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리면 아쉽고 안 팔리면 힘들고’
동부하이텍 매각이 무산되자 일부에서는 아예 철회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사진은 김준기 동부 회장(왼쪽)과 동부하이텍 전경. 임준선 기자
동부그룹이 동부하이텍을 매각하겠다고 밝힌 것은 지난 2013년 11월 동부그룹이 자구계획안을 발표하면서다. 지난해 1월 매각주관사인 산업은행 등은 동부하이텍 매각 절차에 본격 돌입했고 지난 10월 13일 본입찰을 통해 아이에이(IA)-에스크베리타스자산운용 컨소시엄이 단독 참여, 그 달 31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1년여를 끌어온 동부하이텍 매각 작업이 마침내 마무리될 듯했다.
그러나 지난해 12월 31일 동부 측이 아이에이컨소시엄이 인수 의사를 철회해왔음을 알림으로써 매각 작업은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아이에이컨소시엄은 중국 자금을 투자자로 참여시키려 했지만 자금 조달이 원활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동부하이텍을 인수하려면 최소 8000억 원 이상이 필요하다. 아이에이컨소시엄이 본입찰 때 2000억 원을 써낸 데다 동부하이텍이 채권단으로부터 신디케이트론(다수 은행이 같은 조건으로 하는 중장기 대출로 만기 때 연장 가능) 6200억 원을 받은 상태기 때문이다.
아이에이컨소시엄은 8000억 원이 넘는 자금을 마련하기가 힘들었던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아이에이 관계자는 “동부하이텍에 우발적 채무 등 생각보다 문제가 많아 투자자들이 난색을 표했다”면서도 “인수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동부하이텍 매각 작업이 재추진되면 다시 참여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부하이텍 관계자는 “국세청을 상대로 낸 법인세 취소 소송에서 승소해 우발적 채무도 없고 리스크도 해소됐다”며 “우선협상대상자 지위 기간도 저쪽(아이에이) 요구대로 한 달 연기해줬는데 이제 와서 그런 말을 한다는 게 이해할 수 없다”고 반박했다. 동부하이텍은 지난 7월 삼성세무서장을 상대로 낸 법인세 778억 원 부과 처분 취소 소송에서 승소한 바 있다.
동부그룹 관계자 역시 “동부하이텍은 지난 10년여 동안 채권단의 집중 관리·감독을 받아온 회사여서 우발적 채무가 있을 수 없다”며 “두 달 동안 조달하지 못한 자금을 나중에 시간을 더 준다 해서 마련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매각주관사인 산업은행 관계자 역시 “자금 조달을 하지 못해 우선협상대상자 지위를 반납했을 정도인데 몇 개월 후라고 사정이 달라지겠느냐”며 아이에이의 재참여에 대해 회의적인 시선을 보냈다.
동부하이텍 매각이 무산되면서 매각주관사는 다시 바빠졌다. 지난해 1월 절차에 돌입한 후 1년 넘게 끌어온 매각 작업이 틀어지자 이에 대한 비난도 만만치 않다. 동부그룹 관계자는 “동부하이텍 매각 작업을 채권단에 일임한 상황에서 뭐라 할 말이 없다”고 했다. 하지만 재계에서는 동부가 꽤 답답해 할 것으로 관측했다. 재계 관계자는 “동부그룹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한 이유는 산업은행 등에도 책임이 있다”면서 “산업은행이 주도한 동부 자산 매각이 제대로 성사된 게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산업은행은 동부하이텍 매각을 다시 추진할 계획이지만 동부하이텍에 관심을 가지는 기업이 과연 있을지 의문이다. 지난 10월에도 중국·대만 업체와 국내 사모펀드에서 관심을 보인다며 흥행을 예상했지만 정작 10월 13일 본입찰 때는 아이에이컨소시엄 한 곳만 단독 입찰했다. 더욱이 매각이 한 번 틀어진 탓에 재추진한다 해도 흥행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산업은행이 수의계약도 고려하고 있는 이유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부채 규모가 너무 큰 탓에 동부하이텍을 원하는 기업이 많지 않다. 수의계약도 시장에 수요자가 있어야 할 텐데 지금으로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아이에이의 재참여를 제한할 수는 없겠지만 신뢰도에는 상당한 타격을 입은 상태여서 (재참여) 효과나 성과가 있을지 의문”이라고 밝혔다.
동부하이텍 기업가치가 상승해 오히려 더 높은 가격에 매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나오고 있다. 동부하이텍은 지난해 3분기까지 234억 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해 연간 흑자가 예상되고 있다. 동부하이텍 관계자는 “아직 4분기 실적이 나오지 않았지만 연간 흑자는 기정사실”이라고 잘라 말했다. 매년 적자에 허덕이던 동부하이텍이 흑자로 돌아서고 반도체 활황이 지속된다면 그만큼 기업가치도 높아지게 마련이다. 하지만 여전히 6200억 원에 달하는 부채가 걸림돌이다.
일부에서는 동부하이텍 매각이 아예 철회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사실 당초 김준기 동부 회장이 애착을 갖고 정성을 들였던 동부하이텍을 매각하기로 한 것은 재무구조개선보다 구조조정에 대한 의지를 보이겠다는 성격이 강했다. 한마디로 울며 겨자 먹기로 매각에 동의한 셈이다.
동부그룹 관계자도 “동부하이텍이 매각된다면 부채를 털어낸다는 의미에서 재무구조개선에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나 계열사들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면서 “채권단 요구에 따라 구조조정 의지가 강하다는 뜻을 보여주기 위해 (동부하이텍 매각을) 결정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산업은행 관계자는 “살 사람이 없다면 팔 수도 없는 것”이라며 철회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