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 이동 범위, 주거 지원 등 난제 남아…지방선거 변수와 네트워크 훼손 우려도 부상

HMM 노사는 지난 4월 30일 본사 부산 이전에 전격 합의했다. HMM은 5월 8일 임시주주총회에서 본점 소재지를 서울에서 부산으로 바꾸는 정관 변경 절차를 밟고 이후 이전 등기 등 법적 절차를 마무리한다는 계획이다. 대표이사 집무실 등을 우선 부산으로 옮긴 뒤 세부 방식은 노사가 별도 교섭을 통해 정하기로 했다.
이번 합의는 본사 이전을 둘러싼 노사 갈등이 총파업 직전까지 치달은 뒤 나왔다. HMM 육상노동조합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이어진 본사 이전 협의가 접점을 찾지 못하자 노동위원회 조정 신청과 대표이사 고소에 이어 파업까지 예고한 바 있다. HMM은 중동 전쟁으로 글로벌 물류 상황이 악화된 가운데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국내외 물류 차질과 사회적 혼란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노사가 대승적 차원에서 합의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정부와 HMM이 내세운 명분은 국가 균형 발전과 지방분권 강화다. 부산을 해양수도로 육성하고 해양수산부 이전과 HMM 본사 이전을 연계해 해운·항만 기능의 시너지를 높이겠다는 논리다. HMM은 지난해 매출 10조 8914억 원, 영업이익 1조 4612억 원을 기록한 국내 대표 국적선사다. 세계 8위 글로벌 해운사인 HMM의 부산 이전은 상징성이 적지 않다.
다만 이번 합의는 실제 이전 시기와 인력 이동 범위, 이주비, 주거 지원, 교통비, 가족 동반 이주 지원 등 세부 조건이 정해지지 않은 기본 합의다. 김태황 명지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노조의 가장 큰 무기는 파업인데 국가 경제를 생각해 대승적 차원에서 합의해 줬다는 설명은 납득이 잘 가지 않는다. 정말 기초적인 수준의 합의이고 갈등을 임시 봉합하는 선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정부가 계속 밀어붙이니 우선 큰 틀에서는 양보해 주고 이후 협상 과정에서 실속을 챙기려는 것으로도 읽힌다”고 말했다.
과거 혁신도시 이전 사례에 비춰 후속 협상은 쉽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김천, 진주 등으로 이전한 공공기관들도 직원 이주비와 주거 지원, 교통비, 가족 지원 문제를 놓고 적잖은 진통을 겪었다. 수도권에 생활 기반을 둔 직원이 지방으로 내려가면 자녀 교육과 배우자 직장 문제로 가족은 서울에 남고 직원만 지방에서 생활하는 ‘두 집 살림’이 발생할 수도 있다. 이에 따른 주거비와 교통비 등 부대비용 지원은 노조가 후속 교섭에서 핵심적으로 요구할 사안으로 예측된다.
직원 반발도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 어렵다. 전준수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는 “중간관리직까지는 못 이기는 척 수락했을 수 있지만 평직원부터 차장급까지는 여전히 불만이 크다”며 “구체적인 이전 날짜가 정해지고 후속협의가 구체화되면 다시 반발이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김태황 교수도 “노조와 경영진 모두 뚜렷한 유인이 약한 상황에서 기본 합의가 이뤄졌다. 합의 자체가 확정적이지 않은 임시방편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고 언제든 깨질 수 있다”고 말했다.
지방선거는 HMM 부산 이전의 주요 변수로 거론된다. 전정근 HMM 해상노조위원장은 전재수 더불어민주당 부산시장 후보의 선거대책위원장으로 합류했다. 부산 이전을 둘러싸고 노사 갈등이 이어져 온 상황에서 노조위원장이 부산시장 후보 캠프에 공식적으로 합류한 것이다. 이를 두고 HMM 부산 이전 문제가 단순한 노사 현안을 넘어 지역 정치권과 긴밀히 맞물려 움직이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재수 후보는 5월 7일 부산 중구 HMM 해상노조 사무실에서 열린 선거대책위원장 수락식에 참석했다. 전 후보는 이 자리에서 HMM 이전이 ‘반쪽 이전’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HMM 구성원들이 극적으로 합의했지만 앞으로 넘어야 할 과제들이 있다”며 “머리를 맞대고 부산 이전의 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잘해 나가겠다는 말씀을 드리고, 크게 걱정하지 않으셔도 되겠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정치권과 해운업계에서는 두 가지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하나는 지방선거 전까지 갈등을 봉합해둔 뒤 선거 이후 후속 협상 과정에서 직원 반발과 보상 문제가 다시 터져 나오는 경우다. 다른 하나는 전 후보가 당선될 경우 부산 이전이 정치적 추진력을 얻어 더 강하게 추진되는 경우다. 전준수 교수는 “전재수 후보가 당선되면 반드시 관철하려고 할 것이고 부서 대부분을 옮기는 명실상부한 이전을 요구할 가능성이 있다”며 “반대로 선거 결과에 따라서는 이전 동력이 약해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잔류 부서 범위도 핵심 갈등 요소다. 재무, 영업, 홍보 등 핵심 지원 부서를 서울에 대거 남길 경우 부산 본사 이전은 껍데기뿐이라는 비판이 나올 수 있다. 반대로 이들 부서까지 부산으로 옮기면 대형 화주, 포워더, 금융기관 등 서울에 집중된 거래 네트워크와 멀어지는 문제가 생긴다. 해운업계 한 관계자는 “아직 어느 부서가 부산에 가고 어느 정도 인력이 이동하는지 구체적인 내용이 나오지 않았다”며 “핵심 기능이 서울에 남느냐에 따라 효과와 비용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글로벌 선사는 화주와 포워더, 금융기관, 로펌, 협회, 정부 부처와 촘촘히 연결돼 움직인다. HMM이 여의도에 본사를 둔 것도 이런 업무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구교훈 한국국제물류사협회 회장은 “전 세계 주요 선사 본사는 대체로 수도에 있다. 해상운송 비즈니스는 배가 있는 항만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영업, 금융, 전략, 마케팅이 연결되는 곳에서 이뤄진다”며 “선사가 가장 많이 상대하는 곳이 포워더인데 국내 주요 포워더 본사는 전부 서울에 있고 외국 고객들도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하는 만큼 여의도가 가깝다”고 말했다.
선박금융 관련 부서의 서울 잔류 필요성도 거론된다. 익명을 원한 해운업 전문가는 “계약의 기본은 대면 미팅을 통한 신뢰 구축이다. 선박금융은 기본 단위가 1000억 원대를 넘나드는 만큼 국내 은행뿐 아니라 외국계 금융기관과도 협력해야 하는데 외국계 은행들도 대부분 서울에 있다”며 “사실 해사본부는 이미 부산에 있고 대표이사와 직속 미래전략실 말고는 내려갈 만한 부서가 눈에 안 띈다. 어떤 부서를 부산에 내려보내겠다는 것인지 의아하다”고 말했다.
서울에는 최소한의 기능만 남기고 주요 조직을 부산으로 옮길 경우 영업·계약 담당 인력 등이 고객 미팅을 위해 수시로 서울을 오가야 하는 탓에 업무 비효율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해상법 전문가인 김현 법무법인 세창 대표변호사는 “로펌을 끼고 계약해야 하는데 대형로펌도 다 서울에 있다. 결국 부산으로 해운 비즈니스 기능이 이전되는 것이 아니라 HMM 직원들이 업무 수행을 위해 부산과 서울을 왕복해야 하는 상황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출장비 부담은 물론 이동에 따른 시간 손실도 어마어마해질 것으로 보인다. 본사 이전은 경제적 이유보다 정치적 이유가 커 보인다”고 지적했다.
인력 이탈 가능성은 HMM의 경쟁력과도 직결된다. 해양수산부 부산 이전 과정에서도 직원 이탈 문제가 불거진 만큼 HMM도 부산 이전이 본격화할 경우 핵심 인력이 회사를 떠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교훈 회장은 “해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을 통한 네트워킹이다. 파이낸싱, 해외 네트워킹, 마케팅 등을 전담하던 육상 직원들 하나하나가 경쟁력”이라며 “직접 사람을 만나고 맨투맨으로 신뢰를 쌓아왔던 이들이 이탈하게 되면 선사의 경쟁력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 회사가 상당한 유인책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HMM 관계자는 “국가 균형 발전이라는 대의와 국적선사로서의 사회적 책임에 공감하고 회사의 경쟁력 제고 등을 조화롭게 이뤄내기 위해 노사 합의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HMM 노조와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