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도 먹고 돈도 버는 ‘일당바리’도 있다
“요즘 학생들 무서워요.”
유흥주점을 운영하는 한 자영업자는 최근 청소년들이 나이를 속이고 ‘공짜 술’을 먹은 뒤 오히려 ‘협박’까지 하며 대드는 상황을 보며 기가 막힌다고 하소연한다. 특히 학생들 방학시즌이 되면 유흥가에서는 ‘뚫으려는 자’와 ‘막으려는 자’의 한판 전쟁이 펼쳐진다. “몰래 술만 많이 팔면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느냐”며 핀잔을 주는 사람도 있지만 이는 속 모르는 소리다. 미성년자에게 술을 팔다 단속에 걸릴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 2개월 영업정지 등의 행정처분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겨우 하루 벌어먹고 사는 영세업자들에게는 단 며칠간의 영업정지도 상당한 타격이다. 그래서인지 단속에 걸리면 버티지 못하고 폐업에 이르는 경우도 많다.
방학시즌이 되면 10대들이 유흥업소에 들어가 술을 마신 뒤 돈을 받으면 신고를 하겠다고 협박을 하는 경우가 종종 벌어진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이런 최악의 사태를 피하기 위해 업주들은 매일 전쟁을 치르는데 청소년들의 속임수도 날이 갈수록 대범하고 치밀해져 속수무책으로 당하기 일쑤다. 서울 강남에서 포장마차를 운영하는 이 아무개 씨(45)는 “예전에는 성인 신분증을 빌리거나 어설프게 위조해 나이를 속이는 게 전부였다지만 지금은 첩보영화 수준이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신분증을 쓰거나 아예 위조주민등록증을 구입해 보여주면 우리로서는 가려낼 방법이 없다”며 “아르바이트생들과 친해진 뒤 제집처럼 술집을 드나드는 학생들도 있고 무작정 행인을 설득해 테이블을 잡은 뒤 자리를 바꿔치기 하는 경우도 있다. 노래방은 가방이나 몸속에 몰래 술을 숨기고 들어가니 업주로서는 답답할 따름이다”고 말했다.
그래도 업주들은 기상천외한 방법이지만 이런 식으로 술집을 공략하는 청소년들은 ‘착한 편’에 속한다고 입을 모은다. 처음부터 신고를 무기로 마음껏 술과 안주를 시켜먹은 뒤 ‘자폭’을 택하는 미성년자들에 비하면 말이다. 이들은 노래방이나 주점 등에서 술을 마신 뒤 계산서 대신 자신들의 신분증을 내민다. “우리는 미성년자다. 경찰에 신고하지 않을 테니 그냥 보내 달라”거나 심지어 입막음용 돈을 요구하기도 한다.
업주들은 벌금과 영업정지가 두려워 울며 겨자 먹기로 보내주는데 사정이 이렇다보니 청소년들의 범죄도 점점 대담해지고 있다. 지난 4일에는 경기도 의정부시의 주점 등 10곳에서 1회 평균 70만~80만 원씩 모두 900여만 원 상당의 술과 음식 등을 먹고 업주를 불러 자신들이 “미성년자니 신고하고 싶으면 하라”며 협박한 10대 청소년 일당이 불구속 입건되기도 했다.
앞서의 이 씨는 “눈 뜨고 당해도 욕 한 가지로 풀어야지 어쩌겠느냐. 돈 몇 푼 받아내자고 경찰을 부를 순 없으니 말이다. 상습범이 있으면 블랙리스트를 만들어 공유하는 게 전부다. 간혹 울분을 참지 못하고 심부름센터 등을 이용해 문제의 청소년들에게 폭력을 가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김 씨는 별일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구석 테이블에 앉아있던 5명이 고등학생임이 밝혀져 결국 벌금 70만 원과 영업정지 두 달 처분을 받았다. 알고 보니 앞서 돌려보낸 청소년 일부가 자신들을 쫓아낸 것에 대해 앙심을 품고 바쁜 틈을 타 아르바이트생에게 거짓 신분증을 보여주고 몰래 들어온 것이었다. 신고 역시 밖에 남아있던 일행이 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씨는 억울함을 호소하며 행정심판까지 청구했지만 영업정지 기간만 조금 줄었을 뿐 면죄부를 받진 못했다.
청소년을 앞세운 경쟁업소로부터 뒤통수를 맞는 사례도 있다. 주점을 운영하는 이 아무개 씨(여·43)는 지난 연말 갑작스러운 경찰 단속으로 영업정지 처분을 받을 위기에 처했다. 청소년에게 술을 팔았다는 이유에서였는데 문제의 테이블은 신분증 검사를 했던 터라 납득할 수 없었다. 급기야 폐쇄회로(CC)TV까지 분석해가며 미심쩍은 부분을 찾기 시작했다. 그런데 단속을 당한 테이블에 앉아 있던 여성이 자꾸 밖으로 들락거리는 수상한 행동을 하더니 어느 순간 옷차림이 비슷한 다른 사람으로 바뀌는 것을 발견해냈다.
경찰의 조사 결과 처음 술집에 입장한 성인남녀와 단속에 적발된 미성년자 모두 경쟁업소에서 섭외한 인물들인 것으로 밝혀졌다. 그들의 시나리오는 이랬다. 고용된 성인남녀가 먼저 이 씨의 주점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신분증 검사를 통과한다. 이후 바쁜 틈을 노려 성인여성이 나가면 비슷한 옷차림을 하고 있던 미성년자가 그 자리에 앉아 술을 마신다. 모든 과정을 보고 받았던 경쟁업소 주인이 경찰에 신고를 하면 계획은 성공. 간 큰 경쟁업소 주인은 경찰 조사에서 미성년자의 사촌언니라며 보호자를 자청하기까지 했지만 결국 덜미를 잡히고 말았다.
이 씨의 사례처럼 미성년자들이 경쟁업소의 허위신고에 도움을 주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청소년들 사이에서는 일명 ‘술집 일당바리’라고 부르며 술을 공짜로 마실 수 있는데다 10만~20만 원 정도의 수고비까지 받을 수 있는 쉬운 아르바이트로 여기는 분위기다. 경찰에 적발돼도 업주에게만 벌금 및 영업정지 처분이 내릴 뿐 술을 마신 청소년들은 미성년자라 별다른 처벌을 받지 않아 더욱 극성을 부리고 있다. ‘요즘 애들 무섭다’는 말은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이지만, 요즘 애들진짜 무섭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