 들었다. 실제 효과를 본 사람들의 서명을 받았고 대학 연구팀을 통해 효능을 입증할 수 있는 자료도 제출했다”고 말했다. 또한 “환불을 원하는 소비자 모두에게 환불조치를 해줬다. 무죄로 판명되더라도 기 카드는 앞으로 판매하지 않을 생각이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유진 기자 kkyy122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