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부터 이별까지 손끝으로
최근 들어 만남부터 이별까지 스마트폰을 통해 연애를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만남
대기업에 근무하는 김석현 씨(가명·29)와 대학생 이은주 씨(가명·여·25)는 1년 전 ‘소셜데이팅(스마트폰 앱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을 기반으로 이성을 연결해주는 서비스’을 통해 만났다. 학생이 아닌 새로운 분야의 사람을 만나고 싶었던 은주 씨는 유명 소셜데이팅 앱에 가입해 나이, 학력, 직업, 성격, 이상형, 출생지 등을 기록한 프로필과 사진을 올렸다. 며칠 뒤 이를 본 석현 씨가 먼저 연락을 하면서 인연이 시작됐다.
석현 씨는 “회사생활이 바쁘다보니 매일 보던 사람만 볼 뿐 새로운 인연 만들기가 어려웠다. 친구나 지인들에게 소개팅을 부탁하기도 부담스럽고 그렇게 사람을 만나면 주선자의 눈치를 보게 돼 내 마음대로 할 수가 없어 싫었다. 그래서 소셜데이팅 앱을 이용했는데 손쉽게 여러 사람들과 연락할 수 있어 편했다”며 “간혹 거짓 프로필을 올리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얘기를 하다보면 들통 나기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몇 명과 대화한 끝에 은주 씨를 만나게 됐는데 서로 통하는 부분이 많았다”고 말했다.
앱으로 연결된 두 사람은 어느 정도 신뢰가 쌓이자 전화번호를 교환한 뒤 채팅 앱을 통해 대화를 이어나갔다. 채팅 앱과 연동된 SNS를 보며 서로의 과거와 현재를 공유했고 몇 번 저녁식사를 함께 한 끝에 일명 ‘썸’을 타는 관계로 발전했다.
#고백
은주 씨를 보다 깊은 관계를 원했던 석현 씨는 마침내 고백을 결심한다. 그런데 막상 어떤 방법으로 고백을 해야 할 지 고민스러웠다. 채팅 앱에서는 이미 연인사이인 듯 다정한 두 사람이었지만 얼굴만 마주하면 여전히 어색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친구들의 도움을 받기도 어려운 상황. 석현 씨는 또 다른 채팅 앱을 설치해 ‘고백 방법에 대한 조언을 구한다’는 제목으로 방을 만들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이 채팅에 참여해 이런저런 조언을 쏟아냈다. 현실 가능성이 없는 방법도 많았지만 결국 조언을 받아들여 마음을 담은 편지를 전달하기로 했다. 글재주가 전혀 없었던 석현 씨는 고백 편지 멘트를 정리해둔 앱을 다운받아 ‘커닝’을 해가며 편지를 썼고 결과적으론 성공이었다.
#데이트
연인사이로 발전한 두 사람은 알콩달콩 행복한 시간을 보내며 모든 데이트 기록을 커플전용 앱에 남겼다. 한 명의 연인만 등록할 수 있는 이 앱은 두 사람의 대화내용, 사진, 메모 등 모든 기록을 저장해 시간 순으로 정렬해줘 커플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이 뿐만 아니라 석현 씨는 맛집 앱, 데이트코스 추천 앱, 여행 가이드 앱, 데이트비용 관리 앱 등을 통해 ‘완벽한’ 데이트를 추구했다.
선물 역시 스마트폰으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바쁜 직장생활 때문에 직접 선물을 고르러 가기 어려웠던 석현 씨는 기프티콘을 이용해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설령 은주 씨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직접 매장까지 찾아가 교환이나 환불을 하는 번거로움 없이 취소 버튼만 누르면 됐기에 만족스러웠다.
#이별
영원할 것만 같았던 두 사람에게도 위기가 찾아왔다. 대학졸업 후 취업준비로 바쁜 은주 씨와 밥 먹듯 야근을 반복하는 석현 씨 모두 서로에게 소홀해지는 날이 많았다. 섭섭함이 쌓여 때론 다투기도 했지만 이마저도 감정을 느낄 수 없는 채팅 앱을 통해 ‘미안하다’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자연스레 만나는 횟수도 줄어들고 매일 업데이트 되던 커플 앱도 어느 순간부터 사용하지 않게 됐다.
석현 씨는 더 이상 이런 관계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진지한 대화를 요청했다. 얼굴을 보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자연스럽게 스마트폰에 손이 갔다. 서로에 대한 불만만 늘어놓던 두 사람은 결국 이별을 택했고 “우리 그만하자” “잘 지내”라는 두 마디로 그렇게 1년의 시간을 정리했다. 그 뒤 두 사람은 ‘이별 대처법’이라는 앱을 다운 받아 자신들을 위로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