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폭의 정치 성공기 유쾌 통쾌 하셨나요?”
대구에 있는 작업실에서 만난 임규빈 작가는 연재 만화 <롱리브더킹> 마감 시간에 쫓겨 초췌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임 작가는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임 작가가 자신의 애완 고양이 ‘레오’를 안고 포즈를 취하는 모습.
―시즌1까지 합해 3년간의 연재를 마치게 됐다. 소감은.
“지금은 일단 쉬고 싶다는 생각밖에는 없다. 돌이켜보면 연재를 하는 동안 힘든 기억보다 재미있는 일이 많았다.”
―그래도 지금은 힘들어 보인다.
“아무래도 막바지에 다다라 체력적으로 지친 상태다. 연재라는 게 장기 레이스다 보니 컨디션 조절이나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하다. 그러다가도 문득 그림을 그리는 게 참 행복하다는 생각을 한다. 마감 때는 고되지만 또 마감이 끝나면 충전할 시간이 있고, 그런 일상이 반복된 것 같다.”
―<롱 리브 더 킹>은 요즘 찾아보기 힘든 정통 정치물이다. 특히 대구 토박이인 임 작가가 쓴 호남 정치인의 성장기라는 설정이 흥미로웠다. 어떻게 착안하게 됐나.
“아시다시피 장세출은 건달 출신이다. 건달이라면 아무래도 전라도, 그중 목포가 유명하다는 일종의 선입견, 그리고 감칠맛 나는 전라도 사투리 등을 떠올렸던 것 같다. 또 호남이 정치적으로 핍박받은 곳이기도 하니, 다양한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겠다 싶었다.”
―주변 반응은 어떤가. 특히 대구 지인들의 반응은 어딘가 남다를 듯한데.
“내용 자체가 야권 성향이 있는데도, 신기하게도 다들 좋아하셨다. 특히 스토리 작가 주변에 매주 챙겨보는 40대 남성 열성 팬이 많았다. 내 주변에서는 완전 여권 성향인 아버지의 반응이 가장 흥미롭다.”
―어떤 장면이 그렇게 흥미롭다고 하셨나.
“초반에 세출이가 강대현 의원이랑 싸우는 장면, 또 용팔이랑 싸우는 장면을 좋아하셨다. 일단 싸워서 이기니까. 막판 염상진의 회상 장면은 너무 끌어서 지루하다는 지적도 하셨다. 그런 이야기들이 한편으론 고마웠다.”
―작가 입장에서 시즌2 중 가장 인상적으로 꼽는 장면이 있다면.
“여당 대표인 남윤진이 장세출의 국회의원 제명안에 반대표를 던지는 장면이다. 남윤진의 아들이 장애인인데, 세출이가 아이들에게 봉사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움직인 것이다. 여당 대표가 야당의 무소속 의원을 포용한다는 상징을 남기고 싶었다.”
―주변의 반응으로 바뀌거나 첨가된 설정도 있었나.
“작품 주요 캐릭터인 황태산을 보며 노무현 전 대통령을 떠올리시는 분이 많았다. 전혀 의도된 연출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다들 황태산이 노 전 대통령이 아니냐는 반응이 나오고 또 좋아하다보니 어느 순간 쫓아간 부분이 있다. 나도 모르게 의식한 것인데, 나중에는 황태산의 집이 봉하마을 느낌까지 나는 것 같더라.”
―시즌2 주요 사건은 신당 창당이나 호남 출신 장세출 의원의 대구시장 출마였다. 안철수 의원의 신당 창당, 지난해 김부겸 전 의원의 대구시장 출마 등에서 영향을 받은 것 아닌가 생각도 든다.
“그것 역시 우연이었다. 신당 창당 부분은 안철수 의원이 신당을 만들기 이전부터 스토리가 나와 있었다. 작업을 하는 도중 뉴스에 신당 창당 소식이 나와서 ‘어, 우리랑 겹치네?’ 하며 신기했다. 세출이의 대구시장 선거는 지난해 6·4 지방선거보다 이후 스토리가 전개됐는데, 현실 정치권과 비교하면서 볼 수 있었을 것 같다.”
“장세출은 한없이 선하고 도덕적인 캐릭터다. 그런데 건달 출신이다. 설정 자체가 모순이다. 그런 캐릭터를 끌고 가는 데 어느 선에서 딜레마가 있었다. 정치라는 것이 깨끗하다고 다 좋은 것만도 아니고 어느 정도 현실에 타협하면서 속물이 돼가는 모습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 스토리 전개상 실패하는 게 개연성이 있기도 하다.”
―현실 정치에 장세출 같은 국회의원은 없다.
“세출이는 결국 판타지 속 인물이다. 독자들에게 판타지나 대리만족을 주는 캐릭터여야 했다. 현실 정치에서는 도덕적이고 선한 사람들은 결국 실패하거나 도태되는 경우가 많지 않나. 장세출 같이 선하고 소신 있는 사람이 타협하지 않고 승승장구하는 모습에서 짜릿한 쾌감을 느꼈으면 좋겠다.”
―<깡패대통령>으로 데뷔했는데, 그 시절은 어땠나.
“남들에 비해 데뷔가 빠른 편이었다. 군 제대하고 1년 만이었는데 지금 스토리를 쓰는 류경선 작가가 스승이었다. 그분 밑에서 1년 정도 문하생 생활을 하다 군대 갔다 온 뒤 바로 데뷔를 했다.”
―데뷔작 이후 뚜렷한 작품 활동이 없었다.
“말만 데뷔였다. 단행본까지 냈지만 얼마 팔리지 않았다. 반응도 별로고 수입도 없고 만화 그리는 게 너무 힘들고 싫었다. 당시 주변에 데뷔한 사람이 별로 없어서 더 막막했다. 이후 6~7년 만화를 그만두고 다른 일을 했다.”
―이후 다시 그리게 된 계기는.
“스승인 류 작가가 왜 자꾸 다른 길을 가려고 하느냐, 다시 그림을 그리라고 꾸준히 용기를 주셨다. 당시 디자인 회사를 다녔는데,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결국 회사를 그만두고 만들기 시작한 작품이 <롱 리브 더 킹>으로, 일요신문 만화공모전 대상을 받고 다시 그림을 그리니 정말 재미있었다.”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은가.
“그저 쪽팔리지 않은 작품을 만들자, 독자들에게나 나 자신에게나 그런 작가가 되자는 정도다. 그림 그리면서 내가 행복하다면 그걸로 된 것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최근 2~3년이 가장 행복했다.”
―이후 계획은.
“여행 떠나고 싶다. 책도 영화도 마음껏 보고 싶다.”
―그렇게 놀면 <롱 리브 더 킹> 시즌3는 언제 볼 수 있나.
“조금씩 준비하고 있다. 시즌3는 장세출이 드디어 대통령이 돼가는 여정이 펼쳐질 것이다. 더 이상은 비밀이다.”
대구=김임수 기자 ims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