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합도 안맞는데 결혼? “우린 반댈세!”
한라비스테온공조가 사모펀드에 매각된다는 소식에 주거래처인 현대자동차는 품질저하, 기술유출 등을 우려하고 있다. 왼쪽은 현대자동차 빌딩 전경. 오른쪽은 한라비스테온공조 홈페이지 화면 캡처. 최준필 기자
자동차 부품업계와 사모펀드, 두 업계는 속성상 서로 맞지 않는다는 것이 자동차업계 일부의 의견이다. 자동차 부품은 끊임없이 연구개발이 이뤄져야 하는 분야고 그만큼 시설투자도 계속돼야 한다. 완성차에 필요한 3만여 가지 부품 중 하나만 잘못돼도 차에 이상이 생긴다. 만약 리콜 사태라도 발생한다면 해당 차량이 수백만 대에 이르기 때문에 피해는 상상을 초월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현대·기아차는 물론 도요타, 혼다 등 유명 완성차 회사들이 수백만 대를 리콜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반면 사모펀드는 기본적으로 기업 인수·매각 등을 통해 수익을 낸다. 또 한 기업을 인수할 경우 인수 자금을 대부분 펀드나 인수금융을 조달해 마련하는 탓에 인수 후 금융비용이 상당하다. 단기투기자본으로 분류되는 사모펀드는 전략적·재무적 투자자들을 모집하거나 금융권으로부터 막대한 인수금융을 조달, 기업 인수 후 가치를 높여 다시 매각해 이익을 챙긴다. 투자자들을 모으고 인수금융을 조달하기 위해 그들을 유인할 만한 ‘사탕’을 줘야 하는데, 고배당·고금리 등이 이에 해당한다.
현대차가 한앤컴퍼니의 한라비스테온공조 인수를 언짢아해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막대한 인수금융을 조달해 한라비스테온공조를 인수한 후 고배당·고금리 등으로 자금이 자꾸 빠져나가면 그만큼 기술개발비·시설투자비 등에 소홀할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또 사모펀드 속성상 인수 몇 년 후엔 매각할 텐데 외국 업체에 매각한다면 기술 유출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대·기아차는 자동차공조장치 60%를 한라비스테온공조에서 받는다. 한라비스테온공조의 매출 중 현대·기아차가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에 가깝다.
한라비스테온공조 인수가격 3조 9400억 원은 지난 11월 말 삼성이 한화에 4개 계열사를 매각하면서 책정된 1조 9000억 원의 2배가 넘는 액수다. 한앤컴퍼니는 여기에 2조 9000억 원가량을 투입할 예정이다. 자체자금은 4500억 원이고 나머지 2조 4500억 원가량은 펀드출자자금과 인수금융으로 충당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11월 삼성과 한화 간 거래는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 간 최대 빅딜로 불렸을 정도다. 이번 딜의 규모는 이보다 2배 많을 뿐 아니라 한앤컴퍼니는 대부분 자금을 외부 자금으로 채울 계획이다. 게다가 훗날 매각 시 이만한 덩치의 회사를 인수할 수 있는 곳은 사실상 중국 업체밖에 없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현대차가 우려할 만한 상황이다.
매출 중 절반을 현대·기아차가 차지하는 상황에서 한앤컴퍼니가 현대차의 불만을 무시할 수는 없다. 현대차의 거센 반발에 한앤컴퍼니는 “중국 업체에 매각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며 국민연금을 투자자로 참여시키는 방안을 모색하기도 했다. 국민연금을 파트너로 삼는다면 기술유출이 우려되는 중국업체로의 매각은 차단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 참여는 불발됐지만 한앤컴퍼니는 한국타이어를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한국타이어에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해 훗날 재매각 시 한국타이어와 먼저 매각 협상을 진행하겠다는 뜻도 내비쳤다. 중국 업체에 매각할 수 있다는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한 장치다. 그러나 재계 관계자는 “가격이 맞아야 우선매수청구권도 행사할 수 있는 것”이라며 “사모펀드가 주도하는 M&A(인수·합병)에서 우선매수청구권을 보유하고 있는 쪽이 인수한 예를 찾아보기 힘들다”고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한앤컴퍼니가 한국타이어와 함께 주식매매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이 전해졌음에도 현대차는 여전히 인상을 찌푸리고 있다. 비록 한국타이어가 컨소시엄에 참여했지만 1대주주가 사모펀드라는 데는 변함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현대차 관계자는 “우리가 매각과 인수 자체에 대해 왈가왈부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며 “다만 인수 주체가 사모펀드여서 발생하는 우려가 잔존하는 한 이를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방안을 강구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 주변에서는 벌써 여러 가지 방안이 나오고 있다. 한라비스테온공조의 물량을 줄이는 것은 물론 협력회사를 일본 덴소 등 다른 업체로 바꿀 수도 있고, 만도 등 부품회사와 합작해 공조장치 사업을 시작할 수도 있으며, 현대차가 아예 직접 공조장치사업에 뛰어들 수도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그렇다면 현대차는 왜 한라비스테온공조를 직접 인수할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60%를 공급받고 있을 정도라면 아예 직접 챙기는 게 속 시원할 수 있다. 현대차 관계자는 “협력업체가 수만 곳인데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인수하면 말이 되느냐”면서 “완성차업체에서 모든 걸 다 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