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서 벌고 부동산서 까먹었다
주목할 점은 재테크 수법과 자산유형에 따라 공직자들의 희비가 크게 엇갈렸다는 사실이다. 재산을 크게 불린 공직자들은 펀드나 증권 평가액의 상승에 따른 경우가 가장 많았다. 반면 땅이나 아파트, 건물 등 부동산에 주력한 공직자들은 부동산 침체에 따른 공시지가 하락으로 인해 남몰래 쓴 눈물을 삼켜야 했다. 고위공직자들의 재산공개에서 드러난 재테크 성적표를 들여다봤다.
고위공직자의 재테크 비법 1위는 단연 주식과 펀드였다. 지난해 1년간 코스피지수가 45% 포인트 급등하는 등 증시가 활황을 보였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고위공직자 중 최고 주식부자로 꼽히는 인물은 오거돈 한국해양대학교 총장이다. 오 총장의 재산은 총 142억 3111만 원으로 드러났는데, 대한제강 주식 상승에 힘입어 종전 130억 2736만 원에 비해 12억 373만 원이 늘었다.
121억 6563만 원을 신고한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해에 이어 최고 부호장관의 자리를 지켰다. 유 장관은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공시가격이 2억 1600만 원 내리는 등 부동산에서는 쓴맛을 봤지만 펀드 평가액 상승 등에 힘입어 불황에도 4억 8723만 원의 재산을 불렸다.
삼성전자 3576주를 보유한 김기수 전 대통령비서관은 1년새 12억 5000만 원의 평가수익을 내는 기염을 토했다. 농식품부 고위공직자 가운데 자산가 1위에 오른 이종구 수산협동중앙회 회장(99억 5900만 원)도 주가 상승에 힘입어 쏠쏠한 재미를 봤다.
지식경제부 산하 기관장 중 가장 많은 재산을 보유한 김쌍수 한국전력 사장의 재산은 108억 873만 원으로 지난해보다 15억 6425만 원이 증가했다. 김 사장 역시 주식 등 유가증권 평가액이 26억 8487만 원에서 41억 3962만 원으로 늘어난 것이 재산 증식에 일조했다.
유재섭 산업인력공단 이사장은 배우자와 아들들이 보유한 주식 가액이 6853만 원에서 1억 2138만 원으로 77.12%나 증가하면서 가족 재테크에 성공했다. 문태영 외교통상부 본부대사는 주식매도 후 예금으로 갈아탄 케이스. 펀드 상승에 힘입어 1년 사이 예금액이 13억 6100만 원에서 32억 1900만 원으로 훌쩍 뛰면서 놀라운 재테크 실력을 보여줬다.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은 보유주식 가치가 4억 4500만 원에서 6억 5800만 원으로 상승하고, 펀드 등 평가액 상승과 예금이자 증가로 인해 예금액이 33억 4800만 원에서 41억 7800만 원으로 오르면서 자산가 대열에 당당히 이름을 올렸다.
류철호 한국도로공사 사장은 경기도 용인시 수지구에 소재한 아파트 가격이 1억 2800만 원 떨어졌지만 주식으로 18억 2100만 원의 수익을 올려 재산을 지켰다.
이기권 서울지방노동위원회 위원장은 펀드로 쏠쏠한 재미를 봤다. 부인의 주식을 매각하고 펀드에 가입한 이 위원장의 예금은 지난해 2억 9310만 원에서 4억 7435만 원으로 61.84%나 늘었다. 32억 5579만 원을 보유한 정승일 지역난방공사 사장도 펀드 자산 증가분이 3억 4360만 원에서 5억 641만 원으로 늘어나면서 자산가에 이름을 올렸다.
사재의 상당부분을 청계재단에 출연하면서 지난해보다 307억 원이나 감소한 49억 원을 신고한 이명박 대통령도 펀드에서는 제법 재미를 봤다. 이 대통령이 2008년 12월 9일 적립식으로 가입한 것으로 알려진 교보악사파워인덱스파생상품과 기은SG그랑프리KRX100인덱스 펀드의 누적수익률이 올 3월 9일 기준으로 각각 21%를 기록했다.
서울시 고위공무원 중에는 오세훈 시장의 재산(55억 9000여만 원)이 1년 전보다 2억 4000여 만 원이 증가했다. 두산엔진과 동부메탈 등 회사채 자산은 3억 1000여 만 원 늘었으나 오 시장 본인과 배우자, 아버지 명의의 부동산 평가액은 1억 3000여 만 원 떨어졌다.
권영규 경영기획실장(29억 6000여 만 원)은 새로 가입한 수익증권이 1억 5000여 만 원의 이익을 내면서 1년새 1억 1000여 만 원의 재산을 불렸다. 용산구 아파트를 처분해 저축과 펀드, 보험에 분산 예금한 조은희 여성가족정책관의 재산은 1년 만에 4억 7000여만 원이 증가했다.
급여저축으로 재산을 지킨 ‘성실파’도 있다. 이채욱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은 급여저축과 이자소득으로 16억 7000만 원이던 예금액을 19억 3000만 원으로 불렸다. 임관빈 육군참모총장도 급여저축으로 1억 2000만 원을 늘렸다. 20억 9169만여 원을 신고한 진동수 금융위원장도 저축을 통해 지난해보다 7166만여 원을 늘렸다.
이처럼 주식과 펀드로 흐뭇한 미소를 지은 고위공직자들과는 달리 적잖은 고위공직자들은 부동산 때문에 낭패를 본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고위공직자 재산 감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경기 침체로 인한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나타났다.
78억 4028만 원을 신고해 청와대 참모진 중 최고 재산가로 이름을 올린 김은혜 청와대 대변인의 재산은 배우자 명의의 대치동 빌딩이 18억 7000만 원 하락함에 따라 전년보다 14억 922만 원이 줄었다.
민유성 산은금융지주 대표도 대치동 아파트 평가액이 크게 떨어지면서 1년 새 재산이 11억 706만 원 감소했다. 주강수 가스공사 사장은 본인소유 아파트 등의 공시지가변동과 시세하락으로 재산이 4억 원가량 준 40억 6695만 원을 신고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의 재산은 지난해 21억 8238만 원에서 올해 19억 9470만 원으로 1억 8768만 원이 줄었다. 도곡동 아파트 가격이 8800만 원 떨어지는 등 소유 부동산 가격이 하락했기 때문이다. 이용걸 제2차관도 보유한 전답과 아파트 가격이 떨어지면서 재산이 38억 5714만 원에서 35억 2883만 원으로 3억 2831만 원 감소했다.
백용호 국세청장도 아파트 가격과 골프 회원권 가격 하락으로 인해 재산이 32억 6642만 원에서 29억 8389만 원으로 3억 252만 원이 줄었다. 신제윤 재정부 국제업무관리관과 김교식 전 기획조정실장도 아파트 가격 하락에 따라 각각 2억 476만 원과 6억 3627만 원의 재산손실을 감내해야 했다.
김황식 감사원장(10억 8952만 원)의 재산도 반포 아파트 등 부동산 하락에 따라 지난해보다 1억 3640만 원이 줄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