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배지 눈먼 교수들 ‘만만한 게 체대생’
일부 ‘폴리페서’들의 몰지각한 행태가 도를 넘었다. 수업을 빼먹어 학생들의 수업권을 침해하던 것을 넘어, 최근에는 정치 행사에 제자들을 동원하면서 물의를 빚고 있다. 사진은 기사와 관련 없음. 일요신문DB
지난여름, 수도권 소재 A 대학에서는 총학생회와 해당 대학에 재직 중인 B 교수 사이에서 아찔한 분쟁이 발생했다. B 교수는 평소 국회와 여야를 불문하고 각종 정치권 세미나와 토론회에 단골 패널로 참여하는 소위 폴리페서였다. 교내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차기 총선의 공천을 노리고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문제는 B 교수가 이명박 정부의 차관급 인사 C 씨의 특강을 마련하면서부터 발생했다. B 교수와 C 씨는 절친한 대학 선후배 사이였다. 문제는 C 씨가 친이계 진영의 핵심 인사로서 공직 재직 시절 청와대의 국정개입과 관련해 갖은 구설수에 오른 인사였다는 점이다. C 씨는 또한 차기 총선 출마가 유력한 인사로 분류되기도 한다.
당시 A 대학 총학생회는 학교와 B 교수에게 강력하게 항의하며 C 씨 특강 취소를 요구했다. 지난 정부 구설수에 올랐으며, 아직까지 여러모로 해명되지 못한 C 씨의 특강이 적절치 못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B 교수는 이를 무시하고 특강을 강행했다.
총학생회에서 강력하게 문제를 제기한 만큼 구설수에 오른 C 씨의 특강을 청강할 학생들은 현실적으로 그리 많지 않아보였다. 그런데 ‘반전’이 일어났다. B 교수가 특강 흥행을 위해서, 교내 체육학부 학생들을 총동원해 현장을 가득 채운 것. 총학생회는 특강 현장에서 즉각 피켓시위에 나섰다. 다행히 B 교수가 한발 물러서며 학생들의 시위를 허가함으로서 일은 유야무야 됐지만 대규모 충돌까지 갈 수 있는 아찔한 순간이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한 학생은 “그 일은 B 교수가 막판 한 발 물러섰기 때문에 외부에 알려지지 않고, 조용히 넘어갔다”면서도 “하지만 지금도 우리는 정치에 뜻이 있는 B 교수가 개인적인 목적으로 본교 학생들을 동원했다는 것은 문제가 심각하다고 보고 있다. 되풀이되지 않길 바랄 뿐”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수도권 소재 대학의 한 체육대생은 지난해 겪은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놨다.
“나는 당시 과학생회에 속한 간부였다. 갑자기 지도교수에게 연락이 왔다. 그 교수는 내게 ‘내가 개인적으로 하는 행사가 있으니, 너를 비롯한 과 학생들이 좀 도와줬으면 한다’고 말하더라. 교수는 무슨 행사인지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지도교수의 부탁이었기 때문에 거절할 수도 없었고, 결국 과 동기와 후배들을 이끌고 해당 행사장에 갔다. 막상 가보니 한 정당의 대규모 행사였다. 해당 교수가 정치에 뜻이 있는지는 알았지만, 구체적 설명도 없이 정당 행사 흥행을 위해 우리를 동원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추후 이에 대해 문제의 교수에 항의했지만, 그저 ‘미안하게 됐다’는 답만 돌아오더라.”
사진은 유세 장면으로 기사 내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좀 더 교묘하게 학생들을 동원하는 사례도 <일요신문>에 포착됐다. 자신이 졸업한 대학의 겸임교수이던 D 씨는 지난해 6·4 지방선거에 출마했다. 그는 정교수는 아니지만, 자신의 후배들을 상대로 한 학기 동안 전공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D 씨는 당시 자신의 후배이기도 한 학생회 간부를 포섭, 자신의 선거운동에 후배들이 돕도록 부탁했다. 자신이 구설수에 오르는 것을 염려해 직접 학생들을 동원하는 대신, 간부급 학생을 중간에 끼워 넣은 셈이다.
당시 해당 학생회 간부의 전화를 받은 한 재학생은 “동기였던 간부는 ‘우리 학교 선배가 잘 되면 좋지 않겠나. 후배 입장에서 좀 돕자’고 하더라. 그때만 하더라도 별다른 거부감 없이 도왔던 것 같다”며 “그런데 나중에 생각해 보니, 겸임교수 D 씨가 우리를 이용했다는 생각이 들더라. 다행히 D 씨는 개인적 사정으로 해당 지역구에서 얼마 안가 사퇴를 해서 조용히 넘어갔다”고 전했다.
최근엔 ‘현장학습’을 명목으로 정규수업에 정당과 국회 견학을 배정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한 당직자는 “명목은 대학 혹은 대학원의 정규수업이지만, 사실상 폴리페서와 특정 정당 간의 이해관계에 따라 이뤄지는 경우가 꽤 있다”며 “정당 입장에서도 한 클래스당 많게는 수백 명에 달하는 젊은 유권자들을 한 곳에서 만날 기회는 많지 않다. 물론 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일부는 분명 의도적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한 현직 교수는 “법조계와 함께 교육계는 정치권의 주요 인재풀이다. 금배지를 두고 벌이는 교수들의 경쟁도 치열하다. 어차피 정당에서 교수를 등용한다고 연구 성과와 수업 평가를 반영하진 않는다. 별다른 지역기반이 없는 교수들 입장에서는 부지런히 정치 행사에 참여하고 언론을 통해 얼굴을 알릴 수밖에 없다”면서 “손쉽게 동원할 수 있는 인력은 결국 학생들뿐이다. 도의상 문제는 되지만 학칙이나 법에 저촉되지도 않는다. 정계와 선이 있는 폴리페서 대다수는 정부 연구비 수주도 곧잘 하기 때문에 학교 측에서도 으레 눈감아 준다”고 지적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