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드류 왕자 등 명사들 줄줄이 망신살
앤드류 왕자(왼쪽)는 2011년 ‘소아성애자’ 제프리 엡스타인과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나란히 걷는 모습이 파파라치 카메라에 찍혀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작은 사진은 엡스타인의 성노예였다고 주장하는 버지니아 로버츠가 10대 시절인 2001년 앤드류 왕자와 찍은 사진.
2008년 마무리됐던 것으로 알려진 사건이 새삼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당시 피해 여성들이 최근 미국 정부를 상대로 다시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이유는 당시 엡스타인에게 내려졌던 형량이 터무니없이 가벼웠다는 것이었다.
익명의 두 여성은 자신들이 엡스타인의 성노예였을 당시 각각 13세와 14세였다고 주장하면서 2008년 재판 당시 엡스타인의 ‘슈퍼 변호인단’이 법무부와 모종의 비밀 거래를 통해 형량을 감면해주는 ‘불기소 협약’을 맺었다고 말했다. 실제 엡스타인은 18개월형을 선고 받았으며, 그마저도 13개월만 복역하고 석방된 바 있다.
사실 엡스타인의 경우는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에 속한다. 보통 미국에서는 미성년자 성매매 범죄를 저지른 경우 최소 10년에서 최고 20년까지 중형을 선고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런 가운데 제3, 제4의 피해여성들도 동참할 뜻을 밝혔다. 제4의 여성은 자신이 지난 2002년 가난하고 힘없는 16세 소녀였다고 말하면서 당시 플로리다에서 엡스타인에게 ‘에로틱 마사지’와 성관계를 해주는 대가로 300달러(약 32만 원)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제3의 여성의 진술은 더욱 구체적이었고 충격적이었다. 언론을 통해 자신의 실명을 공개한 버지니아 로버츠(30)는 “나는 엡스타인의 강요로 정재계 유명인사들과 성관계를 맺었다. 나는 엡스타인의 지시에 복종해야 하는 성노예였다”라고 주장했다.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그녀는 15세 때인 1999년부터 2002년까지 4년 동안 엡스타인과 함께 런던, 뉴욕, 버진 아일랜드를 오가면서 성을 착취당했다.
이렇게 성노예로 살았던 것에 대해 그녀는 “기본적으로 나는 그와 그의 친구들의 매춘부가 되기 위해 훈련을 받았다. 모두들 엡스타인처럼 어린 소녀들을 좋아하는 취향을 갖고 있었다”라고 말했다. 가령 엡스타인이 전화를 걸어서는 “팜비치에 아파트를 하나 빌려 놓았어. 좋은 친구가 하나 있는데 네가 거기로 와서 친구를 즐겁게 해줘. 마사지도 해주고, 내가 느꼈던 것처럼 그 친구도 느끼게 해줘”라고 요구하는 식이었다.
이렇게 그녀가 성을 접대했던 상대는 주로 40~60대였으며, 이들은 모두 정치인, 재계 거물, 교육계 종사자, 외국 대통령, 총리 등 다양한 명사들이었다고 그녀는 주장했다. 그리고 이 가운데 그녀가 실명을 공개한 인사는 두 명이다. 바로 앨런 더쇼비츠 하버드 법대 교수와 영국의 왕위계승서열 5위이자 엘리자베스 여왕의 차남인 앤드류 왕자(55)다.
현재 더쇼비츠 교수는 “세 차례에 걸쳐 성관계를 맺었다”라는 그녀의 주장에 대해 “맹세컨대 그런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라고 반박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그녀가 언론을 통해 공개한 24쪽 분량의 자필 일기에는 앤드류 왕자와의 만남이 비교적 상세하게 적혀 있다. 그녀가 앤드류 왕자를 처음 만났던 것은 17세 때인 2001년, 런던에서였다. 당시 엡스타인의 전 여자친구이자 ‘뚜쟁이’ 역할을 했던 지슬레인 맥스웰의 아파트에서 앤드류 왕자를 만나 성관계를 맺었던 로버츠는 “엡스타인은 나에게 ‘그의 요구를 무조건 다 들어줘라. 만일 성적 학대를 당할 경우에는 자세하게 나한테 보고하라’고 지시했다”라고 말했다. 앤드류 왕자와 성관계를 맺은 대가로 엡스타인은 그녀에게 화대로 1만 5000파운드(약 2500만 원)를 지급했으며, “잘했어. 왕자가 즐거웠대”라며 칭찬하기도 했다.
앤드류 왕자와의 두 번째 만남은 2001년 엡스타인의 맨해튼 저택에서, 그리고 세 번째 만남은 엡스타인의 캐리비안 개인 섬에서 이뤄졌다. 그 때마다 로버츠는 앤드류 왕자와 성관계를 맺었고, 그 대가로 엡스타인으로부터 돈을 받았다. ‘당시 앤드류 왕자가 로버츠가 미성년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가’라는 논란에 대해서 로버츠는 “내 나이를 맞춰 보라는 맥스웰의 요구에 정확히 ‘17세 같다’라고 답했다”라고 주장했다.
이런 로버츠의 주장에 대해 영국 왕실과 앤드류 왕자 본인은 강하게 부인하고 있는 상태다. 영국 왕실은 지금까지 왕족과 관련된 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따로 언급을 하지 않았던 것과 달리 이례적으로 성명을 발표하면서 사태를 수습하느라 바쁜 모습이다. 왕실 대변인은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오랜 소송은 앤드류 왕자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미성년자와 부적절한 관계가 있었다는 주장은 명백히 거짓임을 밝힌다”라고 발표했다.
영국 왕실의 이런 움직임은 엡스타인과의 친분을 부정하면서 이번 사건에서 발을 빼려는 뜻으로 풀이되고 있다. 하지만 왕실 측의 이런 주장과 달리 실제 엡스타인은 왕실의 여러 인사들과 꽤 가깝게 지내왔으며, 앤드류 왕자와는 막역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령 엡스타인이 앤드류 왕자의 전처인 사라 퍼거슨의 빚을 갚아준 적도 있으며, 엘리자베스 여왕이 엡스타인으로부터 비밀리에 재정적 도움을 받았다는 소문도 퍼져 있는 상태다.
1990년대 맥스웰의 소개로 처음 친분을 텄던 둘은 그 후 앤드류 왕자가 엡스타인의 저택이 위치한 플로리다, 버진 아일랜드를 방문하면서 더욱 돈독해졌다. 사실 둘 사이에는 공통점도 많다. 둘 다 유난히 미인을 좋아하는 데다 독신이고, 세계 각지를 여행하면서 파티를 즐기는 파티광이다.
또한 엡스타인이 소아성애자로 실형을 선고받았을 당시 친했다고 믿었던 다른 친구들은 모두 그의 곁을 떠났지만 앤드류 왕자만큼은 그의 곁을 꿋꿋이 지켰다. 또한 엡스타인이 형량을 감면받을 수 있었던 것이 앤드류 왕자가 미 법무부를 상대로 로비를 벌였기 때문이라는 소문도 있다.
2011년에는 뉴욕 센트럴파크에서 나란히 산책을 하는 모습이 파파라치 카메라에 찍히면서 곤욕을 치르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앤드류 왕자는 늘 엡스타인의 곁을 지켰다. 그리고 이런 앤드류 왕자 덕에 엡스타인은 영국 왕실의 주요 인사들과 가깝게 지낼 수 있었으며, 심지어 2000년에는 윈저성에서 열린 엘리자베스 여왕의 생일 파티에도 특별 손님으로 초청받기도 했다.
제프리 엡스타인의 플로리다 맨션과 보잉 727기. 엡스타인이 이곳에서 명사들을 성접대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실형을 선고받기 전까지 미국에서 가장 인맥이 넓기로 유명했던 엡스타인은 실제 많은 거물들과 연락을 주고받던 인물이다. 97쪽에 걸친 그의 ‘블랙 북’ 즉 ‘비밀 전화번호부’에는 수많은 명사들의 전화번호가 빼곡히 적혀 있었다. 가령 앤드류 왕자는 물론이요, 케네디 가문 사람들, 빌 클린턴, 에후드 올메르트 전 이스라엘 총리,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고 다이애나비의 오빠인 스펜서 백작, 토니 블레어 전 총리, 도널드 트럼프, 믹 재거, 바바라 월터스, 엘리자베스 헐리, 알렉 볼드윈 등이 여기에 속했다.
또한 블로그 <고커닷컴>이 입수한 엡스타인의 개인 제트기인 보잉 727기의 탑승객 명단 역시 화려하기 그지없었다. 빌 클린턴과 앤드류 왕자를 비롯해 더쇼비츠 교수, 배우 케빈 스페이시, 에후드 바라크 전 이스라엘 총리, 빌 리처드슨 전 뉴멕시코주 주지사 등이 그의 개인 제트기로 여행을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클린턴은 최소 11회 이상 탑승했으며, 간혹 여성들도 동행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로버츠의 주장에 따르면 개인 제트기 안에는 침대도 있었으며, 간혹 난교 파티가 벌어질 때면 사용되곤 했었다. 사정이 이러니 엡스타인의 개인 제트기를 가리켜 ‘롤리타 익스프레스’라고 부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던 셈.
어린 소녀들을 좋아하는 엡스타인의 성적 취향에 대해서 로버츠는 “그는 하루에 일곱 명과도 잠자리를 가졌으며, 어떤 소녀는 12세에 불과하기도 했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끊임없이 새로운 소녀들을 원했지만 흑인 소녀는 단 한 번도 부르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엡스타인이 처음 체포됐던 것은 지난 2005년이었다. 당시 피해자였던 14세 소녀의 어머니가 “딸이 엡스타인에게 300달러(약 32만 원)를 받고 마사지를 해주었다”라며 경찰에 신고했던 것. FBI 수사 결과, 엡스타인은 자신의 저택에서 수많은 소녀들을 첩처럼 거느리고 살았으며, 유고슬라비아에서 온 한 모델 지망생 소녀를 가리켜 “‘성노예’로 삼기 위해 데리고 왔다”라고 자랑하고 다녔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엡스타인의 범죄 행각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오랜 기간 그의 집사로 일했던 후안 알레시는 “수영장에는 여자 나체 사진이 줄줄이 걸려 있었고, 계단에는 10대 소녀들의 알몸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라고 증언했다. 엡스타인의 저택이 마치 5성급 호텔처럼 운영되고 있었다고 말한 그는 “손님들은 각계각층의 유명인사들이었다”라고 말했다.
당시 재판이 벌어지자 엡스타인으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나선 여성들은 40명에 달했다. 엡스타인의 생일에는 12세 소녀 세 명이 선물로 제공됐던 적도 있었으며, 마사지 도중 성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여성도 나타났다.
이렇게 엡스타인에게 소녀들을 제공했던 사람들은 맥스웰을 비롯해 엡스타인의 절친이자 프랑스의 모델 스카우트인 장 루크 부르넬, 그리고 개인 비서였던 세라 켈렌이었다. 부르넬은 주로 가난한 나라의 모델 지망생들을 ‘돈을 많이 벌게 해주겠다’는 식으로 유혹해 엡스타인에게 소개해줬다. ‘마담’으로 알려진 맥스웰은 로버츠를 비롯해 수많은 10대 소녀들을 클럽이나 스파 등에서 유혹해 연결해줬다.
이런 맥스웰과 엡스타인의 관계는 서로에게 윈윈이었다. 엡스타인은 맥스웰에게 재정적 지원과 함께 화려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고, 그 대가로 맥스웰은 엡스타인에게 소녀들을 제공해주거나 영국의 정재계, 왕실 인사들과 다리를 놓아 주곤 했다.
과거 10대였던 피해 여성들이 다시 소송을 제기하면서 진실게임 양상으로 번진 이번 사건에 대해 영국과 미국의 언론들은 조심스런 입장을 보이고 있다. 과연 누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지, 만일 거짓말이 아니라면 영국의 왕자를 비롯한 수많은 권력자들이 줄줄이 망신을 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이에 경찰이 최근 엡스타인의 저택에 설치된 CCTV를 발견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어쩌면 이 안에 모든 진실이 담겨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빌 클린턴에도 불똥 튀나 엡스타인과 잦은 ‘동반여행’ 이번 스캔들로 가시방석인 것은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다. 알려진 바에 따르면 클린턴은 한때 엡스타인과 절친한 사이였으며, 엡스타인의 전 여친인 지슬레인 맥스웰과는 딸 첼시의 결혼식에 하객으로 초대했을 만큼 현재까지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엡스타인과는 엡스타인이 미성년 성스캔들로 실형을 선고받은 후에는 절연한 상태다. 하지만 클린턴이 실제 미성년자들과 성관계를 맺었는지에 대해서는 불분명한 상태다. 엡스타인의 성노예로 살았다고 주장하는 버지니아 로버츠는 혹시 클린턴과 성관계를 맺었냐는 질문에 “클린턴을 두 번 만나긴 했지만 한 번도 성관계를 맺은 적은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녀가 클린턴을 만났던 것은 엡스타인의 뉴욕 저택과 버진 아일랜드 등 두 곳에서였다. 버진 아일랜드에서의 만남에 대해 로버츠는 “그때가 클린턴이 막 퇴임했을 때였다. 당시 엡스타인은 클린턴의 퇴임을 축하하기 위해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그날 밤 엡스타인은 두 명의 갈색머리 젊은 여성들을 뉴욕에서 불렀는데, 추측컨대 클린턴을 위해 준비한 선물로 보였다”라고 말했다. 순진해 보이는 얼굴의 여성들은 모두 17세를 넘지 않은 미성년자들로 보였다고 그녀는 말했다. 하지만 클린턴은 미끼를 물지 않았다. 로버츠는 “클린턴은 여성들에게 그다지 호감을 보이지 않았다”라면서 “그 후에도 그녀가 아는 한 클린턴은 엡스타인의 ‘선물’을 받지 않았다”고 말했다. [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