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바다에 찍힌 발자국에 ‘발목’
▲ 전당포 CCTV에 찍힌 범인들의 모습(위)과 증거물로 압수된 물품들. SBS TV 촬영 | ||
현장은 더없이 참혹했다. 얼마나 무지막지하게 찔러댔는지 피살자들이 쓰러져있는 전당포에서 비디오방 입구까지는 그야말로 ‘피바다’를 방불케 했다. 대낮에 도심 한복판 상가에서 발생한 끔찍한 살인사건. 현재 송파경찰서 강력8팀을 지휘하고 있는 박성수 팀장(48·경위)이 기자에게 전하는 ‘잊을 수 없는 그 사건’은 바로 2004년 12월 사건 발생 후 3개월간 당시 관할서인 수서경찰서 형사들의 속을 무던히도 끓였던 일명 ‘석촌동 살인사건’이다. 당시 강남경찰서 소속이었던 박 팀장은 사건을 이렇게 회고한다.
“연말연시를 앞두고 민생치안이 강조되던 차에 대낮 도심 한복판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하자 비상이 걸렸다. 우리는 그 무렵 병원을 전문으로 터는 다른 강도사건을 수사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수집해 뒀던 범인의 물건을 토대로 추가수사를 한 결과, 이들이 석촌동 살인사건의 범인이라는 엄청난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 조사결과 드러난 범인들의 과감한 범행들과 치밀한 도피행각, 또 검거 후 보인 그들의 뻔뻔스러운 행태에 기가 막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비디오방에서 영화를 보던 손님의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즉시 수사에 들어갔다. 경찰은 두 점포가 마주보고 있는 데다가 같은 시각에 두 명이 연달아 살해된 점으로 미뤄 동일범의 소행으로 확신했다. 대낮에 이처럼 끔찍한 살인행각을 저지른 범인은 도대체 누구일까. 가장 큰 의문은 범행동기였다.
경찰은 우선 현금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전당포 주인이 살해된 것으로 보아 금품을 노린 강도 살인으로 추정하고 수사를 진행해나갔다. 하지만 사람이 자주 드나드는 아파트 대로변의 상가에서 그와 같은 과감한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은 여전히 의문이었다. 굳이 돈이 목적이라면 위험을 감수한 대낮 범행보다는 야심한 밤이 훨씬 나을 터였다. 더구나 피살자는 50대 남성과 20대 청년으로, 범인이 아무 공통점도 없는 두 사람을 연달아 살해해야했을 이유도 오리무중이었다.
특히 경찰을 놀라게 한 것은 잔인한 범행수법이었다. 한두 번도 아니고 스무 번 가까이 흉기로 찔러 무자비하게 살해한 것으로 보아 범행 목적이 단순히 돈이 아닐 가능성도 있었다. 이에 경찰은 범인이 어떤 원한이나 치정, 채무관계로 인해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도 열어 두고 피살자들의 주변 인물들을 상대로 수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피살자의 통화내역 분석과 주변인물을 상대로 한 탐문 수사에도 불구하고 범인을 특징지을만한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현장에 남겨진 지문과 족적을 채취,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분석을 의뢰하는 동시에 강도 살인 전력이 있는 동일수법 전과자들을 상대로 수사에 들어갔다.
다행히 범인의 모습은 상가 CCTV 화면에 잡혀 있었다. 사건이 발생한 시각, 옆 건물 금은방 가게 내부에 있던 CCTV 화면에서 다급히 현장을 빠져나오는 남자 2명의 모습이 발견된 것. 하지만 점포 안에서 작동하던 CCTV인지라 화면이 워낙 흐려 용의자의 인상착의를 분석하기란 어려웠다. 당시 수사를 담당했던 수서경찰서 소속 형사들이 사건 해결을 위해 밤낮으로 매달렸지만 범인이 두 명의 남성이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밝혀진 것이 없었다. 경찰은 1000만 원의 현상금을 걸고 용의자인 30대 남성 두 명을 전국에 공개 수배했지만 아무 단서도 찾지 못한 채 수사는 답보상태에 머물렀다.
한편 석촌동 살인사건이 발생한 그 무렵, 강남경찰서에 근무하던 박 팀장은 병원을 범행 대상으로 삼아 강도행각을 일삼던 두 명의 용의자를 쫓고 있었다. 다음은 박 팀장의 설명.
“압구정에 소재한 성형외과에 환자를 가장한 2인조 강도가 침입해 의사와 간호사를 위협하고 돈을 뺏은 사건이 발생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런데 피해를 입은 병원이 한두 곳이 아니더라. 목동과 신정동, 광명시 등 도심 외곽지역의 병원들도 환자를 가장한 두 명의 남성들로부터 강도피해를 당하는 사건이 줄줄이 발생했던 것이다. 수법으로 보아 동일범의 범행으로 추정됐는데 피해를 당한 병원 측에 따르면 범인들은 병원 진료를 마칠 무렵 환자들이 없는 시각에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확인됐다.”
병원강도 용의자들의 윤곽은 의외의 단서로 쉽게 드러났다. 당시 강력반 소속 형사가 아는 사람 중에 동대문에서 옷가게를 하는 상인이 있었는데물건을 팔고 받은 수표가 바로 강도를 당한 그 병원에서 나온 수표였던 것이다. 경찰은 수표를 역추적한 결과 이만식(가명·당시 59세)이라는 인물을 찾아내기에 이른다. 이만식은 마약과 강도 등 전과가 화려한 인물로, 당시 사기도박에 연루되어 수배가 돼있었다. 하지만 직업도 없고 특정 거주지도 없던 이만식의 행방은 묘연하기만 했다. 다음은 박 팀장의 설명.
“이만식에게 아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수사팀은 그의 아들을 찾아갔다. ‘아버지를 이대로 두면 큰일 난다. 빨리 잡히는 게 낫다’고 설득했다. 하지만 아들은 특별한 사연으로 아버지인 이만식과 의절하고 지낸 지 오래된 탓에 현재 그의 행방을 알지 못했다. 단지 아버지가 과거에 방이동 ‘먹자골목’ 근처에 살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그 일대 상점을 일일이 탐문, 이만식과 가깝게 지냈던 인물들을 찾아 나섰다. 이만식의 행방을 알 수 있는 작은 단서라도 얻기 위해 일주일동안 그 일대를 찾아다닌 결과 한때 이만식과 친했다는 상점 주인으로부터 ‘얼마 전 이만식이 어떤 남자와 같이 와서 돈을 빌려 달라’고 했다는 말을 들을 수 있었다.”
“열흘 넘게 계속된 탐문수사로 우리는 이만식이 거주했다는 하숙집을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하숙집에 가보니 당연히 이만식은 없었다. 이만식이 하도 오랫동안 들어오지 않자 하숙집 주인은 이만식의 짐을 싸서 창고에 넣어둔 상태였다. 그의 짐을 살펴보던 우리는 이만식의 신발을 발견하고 그것을 챙겨서 돌아왔다.”
수사팀은 끈질긴 수사 끝에 이만식의 휴대폰 번호를 알아낸 후 통신 수사를 실시, 그가 대구서 도피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긴박했던 수사상황에 대해 박 팀장은 이렇게 회고한다.
“이만식이 평소 춤을 즐긴다는 사실에 근거해 수사팀은 대구 시내의 카바레를 몽땅 뒤졌다. 또 그가 대구에 연고도 없는 처지였기에 장기간 은신해 있을 만한 여관을 샅샅이 찾아다녔다. 그 결과 한 여인숙 주인으로부터 이만식이 이틀 동안 묵었다가 방이 춥다며 다른 여관으로 옮겼다는 진술을 들을 수 있었다. 이만식이 묵고 있는 여관을 찾아낸 우리는 섣불리 검거하다가 실패할 것을 우려, 그가 나올 때까지 여관 근처에서 잠복했다. 정오쯤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여관에서 나오는 이만식의 모습이 보였다. 근처 여인숙으로 또 숙소를 옮기려는 것이었다. 우리는 범인 검거 직전의 급박한 상황에서도 이만식의 휘황찬란한 행색에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그는 후줄근한 ‘도망자’의 행색이 아니었다. 이만식은 성형외과 의사에게 뺏은 명품 선글라스와 바바리를 사업가로 보일 만큼 멋지게 차려입고 커다란 가방을 끌고 있었다.”
검거된 이만식은 자신의 혐의를 순순히 인정했다고 한다.
“보통 피의자들은 혐의에 대해 무조건 부인하고 보는 습성이 있다. 그런데 이만식은 자신의 강도행각을 너무도 순순히 인정했다. 조서 역시 특별히 강요도 안했는데 첫 번째 범행을 한 곳은 어디, 두 번째는 어디 이런 식으로 알아서 척척 써내려가더라. 조사결과 밝혀진 이만식의 범행은 무려 17차례로 피해금액만도 5000만 원에 달했다. 전과가 수두룩한 이만식이 단 한 번의 부인도 없이 알아서 술술 자백한다는 게 좀 이상했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그가 석촌동 살인사건의 범인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하지만 오랜 수사경험에서 우러나오는 형사의 직감은 무서웠다. ‘뭔가 이상한데…’ 라는 생각이 박 팀장의 머릿속을 괴롭혔다. 순순히 범행을 자백한다는 것은 오히려 다른 추가범행을 감추기 위한 술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이만식을 수사하던 박 팀장은 그가 묵었던 하숙집에서 가져온 신발을 살펴보던 중 석연치 않은 점을 발견하게 된다. 신발 밑창에 혈흔이 묻어있었던 것이다. 오랜 강력반 생활에서 터득한 직감이었을까. 박 팀장은 관내에서 발생한 강력사건들을 일일이 확인하던 중 3개월 전 발생해 미제로 남아있던 석촌동 살인사건을 떠올리기에 이른다.
아니나 다를까. 박 팀장은 현장에서 발견된 족적과 이만식의 신발 문양이 일치한다는 엄청난 사실을 밝혀내게 된다. 국과수 감정결과 신발에 묻은 핏자국이 석촌동 살인사건의 현장에서 발견된 혈흔과 동일한 것으로 나온 것. 이들은 끔찍한 강도 살인 사건을 저지른 이후에도 서울 외곽의 병원을 돌아다니며 강도행각을 계속 벌여왔던 것이었다.
살인혐의에 대해서는 끝까지 완강히 부인하던 이만식은 결국 대전에서 검거된 공범 이덕구(가명·당시 40세)의 자백과 더불어 경찰의 추궁 끝에 범행사실을 실토하게 된다. 3개월 동안 미궁에 빠져있었던 석촌동 살인사건의 진실이 수면위로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동향 출신으로 교도소에서 서로 알게 된 이만식과 이덕구는 출소 후에도 필로폰 투약을 계기로 형, 동생하며 친하게 지냈다. 특정한 직업 없이 막노동판을 전전하던 이들의 삶은 하루살이 인생이었다. 고정 수입도 없이 막막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이들에게는 돈이 절실하게 필요했다. 고민 끝에 이들은 현금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전당포 주인을 상대로 강도행각을 벌이기로 공모하게 된다. 범행대상은 이만식이 과거 몇 차례 거래를 한 적이 있는 석촌동의 전당포 주인이었다. 다음은 박 팀장의 얘기.
“이들은 전당포 내부에 외부인의 출입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고 있었다. 따라서 이덕구는 밖에서 망을 보고 평소 전당포 주인과 안면이 있던 이만식이 혼자 먼저 들어가는 것으로 범행을 개시했다. 잠시 후 이덕구가 전당포로 올라갔는데 이만식은 미리 준비해둔 장도리로 전당포 주인의 머리를 마구 가격하고 있더란다. 그리고 잠시 후 거세게 반항하는 주인을 흉기로 무지막지하게 찔러 살해하고 만다.”
그러나 살인은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전당포 앞에서 초조하게 망을 보고 있던 이덕구에게 ‘딸깍’ 소리가 들렸다. 둔기로 내리치는 둔탁한 소리와 비명소리를 들은 비디오방 점원이 문을 열고 나온 것이었다. 이어지는 박 팀장의 설명.
“이덕구는 놀라서 서 있는 비디오방 점원 신 씨를 데리고 다급히 비디오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깐 앉아봐라’고 했다는 거다. 그런데 신 씨는 너무 놀란 나머지 몸이 굳어 부들부들 떨기만 할 뿐이었다고 한다. 더구나 약간의 정신지체 장애를 갖고 있었던 신 씨가 그 상황에서 이덕구의 말에 순순히 따랐을 리 만무했다. 이덕구는 놀라서 도망가려는 점원 신 씨를 붙잡아 흉기로 무참히 살해하고 만다.”
범행 후 상가를 빠져나온 이들은 ‘이왕 죽였으니 물건이나 갖고 가자’는 이만식의 제안에 다시 범행 현장에 올라가는 대담함을 보이기도 했다. 이들은 범행 직후 택시를 타고 대전으로 내려간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은 경찰의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휴대폰도 사용하지 않고 사창가 일대를 전전하며 제각기 도피행각을 벌여왔는데 둘의 ‘접선’도 간간이 공중전화를 이용하거나 ‘○○다방에서 만나자’는 막연한 약속만으로 이뤄져 마치 007작전을 방불케했다.
조사결과 이들은 평소 흉기를 지니고 다녔는데 특히 이만식은 이날 범행을 위해 장도리를 구입한 후 소지하기 쉽도록 자루까지 짧게 잘라 갔던 것으로 드러났다. 검거 당시에도 이들은 붙잡힐 경우 경찰을 찌르고 자살하려는 계획으로 칼과 독극물을 소지하고 있어 경찰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경찰을 분노케한 것은 검거 후 이들이 보인 파렴치한 태도였다.
“이들은 경찰서에서도 큰 소리로 웃고 떠들며 농담을 하는 등 아무런 죄책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반성은커녕 ‘오늘은 김치찌개가 먹고 싶다’는 등 식사메뉴까지 정하며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을 보여 형사들의 말문을 잃게 만들기도 했다. 도저히 사람 두 명을 죽이고 무차별적인 강도행각을 벌인 이들이라고 볼 수 없었다. 또 이만식은 ‘도대체 나를 어떻게 찾아냈는가. 대구에 아무 연고도 없는데 어떻게 내가 대구에 있는 것을 알고 좇아왔는가. 정말 대단들 하시다’며 우리들을 오히려 ‘칭찬’하는 엽기적인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이들은 병원강도 행각에 대해서도 ‘의사들이 돈이 많을 것 같아서 병원을 상대로 범행을 했다. 강남에서 범행을 하면 뉴스에 오르내릴게 뻔하지 않나. 그래서 압구정 한 곳만 제외하고는 일부러 외곽지역에 위치한 병원만을 상대로 범행을 해왔다’며 자신들의 범행수법을 자랑스레 늘어놓기도 했다.”
이만식과 이덕구는 살인과 특수강도 등의 혐의로 모두 법원에서 무기징역을 구형받은 것으로 알려진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