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력 잃은 건설사에 새로운 먹거리 ‘옛다~’
정부가 기업형 민간임대 활성화를 위해 파격적인 택지공급 방안을 내놨지만 업체들이 실제로 용지를 확보하기는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다. 사진은 지난해 개인이 보유 토지를 활용해 분양 전환 없는 순수 임대로 지은 신도림 아이파크 전경.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전·월세 수요의 매매전환’을 유도하던 정부가 자진해 여유자금이 있는 중산층에게까지 질 좋은 임대주택을 공급해주겠다고 나오자 부동산시장과 업계, 여론은 그 의중을 파헤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곧 관심은 시장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지 계산기 두드리기로 이어졌다.
기업형 임대주택은 중산층이 최장 8년간 거주할 수 있는 민간임대 주택이다. 특별한 입주 자격이 없고, 임대료 산정 기준도 없다. 공급자인 사업자가 시장 상황에 맞춰 알아서 책정하면 된다. 임대료 상한선만 연 5%로 규정했다. 여기서 정부가 규정한 중산층은 4인 기준으로 세후 가처분 월 소득이 177만~531만 원인 가구다. 소득 분위별로는 3분위부터 9분위 초·중반이다. 2012년 통계청 소득 기준을 토대로 한 것으로, 우리나라 국민의 65.6%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들 중산층이 기업형 임대주택에 살 경우 임대료는 얼마나 되게 될까. 정부는 보증금 3000만∼1억 원에, 지역에 따라 월 40만∼80만 원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구체적으로 전국 주택의 중위 전셋값(1억 3600만 원)을 기준으로 할 때 보증금 4500만 원에 월 임대료 40만 원 중반이 될 것으로 정부는 예상하고 있다. 이는 소득 3~4분위에서 지출하는 주거비 정도다. 수도권 중위 전셋값(1억 8500만 원)을 기준으로 하면 보증금 6200만 원에 월세 60만 원선이 될 것으로 보인다. 소득 5~6분위가 지출하는 주거비 수준이다.
정부는 분양 위주로 주택사업을 해온 대형 건설사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특혜를 주기로 했다. 건설사의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양도세·취득세·소득세 등 각종 세제 지원을 강화하고, 기업형 임대사업을 위해 설립된 특수목적회사(SPC)는 건설사의 지배력이 없는 경우가 입증되면 건설사 모회사의 재무제표 연결 대상에서 제외하도록 했다.
정부가 기업형 임대주택 활성화 방안을 내놓은 것은 두 가지 고민의 결과다. 하나는 빨라도 너무 빨라진 전세의 월세 전환 속도 때문이다. 저금리 기조가 계속되자 집주인들은 전세물량을 월세(보증부 월세)로 대거 돌렸다. 전세물량이 줄어드는 반면 임차인들은 금리부담이 적은 전세를 선호하면서 전셋값 급등현상이 나타났고, 이는 주거비 부담으로 이어졌다. 집주인들로서야 전세보증금을 받아 새로운 집을 사거나 은행에 넣어둬도 이윤이 월세만 못해 순수전세를 놓을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정부는 어떻게 하면 전셋값을 안정시킬까 고민을 하게 됐고, 첫 번째 방법으로 전세수요를 매매전환으로 유도하기로 했다. 그것이 2013년 나온 ‘4·1 대책’, 지난해 나온 ‘9·1 대책’이다. 하지만 그래도 사람들은 집을 사지 않았고, 전세 선호 현상만 커졌다. 국토연구원이 지난해 실시한 주거실태조사 결과, ‘내 집을 꼭 마련하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79.1%로 2010년 83.7%보다 4.6%포인트 줄었다.
결국 정부는 전세수요를 매매가 아닌 월세로 돌릴 방안을 고민하게 된 것이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 전문위원은 “전세는 집을 담보로 투자용 새 집을 사기 위해 필요했던 일종의 사채였다”며 “하지만 그 사채 기능이 크게 필요하지 않아 역사 속으로 사라질 처지라는 것을 정부도 인정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또 다른 고민은 국내 건설시장에 이렇다 할 새로운 먹거리가 없다는 점이다. 최근 전셋값 급등 지역 중심으로 신규 분양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긴 하지만 이는 일부 지역에 국한된 현상이다. 그나마 내집 마련 수요가 분양주택으로만 몰리자 기존 아파트는 집값이 떨어지는 등 찬밥신세로 전락했다.
부동산114 조사에 따르면 지난 12월 말 기준 서울에서 입주 프리미엄이 가장 많이 붙은 단지는 입주 6~10년차 아파트였다. 1~5년차가 3.3㎡(약 1평)당 1840만 원, 6~10년차 1934만 원인 반면 10년이 넘은 곳은 평균 1566만 원으로 크게 낮다. 임병철 부동산114 팀장은 “최근 새 아파트 선호 현상이 뚜렷해지면서 입주 10년을 기준으로 매매가 차이가 크다”고 전했다.
이는 재건축이나 리모델링 등 주택 투자사업도 한계에 와 있다는 얘기다. 결국 정부는 건설경기를 활성화해야겠다는 고심을 하게 된 것으로 풀이된다. 그것이 바로 기업형 임대주택 산업 활성화 유도다. 건설업계에게는 임대사업(건설+관리)이라는 새 길을 열어주고, 금융업계에게는 임대·리츠 등을 통해 부동산시장에서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할 수 있도록 관련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취지다.
결국 주택정책을 매매 위주로 펼치던 정부는 임대 위주로 방향을 틀었다. 우리나라도 외국처럼 주택시장이 임대 중심으로 가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한 셈이다. 유럽 선진국들과 미국, 일본 등은 민간임대가 주를 이루고 있다. 우리나라보다 훨씬 앞서 민간 임대사업자 육성 정책을 썼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은 임대관리 사업이 활성화돼 있다. 국토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일본은 전체 임대주택 중 85%를 개인이 소유하고 있지만, 이 중 80%는 기업형 임대주택사업자가 관리·운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민간임대 활성화 방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98년 IMF 외환위기 직후 정부는 민간이 짓는 공공임대주택 사업자에게 국민주택기금을 파격적으로 지원했다. 당시 일부 건설사는 기금을 재원으로 민간임대주택을 지어 회사를 키우기도 했다. 하지만 민간임대 아파트가 중견·중소 건설사 위주로 공급되고, 품질이 떨어진다는 인식이 커지면서 서민용이란 고정관념이 생겼다. 정부의 이번 기업형 임대주택 활성화 방안은 이러한 틀을 깨기 위한 시도라는 점에서 전문가들은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하지만 아직 이 정책의 성공에 대해 속단하긴 이르다. 우선 초기 임대료 규정이 없는 만큼 사업자들이 수익을 내기 위해 과도한 임대료를 책정할 수 있다는 점이다. 박원갑 전문위원은 “임대료 인상률이 연 5%로 묶여 있기 때문에 초반에 가격을 높게 책정할 확률이 있다”며 “결국 품질은 조금 더 좋지만 임대료는 더 비싼 임대주택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건설사들도 수익이 날지 알 수 없어 적극 뛰어들지 못하고 있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자체 보유한 땅을 토대로 시뮬레이션을 해봤지만, 수익이 예상보다 나오지 않았다”며 “관건은 임대료 책정인데 향후 시장 상황을 알 수 없어 (기업형 임대주택) 사업 추진 여부조차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수영 이데일리 기자 grassdew@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