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낡은 잣대’ 아직도 쓸모 있나요?
간통죄의 경우 직접적인 ‘성교’가 있어야만 처벌이 가능한데, 은밀히 이뤄지는 간통의 특성상 현장을 덮치지 않고서는 증거를 확보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뿐만 아니라 현장을 덮쳤다가 증거를 잡지 못하면 ‘사생활 침해’로 오히려 고소를 당할 수도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한포털사이트 상담글로 올라온 내용이다. 이 게시판에는 이런 비슷한 글들이 넘쳐난다. 답변에는 온갖 이혼전문 변호사 등이 몰려 구체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위자료 액수를 알려주고 있다. 실제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이들이 밝히는 ‘시세’는 바람 핀 남편에게서 받을 수 있는 위자료는 통상 2000만~3000만 원선이다.
글을 올리는 사람들은 대체로 배우자에 대한 배신감을 토로하면서도 마지막에는 구체적으로 받을 수 있는 위자료 액수를 묻는다. 가정법원이 위치한 양재동 주변에서는 노골적으로 ‘간통 소송, 독보적 승소율’을 홍보하는 로펌들이 넘쳐나고 있다. 간통죄가 위자료를 뽑아내는 수단으로 전락한 것 아니냐는 우려는 우리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간통죄를 더 이상 처벌할 필요가 없다는 무용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내년 상반기 중 결정할 듯
지금껏 4차례의 위헌 여부 판단에서 모두 살아남았던 간통죄가 ‘이번에도’ 살아남게 될까. 통합진보당의 정당해산 심판이라는 사상 초유의 결정을 마친 헌재가 올해 또 한번 논란의 결정을 앞두고 있다. 법조계에 따르면 다섯 번째로 간통죄에 대한 위헌법률심판 사건을 심리하고 있는 헌법재판소는 이르면 2015년 상반기 간통죄에 대한 위헌 여부 판단을 마무리 지을 전망이다. 내부적으로 결론을 도출할 만한 의견조율이 끝난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이 상당한 문제인 만큼 재판관들마다 이미 개인적인 결론은 내려놓은 상태라고 한다. 통진당 해산 심판 때문에 2014년 사건을 처리하기 어려웠을 뿐이다.
간통죄는 혼인한 일방이 다른 이성과 성관계를 갖는 범죄다. 범죄이긴 하지만 피해자의 처벌 의사가 있어야만 처벌이 가능한 대표적인 친고죄 중 하나다. 간통죄로 고소하는 순간 이혼소송도 함께 제기돼야 한다. 건전한 성 문화 정착과 함께 결혼 제도의 존치를 위한다는 이유로 계속 시행되고는 있지만 해외 여러 선진국에서는 사라진 지 상당히 오래인 조항이다. 사회적 의식 수준이 높아지면서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간통죄를 폐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헌재는 지금까지 총 네 차례에 걸쳐 이 조항의 위헌 여부를 판단했다. 처음 이 조항이 심판대에 올랐던 1990년과 1993년에는 재판관 9명 중 ‘위헌’이 3명, ‘합헌’이 6명이었다. 2001년에는 간통죄 존속 분위기가 더 강해지면서 찬반 비율이 1(위헌) 대 8(합헌)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간통죄는 상당한 중죄로 처벌받을 때였다. 간통죄를 저지르면 거의 무조건 구속수사를 받았다.
“국가가 성적 자기결정권까지 침해하면 안된다”는 분위기가 서서히 확산되면서 2008년 네 번째 위헌법률심판에서는 처음으로 위헌 의견이 합헌 의견을 넘어섰다. 이때는 5(위헌) 대 4(합헌)로 위헌 의견이 더 많았지만 아쉽게 위헌 결정에는 미치지 못했다. 헌재의 위헌 결정은 9명 중 3분의 2인 6명이 동의해야 한다. 한 명이 부족했다. 이런 산고의 고통을 거치면서 법조계에서는 이제는 간통죄의 위헌 결정이 임박했다고 보는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 거의 무조건 구속수사하던 관행도 지나서 이제는 간통죄가 크게 처벌받지도 않는 분위기다.
다수의 법조인들은 “민사소송으로 해결하는 것이 충분하다”고 의견을 모으고 있다. 한 변호사는 “간통죄가 없어져야 한다는 것이 불륜을 해도 괜찮다는 얘기가 아니다. 우리나라가 이제는 이혼소송 등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시점에 와있다고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법원 내에서도 이 같은 분위기가 감지된다. 주요 선진국 중에서 간통죄 처벌 조항을 두고 있는 나라는 사실상 없을 뿐더러 인권적 가치로 봐도 지나친 국가권력의 개입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보수적인 성향의 헌재 재판관들도 더이상 간통죄의 필요성을 주장하긴 어려울 것이란 반응이 나오고 있다.
간통죄의 위헌 판단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위헌 결정 후 발생할 수 있는 사회 혼란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도 선행돼 마련되고 있다. 국회는 지난 5월 헌법재판소법 47조를 개정·신설했다. 헌재법 47조 3항에 ‘해당 법률 또는 법률의 조항에 대하여 종전에 합헌으로 결정한 사건이 있는 경우에는 그 결정이 있는 날의 다음 날로 소급하여 효력을 상실한다’는 내용이 추가됐다. 이에 따라 이번에 간통죄가 위헌 결정이 난다면, 그 전 마지막으로 합헌 결정이 나왔었던 2008년을 기준으로 그 이후에 간통죄로 처벌받은 사람들부터 형사보상이 가능해진다. 최근 간통죄의 처벌 수위가 크게 낮아졌다는 점에 비춰보면 간통죄 위헌 판단 후 발생할지 모를 혼란이 크게 줄어들 것이란 것이다.
한국판 ‘위기의 주부들’을 그린 영화 <맛 2013>의 한 장면.
#검찰도 가정사 개입에 ‘찝찝’
검찰에서도 입증은 어려우면서 가정사에 개입한다는 찝찝함만 있던 간통죄 수사가 사라지기를 은근히 바라는 모습이다. 간통죄의 경우 직접적인 ‘성교’가 있어야만 처벌이 가능한데, 은밀히 이뤄지는 간통의 특성상 현장을 덮치지 않고서야 증거를 확보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사정당국에 따르면 간통죄가 제정된 지난 1953년 이래 이 죄로 처벌받은 사람이 10만 명이 넘을 만큼 사건도 많다. 게다가 피의 여성을 앉혀놓고 “몇 번 성교를 했느냐”는 식으로 진술을 얻어내는 것도 여간 고역이 아니라고 한다. 수사하다보면 황당한 경우도 한 둘이 아니다.
한 검사 출신 변호사에 따르면, 자영업자이던 A 씨는 본처인 B 씨를 두고 술집 마담인 C 씨와 바람이 났다. A 씨가 C 씨와 딴살림을 차렸단 사실을 알게 된 B 씨는 두 사람을 간통죄로 고소했고 결국 A 씨와 C 씨는 처벌을 받았다. A 씨는 B 씨에게 상당한 위자료를 주고 이혼한 뒤 C 씨와 가정을 꾸렸다. 그런데 형까지 다 살고 나온 A 씨가 자녀 양육 문제 등으로 B 씨를 다시 만나면서 두 사람이 어쩌다 다시 ‘불꽃’이 튀었다. 이를 알게 된 C 씨는 거꾸로 A 씨와 B 씨를 간통죄로 고소했다. 법적으로는 엄연히 C 씨가 부인인 상황. 결국 A씨와 B씨는 또 처벌을 받았단다.
역시 검사 출신인 또 다른 변호사는 본처가 남편을 미행한 끝에 숙박업소에서 거사를 치르고 있는 현장을 덮쳤지만 결국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다는 얘기를 전했다. 간통죄의 구성요건 상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선 두 남녀가 ‘성기를 삽입’해야 한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그날 다른(?) 방식으로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는 것이다. 몇 개월 동안이나 바람을 폈다는데도 남편은 이른바 ‘삽입’은 한 번도 없었다고 주구장창 우겨댔다. 결국 특별한 물증도 없어 결국 기소하지 못하고 풀어줬다는 얘기다.
재경지검의 한 검사는 “이런 얘기는 요새는 술자리 무용담으로나 남을 일”이라고 했다. 최근엔 수사에서의 피의자 인권이 중요해지면서 예민한 질문은 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그는 “드라마를 보고 몰래카메라 이런 걸 숨겨놓고 찍겠다는 사람들도 많은데 그러다간 거꾸로 소송을 당할 일”이라고 했다. 증거확보도 어려운데다 복잡하기만 한 사건을 처리하느니 그냥 캐비닛에 묵혀두다가 ‘공소권 없음’으로 끝내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한다.
다만 이런 사정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간통죄가 사회적 안전망을 이루는 데 한몫을 하고 있기 때문에 존속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예전과 많이 취지가 훼손되긴 했지만 여전히 사회적 약자인 여성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법조계에서는 사법연수원 불륜사건으로 떠들썩했다. 사법시험에 합격한 D 씨는 고시공부 중일 때부터 사귀던 E 씨와 결혼을 하기로 하고 혼인신고를 한 상태였다. 하지만 D 씨는 사법연수원에서 만난 F 씨와 바람이 났고, 결국 이 사실을 E 씨에게 알리면서 이혼을 신청하기에 이르렀다. 이 같은 사실에 크게 상처를 입은 부인 E 씨는 결국 지난 2012년 7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 후 E 씨의 어머니가 D 씨가 실무수습 중이 법무법인 앞에서 일인시위를 벌이면서 이 사건이 세간에 알려졌다. E 씨 어머니의 강력한 처벌 의사 속에 D 씨와 불륜 상대인 F씨가 간통죄로 재판에 넘겨졌다.
서울중앙지법은 D 씨와 불륜 상대인 F 씨에게 “E 씨 어머니에게 3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법률상 배우자가 있는 D 씨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어머니가 아무리 딸을 위해 용기를 냈어도 불륜을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었다면 두 사람을 처벌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는 반응도 나왔다.
조정수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