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진 7명 불러낸 ‘죽은 자의 호출’
▲ 영화 <신데렐라>의 한 장면으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음. | ||
조사가 진행될수록 이들은 괴로워하는 표정이 역력했다. 일부는 지독한 악몽을 꾼 듯 눈을 질끈 감아버렸고 일부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개중에는 사시나무 떨 듯 몸을 떨어대거나 여러 번 긴 한숨을 토해내다가 결국 흐느끼는 이들도 있었다. 조사가 마무리될 무렵 한 청년이 간신히 입을 열었다. “잘못했습니다. 철없던 시절 무심코 벌인 행동 때문에… 단 한시도 편할 날이 없었습니다.” 도대체 이들에게는 무슨 사연이 있었던 걸까.
이번에 안산 상록경찰서 박용만 수사과장이 전하는 얘기는 근 10년 동안 숨겨졌던 끔찍한 살인사건에 대한 것이다. 철없던 시절 사소한 이유로 또래 친구를 살해한 뒤 사체를 토막 내 불에 태워버린 10대 남녀들의 엽기행각은 당시 ‘유영철사건’을 추적하던 형사들에게 꼬리를 잡혀 무려 10년 만에 그 진실을 드러냈다. 서울경찰청 기동수사대 근무 당시 이 사건을 해결했던 박 과장은 다음과 같은 소회를 밝혔다.
“‘카더라’라는 소문 하나로 수사에 착수한 터라 처음에는 참 막막했다. 그런데 파헤쳐보니 소문의 실체가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수사의 묘미 아니겠나. 단순 첩보로 시작된 수사는 미제로 남을 뻔한 엽기사건을 해결하는 성과를 가져왔다. 묵혀 있던 사건을 해결한 것은 당시 유영철 사건으로 심란하던 수사팀원들의 사기를 북돋아주는 결과를 낳았고 개인적으로도 경찰로서의 자부심을 갖게 만들었다. 죄 짓고는 못 산다는 것, 완전범죄란 없다는 것을 입증한 사건이었다.”
1995년 초 서울 송파구 삼전동의 한 지하방. 한 무리의 10대 청소년들이 방 안팎을 수시로 들락거렸다. 겉보기엔 여느 또래들과 다를 바 없었지만 이들은 평범한 학생들이 아니었다. 15~17세의 남자 4명, 여자 3명으로 이뤄진 이들은 가정불화와 어려운 집안 형편, 부모와의 갈등 등 제각기 다른 사연을 안고 집을 뛰쳐나온 ‘가출 청소년’들이었다. 다음은 박 과장의 설명.
“하나같이 평범하고 정상적인 가정환경에서 성장하지 못한 애들이었다. 이들은 집과 학교에 적응하지 못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나이였지만 누구 하나 아이들의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주는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 어른들에게 이들은 항상 사고만 치고 다니는 ‘문제아’일 뿐이었다. 좀처럼 마음을 잡지 못하고 방황을 계속하던 이들은 비슷한 상황에 처한 또래의 아이들을 만나 어울리기 시작했다. 결국 중학교를 자퇴하고 가출한 이들은 삼전동에 방을 얻어 집단 동거에 들어갔다.”
어두컴컴하고 비좁은 공간이었지만 마음 맞는 또래들과 지낸다는 것에 이들은 더없이 행복해했다. 부모의 간섭과 학교 규율에 얽매이지 않는 생활은 이들에게 천국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스스로를 통제하지 못하던 이들은 고삐 풀린 망아지와 다를 바 없었다. 이들은 이 지하방을 숙소 겸 아지트로 삼아 매일같이 유흥에 취해 어울려 놀았다. 이 와중에 멤버들 일부는 서로 눈이 맞아 연인관계로 발전하기도 했다. 철없는 10대들의 위험한 혼숙이 시작된 것이었다.
문제는 돈이었다. 방값과 관리비, 식비 등을 충당하려면 적잖은 돈이 필요했다. 또 소위 ‘노는’ 아이들이었던 이들에게 유흥비 마련은 절실했다. 그러나 미성년자인 이들이 목돈을 벌 수 있는 일은 거의 전무했다. 이들은 룸살롱 접대부와 웨이터 등으로 일하며 생활비와 유흥비를 마련해왔다. 특히 멤버 중 3명은 특수 강간 및 강도상해 등으로 소년보호처분을 받았거나 전과가 있는 상태였다. 이미 위험한 범행을 저지른 경험이 있던 이들은 범죄에 망설임이 없었다. 결국 이들은 소매치기나 아리랑치기를 하면서 모자란 돈을 충당해왔다.
이들에게 운명적인 사건이 일어난 것은 막바지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2월 중순 어느 날. 이들의 아지트로 성수미 양(가명·당시 16세)이 찾아오면서 사건은 시작된다. 이어지는 박 과장의 얘기.
“가출소녀였던 성 양은 수개월 전 이들 중 한 명과 우연히 알게 된 후 나머지 멤버들과도 안면을 트고 가깝게 지내오던 차였다. 특히 성 양은 멤버 중 한 명인 C 군과 연인 사이가 되면서 아지트에도 자주 드나들게 된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C 군과 연락이 잘 되지 않았나보다. C 군이 갑자기 연락을 끊고 자기를 멀리하니 이유가 궁금하기도 하고 무슨 일이 있는지 걱정도 됐던 것 같다. 급기야 성 양은 C 군이 사는 아지트로 찾아가게 된다. 그런데 C 군은 자리에 없었다. 성 양은 C 군을 기다리면서 다른 멤버들과 놀다가 그곳에서 잠이 들었다고 한다.”
다음날에도 C 군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성 양은 남자친구인 C 군을 계속 기다리면서 그곳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 정오경 집 안이 발칵 뒤집히는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방 안에 있던 돈 20만 원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업소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모아놓은 20만 원은 이들에게는 상당한 액수였다. 놀란 멤버들이 모두 집 안 곳곳을 뒤졌으나 돈의 행방은 묘연하기만 했다.
그때였다. “야, 아무래도 쟤가 수상하지 않아?” 누군가 성 양을 가리키며 말했다. 순간 모두의 시선이 일제히 성 양에게로 향했다.
“왜들 이래? 난 몰라!” 성 양은 극구 부인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줄줄이 맞장구를 치며 성 양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맞아, 어제부터 여기 계속 죽치고 있을 때부터 이상하다 했어.” “네가 여기 오기 전까지 멀쩡히 있던 돈이 왜 갑자기 사라지냐고?”
성 양은 졸지에 절도범으로 몰렸다. 이들은 성 양을 무섭게 추궁했다. 성 양은 결백을 주장했지만 믿어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성 양이 끝까지 부인하자 이들은 ‘본때를 보여주자’며 성 양을 폭행하기 시작했다.
▲ 2004년 또래 친구를 살해한 후 불태운 7명이 10년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위). 피해자를 유기한 곳으로 알려진 광평교 일대. | ||
“입에 거품을 흘리며 쓰러진 성 양이 움직이지 않자 이들은 당황하게 된다. 자기들끼리 가슴에 귀도 갖다대보고 숨을 쉬는지도 확인하고 그랬는데 딱 보니 사람 몰골이 아니었던 거다. 성 양이 숨을 쉬지 않자 이들은 두려움에 떨기 시작한다. 그리고 ‘빨리 병원으로 옮기자’라는 쪽과 ‘안 된다. 병원으로 옮기고 나서 죽으면 살인죄로 감옥에서 썩어야 한다’는 쪽으로 의견이 갈린 거다. 당시 어린 나이였던 이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법적 처벌이었다. ‘살인범’이 될 거라는 생각에 이들은 범행을 덮기로 합의한다. 이들은 지레 겁을 먹고 성 양을 방치했고 성 양은 결국 숨을 거두고 만다.”
시신을 집 안에 그대로 방치해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여자아이들은 무섭다며 난리를 쳤다. 그날 밤 삼전동의 아지트에서는 사체 처리방법에 대한 긴급회의가 열렸다.
“한강에 던져버리자.”
“아냐, 그럼 사체가 떠오를지 몰라.”
“산에 파묻는 건 어때?”
“안 돼. 사체를 옮기다가 걸릴 수가 있어.”
논의 끝에 이들은 사체를 토막 내 불에 태워버리기로 의견을 모았다. 남자아이들이 약초를 자르는 작두와 커다란 자루, 휘발유 등을 시장에서 구입해왔다. 그리고 다음날 새벽 여자아이들이 망을 보는 사이 남자아이들은 성 양의 사체를 토막 낸 후 자루와 가방에 담아 서울 수서동 광평교 밑으로 향했다. 추운 겨울 새벽 광평교는 인적은커녕 지나가는 차량조차 보이지 않을 만큼 한적했다. 남자아이들은 서둘러 교각 밑에서 땅을 파기 시작했다. 그러나 땅이 워낙 얼어붙어 있는지라 깊게 파지지가 않았다. 마음이 급해진 이들은 대충 모래를 파헤친 자리에 토막 난 사체를 쏟아부었다. 그리고 휘발유를 붓고 불을 질렀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 이들은 아지트에 다시 모였다.
떨리는 마음을 간신히 가다듬은 이들은 제각기 손가락을 걸고 맹세한다. “오늘 일은 우리 모두 무덤까지 갖고 가야 할 비밀이다.” 그리고 그날 이후 이들은 아지트 생활을 청산하고 각자 뿔뿔이 흩어지게 된다. 이렇게 해서 이 엽기적인 사건은 완전범죄로 ‘조용히’ 묻히는 듯했다.
그러나 세상에 완전한 비밀은 없는 법. 아무리 ‘노는’ 아이들이었다 해도 죄책감에서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세월이 흐를수록 성 양의 죽음에 대한 기억은 더욱 또렷해졌다. 그중 유독 마음이 심약했던 몇몇은 죄책감을 견디지 못한 나머지 술이 취할 때면 주변 사람에게 ‘그때 그 사건’에 대해 횡설수설하곤 했다. 그리고 이 소문은 결국 2004년 당시 서남부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를 추적하던 서울경찰청 기동수사대로까지 흘러들어오게 된다. 당시 서울경찰청은 희대의 연쇄살인범 유영철로 인해 초비상이 걸려 있던 때였다. 모든 수사팀원들이 연쇄살인범을 추적하는 데 매달려 있던 상황이었지만 그냥 무시하고 지나치기에는 소문의 내용이 너무도 엽기적이었다. 다음은 박 과장의 회고.
“들리는 얘기로는 술만 마시면 ‘사람을 죽인 적이 있다’는 말을 하고 다니는 청년이 있다는 것이었다. 또 ‘과천의 ‘수미’라는 여학생이 10여 년 전 토막살인을 당했다’는 소문까지 나돌았다. 몇 다리 건너 들어왔지만 그냥 넘어갈 헛소문이 아니라는 직감이 들었다. 우리는 소문을 하나하나 추적하기 시작했다. 우선 중요한 것은 피해자가 누구인지를 추려내는 일이었다. 우리는 90~95년 사이 과천 일대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닌 적이 있는 ‘수미’라는 이름을 가진 여학생을 일일이 뽑아냈다. 그리고 그중 실종신고가 되어 있거나 행방불명된 아이가 있는지 확인했다. 10여 년 전 학생기록부를 샅샅이 뒤지고 동사무소의 주민등록증 미발급자 현황을 확인한 끝에 성 양의 행방이 묘연하다는 사실을 밝혀낼 수 있었다. 성 양의 신원을 확인하는 데만 무려 20일이 넘게 걸렸다.”
수사팀은 성 양이 이들 일행을 만난 뒤 행방불명됐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수사를 계속한 끝에 6월 말 주범 격인 A 씨(27)를 긴급 체포했다. A 씨는 ‘올 것이 왔다’는 식으로 모든 범행 사실을 순순히 털어놨다. 그리고 범행에 가담했던 나머지 주범 3명 등도 줄줄이 잡혀 들어왔다. 한 명은 범행을 부인했지만 나머지 사람들이 범행을 시인하자 결국 자신의 범행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근 10년 동안 묻혀 있던 살인의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이어지는 박 과장의 설명.
“성 양 부모의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 애는 내 딸도 아니다’ ‘딸자식 없는 셈 치고 살겠다’던 그의 아버지는 그때까지만 해도 성 양이 가출해 어디선가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평소에도 가출을 밥 먹듯 했는데 집에 잡아다 놓으면 또 나가고 해서 그동안 아예 내놓은 자식으로 생각하고 살았다는 것이 성 양 아버지의 하소연이었다. 그런데 딸이 이미 10년 전 살해됐다는 사실에 성 양의 부모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청소년 시절 끔찍한 살인을 저지른 A 씨 등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을까. 다음은 박 과장의 얘기.
“20대 중반의 나이가 된 이들은 하나같이 인물도 훤칠하고 준수했다. 그러나 이렇다 할 위치에서 잘 살고 있는 이들은 하나도 없었다. 휴게실 종업원, 술집 웨이터, 내레이터 모델, 천호동 성매매여성 등으로 일하고 있었는데 과거의 굴레에 매여 평탄한 삶을 살지 못한 듯 보였다. 개중에는 과거를 ‘세탁’하고 결혼해 임신 중인 여성도 있었는데 이 사건이 드러난 후 이혼을 당했다고 하더라. 특히 그때까지도 광평교 옆 아파트에 살고 있었던 B 씨는 광평교를 내려다볼 때마다 그 일이 생각나 괴로웠다고 털어놨다. 정신과 치료까지 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비 오는 날이면 수미가 생각나서 미칠 것 같았다. 차라리 후련하다’는 것이 B 씨의 고백이었다. 사람 죽여 놓고 발 뻗고 지냈다는 게 더 이상한 일 아니겠나. 아마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주변의 눈을 속일 수는 있어도 자신의 양심까지 속일 수는 없으니까.”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