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때울래 돈으로 막을래 ‘양 손에 독사과’
그간 돈이 없다고 주장해온 전재용 씨가 40억 벌금형을 선고받고 진퇴양난에 빠진 모양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재용 씨가 감당해야 할 벌금은 40억 원이다. 법원은 1심과 2심을 거치면서 동일하게 재용 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벌금 40억 원이라는 판결을 내렸다. 만약 상고심에서도 이 형이 유지된다면 재용 씨는 벌금을 납부하거나, 노역장에 수감돼 1000일의 노역형을 살아야 한다. 재용 씨는 1, 2심을 거치며 “재산 자진 납부와 검찰의 추징으로 더 이상 내놓을 돈이 없는 상태”라며 선처를 호소했다.
하지만 검찰의 판단은 다르다. 무기명 채권 등의 은닉재산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재용 씨의 선택을 주시하고 있다. 만약 노역형 대신 벌금 납부를 택한다면 지금까지 ‘돈이 없다’고 주장한 부분에 대해선 거짓말이 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검찰은 전 씨에 대한 압박을 높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외사부는 지난 5일 재용 씨를 체포해 조사했다. 체포 이유는 위증교사 혐의다. 이번 조세포탈혐의 재판에서 증인을 상대로 거짓진술을 하도록 회유했다는 내용이었다. 조사는 하루를 넘겨 재용 씨는 서울구치소에서 하룻밤을 묵고 나왔다.
일각에서는 검찰의 이런 움직임이 전 씨 일가에 대한 은근한 압력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하루 만에 풀려났다는 점, 전 씨가 가족의 병원 치료로 출석하지 못했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결국 체포 영장을 집행한 점 등이 이례적이라는 이유에서다. 검찰은 대법원에서 조세포탈죄가 확정되는 대로 위증교사 혐의로 추가 기소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만일 추가 기소되면 수감 기간은 더 길어질 수 있다. 재용 씨는 결국 양 손에 독이 든 사과를 쥔 꼴이 됐다.
검찰의 ‘공세’가 날로 격해져 가는 데는 전 씨 일가의 추징금 환수가 수개월째 진척이 없는 점도 일조한다. 전 전 대통령 일가에 부과된 전체 추징금 2205억 원 중 환수된 금액은 1087억 원이다. 전 전 대통령 일가가 자진해서 내놓은 재산 1703억 원가량 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부동산(1270억 원)이 매각되지 않아 난항에 빠진 것.
현재 한남동 신원플라자 빌딩이 180억 원에 매각된 것을 제외하면 더 팔린 자산은 없다. 또 경매에 내놓은 부동산이 잇따라 유찰되면서 가격이 점점 떨어지고 있다. 이중 ‘알짜배기’로 꼽히는 서울 서초구 서초동의 시공사 사옥마저 4번째 유찰됐다. 그사이 공매가는 146억 원에서 117억 원으로 30억 원 가까이 떨어졌다. 4번째 경매에서도 건물 2개동 가운데 식당, 창고 용도 건물만 별도로 35억 원에 낙찰됐고, 부지와 사옥은 팔리지 않았다.
다른 부동산 역시 가격이 최대 40%나 내려갔지만 매각에는 번번이 실패하고 있는 상황이다. 계속된 유찰에 부동산 가격은 점점 떨어지고 있고, 부동산을 팔 때마다 발생하는 양도소득세를 제하면 모두 현금화해도 추징금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미국에 있는 재용 씨의 재산도 검찰 수사의 과녁이 되고 있다. 재용 씨 소유의 캘리포니아주 뉴포트비치의 주택 매각자금 72만 2000달러를 포함해 불법으로 벌어들인 약 122만 달러를 미국 법무부가 압류중이다. 재용 씨와 그의 아내 박상아 씨는 이를 두고 “아버지와 관련이 없는 재산”이라며 재판을 벌이고 있다.
조세포탈혐의 재판을 맡고 있는 재용 씨의 변호인은 “판결에서 이례적인 부분이 적지 않다”고 불만을 표했다. 변호인은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그렇게 중한 사안이면 집행유예가 아닌 구속을 시킬 일이었다. 그보다 40억 원이라는 벌금에 방점을 두는 것으로 봤을 때도 별건인 재산 추징을 염두에 둔 판결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한 변호인은 “무기명 채권 등 숨긴 재산이 있다고 하는데 먼저 좀 가져오고 얘기했으면 좋겠다. 잡아내지도 못 했으면서 자꾸 차명, 은닉 재산이 있다고 주장한다”며 “진짜 돈이 없어서 못 내는데 여론의 압박을 받은 판결이 너무 가혹하다”고 말했다.
전두환 일가 재산 환수를 담당하고 있는 검찰에 대해 일각에서는 그 절반도 회수하지 못했다고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그러나 재용 씨 측은 ‘진짜 돈이 없어서 못 내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검찰과 전두환 씨측간의 숨바꼭질은 해를 넘겨 올해에도 계속될 전망이다. 양측 모두 ‘시간이 해결해 줄 것’이라며 버티는 것은 아닌지, 국민들은 그저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다.
서윤심 기자 heart@ilyo.co.kr
재판받은 사건은? 위증교사 혐의…형량 더 늘 수도 재용 씨와 그의 외삼촌 이창석 씨는 2006년 재용 씨 소유의 경기도 오산시 양산동의 땅 28필지를 팔면서 세금을 탈루한 혐의를 받고 있다. 재용 씨는 박 아무개 씨에게 총 445억 원에 땅을 팔면서 세금이 적게 부과되는 임목비 항목을 따로 책정했다. 토지대금은 325억 원, 임목비를 120억 원으로 책정해 양도소득세를 크게 줄인 방식이었다. 검찰은 탈세 혐의를 발견하고 재용 씨와 이 씨를 기소했고, 1심에서 두 사람은 각각 벌금 40억 원(노역형으로 바꿀 시 일당 400만 원)과 함께 재용 씨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 이 씨는 징역 2년 6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 받았다. 박 씨는 1심과 달리 2심에서는 말을 바꿔 전 씨에게 유리한 증언을 했다. 박 씨의 바뀐 증언은 재판부에서 인정되지 않았고, 검찰은 박 씨를 불러 진술 번복 경위를 조사하면서 재용 씨의 위증교사 혐의를 포착했다. 현재 위증교사혐의는 검찰이 조사중에 있다. 이 혐의가 재판의 중요 쟁점은 아니지만 형량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